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콧대가 하늘을 찌른다

42개월: 부끄러움은 엄마의 몫

by 여울맘

아기가 태어난 이후 나의 SNS 알고리즘의 절반 가량은 자존감을 기르는 육아법이 차지하고 있다. 는 자존감이 낮은 엄마이기 때문에 유난히 그런 육아 콘텐츠가 더 눈에 뜨이고 관심이 간다. 심히 귀동냥을 하며 자존감을 세워 주려 한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것일까, 요즘 42개월 우리 아기의 콧대가 심상치가 않다.


안 그래도 공주병 시기에 돌입한 아기는 아침마다 공주 드레스를 차려입는데 여념이 없는데, 오늘은 웬일로 쿨하게 옷을 고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는 어차피 공주니까 아무거나 입어도 이쁘지?" 요 며칠 계속 같은 반 백인 친구의 외모를 반복해서 칭찬하길래 혹시나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기가 죽은 건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웬걸, 아기는 이미 완벽한 공주의 마인드를 장착하고 있었다.


아기는 외모뿐만 아니라 본인의 행동에도 상당히 자신감이 넘친다. 요새 아기를 종종 저녁 준비에 참여시키는데, 아기는 쌀을 씻고 반죽을 섞는 일은 본인이 제일 잘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이제는 우리가 같이 하자고 하지 않아도 본인이 먼저 도움이 필요하지 않냐고 기웃거린다. 그러다 혹시나 물을 쏟고 실수를 해도, "이건 실수야! 실수할 수 있는 거야"라고 당당히 말해 미처 화를 낼 틈도 주지를 않는다. 분에 우리 가족도 서로의 실수에 조금 더 관대해졌다. 남편의 실수에 화가 부글부글 차오르려 할 때면 "엄마! 아빠가 실수한 거잖아. 아빠도 실수할 수 있는 거야!"라고 옆에서 진지하고 요란스레 거드는 아기 덕분이다.


요즘 미라클 모닝으로 아침에 여유가 좀 생긴 덕분에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아기를 전보다 더 요란스레 맞이해주고 있다. "어머, 오늘은 더 예뻐졌네. 지난밤에 요정님이 왔다 가셨나 봐. 키 크는 요정님도 다녀가셨나 보네! 키도 커졌어!" 매일 아기의 기상시간을 이렇게 요란스레 채워주었더니 요즘은 자기가 먼저 "엄마, 오늘 나 또 이뻐졌네!"라고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신과 전혀 다른 외모를 가진 친구들 사이에서도 조금도 기죽지 않고 공주로 살아가는 아기가 기특하고 대견하다. 린 대로 거둔다는 것의 좋은 사례일 것이다.


엄마인 나는 알레르기가 있는가 싶을 정도로 나를 뽐내고 칭찬받는 데에 서툴다. 이렇게 당당한 공주님 아기를 돌보고 있노라면 가끔은 내가 대신 낯부끄러워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내 아기가 이렇게 당당히 공주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런 낯부끄러움 쯤이야 그저 잠깐 멋쩍게 웃어 삼키면 그만이겠다 싶다. 그 누구도 함부로 나를 대할 수 없고, 그 누구도 감히 내 기분을 좌우할 수 없는. 요새 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님의 세계관처럼, 우리 아기도 그렇게 해맑게 자라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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