43개월: 남편을 칭찬하니 생기는 일
영국 유학을 나온 이후 아이의 하원 후는 아빠의 책임이 되었다. 이제 아빠가 주양육자인데도 이상하게도 아기는 여전히 아빠보다 나를 많이 따른다. 저녁마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기가 말할 수 없이 반가우면서도 육아를 하다 보면 체력이 달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녁에 아기를 돌보는 일을 조금이라도 남편과 분담해 보고자 얼마 전부터 "엄마랑 씻고 아빠랑 잘래, 아빠랑 씻고 엄마랑 잘래?"라고 아기의 선택지를 제한해 버렸더니 한동안 아기는 엄마의 손길을 포기하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다 본인이 "아빠랑 씻고 엄마랑 자기"를 골랐는데 억울하게도 아빠랑 깜빡 잠이 들어 버린 날에는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억울하다는 듯이 따져 묻는다. "잠깐, 나 어제 누구랑 잤지? 아빠랑 씻고 아빠랑도 잔 것 같은데?" 엄마와의 시간을 조금도 손해 보기 싫어하는 아기가 귀여우면서도 짠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요새는 전략을 바꾸었다. 엄마가 아빠를 책망하면 아기도 옆에서 덩달아 아빠를 꾸짖고, 엄마가 아빠를 추켜 세우면 아기도 그대로 따라서 아빠에게 엄지를 내밀어 주길래 요새는 의식적으로 아이 앞에서 아빠를 더 많이 칭찬해 주고 사랑을 표현한다. 그렇게 아빠가 소중한 존재로 대우받는 걸 가만 지켜보던 아이는 요즘 기꺼이 먼저 아빠를 치켜세운다. 진작부터 느끼고는 있었지만 아기에게 엄마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더 많이 결정적이었던 것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남편이 남들에게 어떻게 대우받을지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가 남편을 어떻게 대하는지에서 싹트는 것이었다. 진작부터 내가 잘만 행동했으면 우리 가족이 서로와의 시간을 적절히 분담해 가며 윈-윈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야 깨달은 것이 좀 한탄스러운 일이다.
이제 결혼 6년 차에 접어드니 가끔은 남편을 나와 한 몸인양 착각하고, 나 스스로에게 그러하듯 모진 채찍을 그대로 겨냥할 때가 있다. 안 그래도 자기 검열이 심하고 스스로를 쉽게 사랑해주지 못하는 나인데, 그게 가까운 가족에게까지 전염되었던 모양이다. 최근 남편이 그에 대한 서러움을 토로한 이후에야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에게도 조금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럴 듯 하지만 위태로운 모래성 위에 겨우 서 있는 30대. 그 시기를 함께 지나고 있는 나와 남편은 여전히 미숙한 서로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셈이다. 30대의 우리는 조금의 의심의 여지도 없게 아직 많이 미숙하다. 그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특별한 사람이기를 바라는 욕심을 내려놓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내가 특별한 서사를 지녔다는 그 오만함과 욕심이 결국은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했는가 보다.
남편과 아기, 그리고 그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행복한 나를 위해서라도 남편을 조금 더 요란스럽게 아껴줄 필요가 있다. 사실 지금보다 더 미숙했던 20대 시절을 뒤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꽤나 한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숙함이 여전히 사랑스럽다. 뭐든 잘 해내고 싶어 애를 쓰지만 매 순간 스스로의 한계를 확인하고야 마는 지금의 남편과 나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드러나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각자의 시간에 최선을 다 하는 그 모습만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아기에게는 자존감을 챙겨준답시고 자주 이런 말을 해주었었는데, 때마침 엊그제 아기가 그 말을 그대로 우리에게 사랑스럽게 돌려주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건 아닌 거야. 계속하면 잘할 수 있어!"
아기는 뭐든 미숙하지만 진심으로 애쓰면서 살아가는 그 모습이 그저 사랑스럽다. 남편도, 나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아기도, 남편도, 그리고 나도 더 많이 사랑받아야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이렇게 쉽게 허들을 넘어서 사랑을 쏟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