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리 나를 똑 닮아서 사무치게 하는지

42개월: 그게 너를 얼마나 힘들게 할지 뻔히 보여서

by 여울맘

피는 못 속인다는 만고의 진리는 아기가 자라날수록 더 분명해진다. 아기의 생각이 언어가 되어 흘러나오기 시작하니 어쩜 이리 벌써부터 나랑 생각하는 게 똑 닮은 거지 자주 소름이 돋는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해온 행동과 말이 40개월 만에 벌써 아기의 무의식에 자리한 탓인 수도 있겠고, 아니면 내가 이미 그런 유전자를 물려준 탓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요새 아기는 날이 갈수록 나의 미니미 같은 행동을 보이는데 그게 항상 마냥 기쁘지는 않다.


요새 날 가장 사무치게 하는 건 아기의 친구관계이다. 영국에 온 지 6개월이 되었건만 아기는 아직도 종종 어린이집에서 친구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지금처럼 어린 시절에는 부모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머리로는 조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아기가 친구가 없다고 툭툭 내뱉는 말은 유난히 가슴에 맺힌다. 짧게 보면 지금 소심한 아싸로 석사유학 시절을 보내고 있는 내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하고, 길게 보면 새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한참은 무섭고 외로운 마음에 눈물을 꾹꾹 삼켰던 내 모습이 보인다. 아기가 "오늘은 밀라가 나랑 놀아주지 않았어. 난 혼자 놀았어"라고 이야기할 때면 "그럼 여울이가 먼저 가서 같이 놀자고 이야기하면 되지!"라고 애써 밝게 조언 아닌 조언을 건네지만, 뒤돌자마자 내가 이런 조언을 할 자격이 있는지 금세 부끄러워진다. 삽 십 년을 더 산 나조차도 누가 먼저 다가와주기만을 바라며 애써 아싸로서 자기 위안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내가 감히 누구에게 조언을 한단 말인가. 솔직하게만 아기를 대하려 하다 보면 내 말문은 그저 막혀 버릴 뿐이다.


아기의 욕심도 꼭 나를 닮았다. 자신보다 서너 살은 많은 언니 오빠와 놀 때에도 지기 싫은 마음에 본인을 괴롭힌다. 가끔 서툴게나마 언니 오빠를 따라 하는 데 성공할 때면 그 어느 때보다 뿌듯해 하지만, 과도한 목표를 세운 탓에 성취감을 맛보기란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자주 좌절을 맛보는 아기를 보면 그 경쟁심이 얼마나 아기의 남은 시간을 속상하게 할지가 보여 벌써부터 마음이 아프다. 눈높이를 낮추면 훨씬 행복한 순간이 자주 찾아올 걸 알지만 사실 서른네 살이 된 나도 눈을 낮추는 게 쉽지가 않다.


어설픈 물욕도 어쩜 내 어린 시절과 벌써부터 똑같은지 하루에도 몇 번씩 영국 집은 작아서 싫고, 한국 집이 넓어서 좋다고 이야기한다. 초등학생시절의 나는 엄마가 티코를 타는 게 부끄러워서 학교는 아빠 차로 데리고 와주라고 이야기하고는 했다. 엄마 차를 타고 등교하는 날이면 일부러 교문과 먼 곳에서 미리 내리기도 했었다. 내 어설픈 물욕은 사실은 내가 갖고 누리고 싶은 마음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그 원천이어서 언제나 갖고 나서도 무언가 공허했다. 그 어설픈 욕심이 아기의 인생에도 노란 싹을 틔울까 싶어 조바심이 났다. 나도 모르게 아기에게 그릇된 경쟁심을 심어준 것만 같아 그동안의 내 모든 말을 곱씹기도 했다.


사실 내 인생에서 그런 성격들이 나쁜 점만 있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성격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 결국 무난하고 안정적인 관계 속에서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지나친 경쟁심 덕분에 때로는 내 한계를 시험하면서 후회 없는 입시와 취업의 결과물을 쌓아 오기도 했다. 서른네 살이 먹은 지금에 와서는 의식적으로라도 내 모든 면면을 애증의 감정으로 사랑하려 노력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길게는 삼십여 년의 시간을 스스로를 의심하고 괴롭히며 살아왔기 때문에,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요소가 내 아기에게서 보일 때마다 가슴이 사무친다. 섣부르긴 하지만, 내가 물려준 그 성격 덕분에 나만큼 힘들어할지도 모를 아기의 시간들이 마치 무슨 예언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아기가 조금 덜 괴롭게 자라나려면 내가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의식적으로 아기의 앞에서는 내 약점을 숨긴 채 이상적인 롤모델을 연기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솔직히 그런 모습까지도 잘 보듬어 안고 스스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나을까.


내 어린 시절을 거울처럼 비추어내는 아기를 보며 기쁜 순간보다 가슴이 사무치는 순간이 많다는 건 씁쓸한 일이다. 엄마아빠의 좋은 점만 쏙쏙 닮으면 좋을텐데, 왜 하필 아빠가 아닌 엄마의 못난 점을 닮은건지. 그래도 하나 위로가 되는 건 내가 그 누구보다 아기에게 좋은 인생 선배가 되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같은 성향을 가지고 삽 십 년을 먼저 살아 봤으니 아기의 인생에 작은 돌부리라도 미리 찾아내 골라 내줄 수 있지 않을까. 엄마도 그랬었다는 말 한마디가 그래도 아기에게 잠시 위로가 되어주지 않을까. 앞으로의 육아는 어쩌면 조금은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나의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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