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개월: 그래도 여전히 귀찮기는 귀찮은
아기와 함께 일찍 쓰러져 잠드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새벽 공부 루틴을 시작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며 고요히 하루를 시작하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꽤나 힐링이다. 그런데 열에 아홉은 그 고요한 평화를 방해하는 방해꾼이 있는데, 그게 바로 우리 아기이다. 아기는 요즘 왠지 잠자리에서 나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다. 내가 옆에서 사라지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울며 엄마를 찾는다. 수면 독립은 그림의 떡이 되었으며, 아기는 이제 아예 아빠를 내쫓고 안방 침대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오늘 아침에도 고요하게 커피를 즐기려던 찰나에 아기가 울면서 깨버리는 탓에 나만의 아침 힐링시간은 급히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럴 때면 눈치 없이 깨어난 아기에게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아기는 슬쩍 내 눈치를 본다. 미안한 일이지만 철저히 계획형 인간인 엄마에게 아침 공부시간을 방해하는 아기가 반가울 리가 없다. 일찍 깨어난 아기 탓에 머리도 마음에 들게 매만지지 못하고, 아침 공부도 하지 못한 탓에 오늘은 하루 종일 기분이 별로이다.
유학을 나온 지 벌써 6개월 차에 접어든다. 값 비싼 런던 유학에서 얻고자 했던 것을 꼽으라면 그건 바로 학위와 육아시간이었다. 회사생활이 못내 안 맞는 나 자신을 위해 커리어 전환의 기회를 만들고 싶었던 게 첫 목표였고, 회사와 병행하기가 지독히도 어려웠던 육아를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최소한의 목표라고 생각했건만, 막상 타지에서는 그 두 가지 만을 해내는 것도 꽤나 버거운 일이었다. 회사 다니던 시절과 비교하면 나에게는 사실 육아도 공부도 둘 다 해내기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고 있다. 하지만 온전히 여유로운 와중에, 은근히 버거운 시간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는 꽤 어려웠고, 낯선 환경에서 마음에 쏙 드는 육아 환경과 루틴을 세우는 것도 시간이 걸렸다. 매일 눈앞의 급한 불을 끄고 쓰러져 잠드는 날이 어느새 6개월이나 지나버렸다. 런던 거리를 거니는 꽤나 멋진 커리어우먼을 은근히 꿈꿨었는데, 이건 여전히 꿈으로만 남아 있다.
때때로 학위와 육아는 내 타이트한 시간예산을 두고 다투었고, 그때마다 나는 손쉽게 육아를 골랐다. 학위보다 육아가 자신 있었고, 학위보다 육아가 즐거웠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지금 이 아기와 보내는 시간은 이후 그 무엇으로도 대체되기 어렵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눈앞의 공부라는 짐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아기가 꼭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도 육아를 선택한 시간도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아기를 핑계 대며 살다 보니 석사생치고는 꽤나 나태한 한 학기를 보냈다. 오늘 아침 새벽공부를 망친 것처럼.
하지만 41개월의 아기는 엄마의 나태함의 핑계가 되어 주기에는 너무 야무지다. 오늘 아침처럼 엄마의 공부를 눈치 없이 방해하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지만, 사실 그녀는 나 없이도 많은 것을 잘 해낸다. 이미 하루 7시간은 오로지 어린이집에서 자신만의 사회생활을 해내고 있다. 요즘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양보다 질 높은 육아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나절을 헤어져 있어도 저녁에 서로 반갑게 재잘대는 두어 시간만 있다면 아기는 조금의 미련도 없이 다음날 씩씩하게 또 자기만의 사회로 등원한다. 조금씩 아기가 엄마인 나로부터 독립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하루 두어 시간 아기에게 온전히 내 정신을 집중해주기만 하면 아기는 손쉽게 배가 부른다. 어제는 영어가 서툰 아기가 친구를 사귀지 못해 시무룩해하길래 등원길에 아기의 같은 반 친구들을 관찰하며 다가갈 수 있는 팁을 알려주었다. "엘리가 우리랑 똑같은 엘사 신발을 신었네! 친구에게 'I like your shoes!'라고 이야기해 보자. 밀라는 오늘 헤어밴드가 멋지더라. 밀라에게는 'I like your hairband'라고 이야기 걸면 좋아할 거야"라고 이야기해 주었더니 금세 아기의 눈이 반짝였다. 누군가가 온전히 자신의 편이 되어 준다는 그 느낌이 얼마나 사람을 반짝이게 만드는지 그 순간 아기의 눈을 보며 알 수 있었다.
만 세 살까지는 전적인 관심의 육아가 필요했다면, 이제는 짧고 굵은 지지의 육아시간으로 발돋움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제 그만 아기를 핑계로 나를 소홀히 대하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는 떠나갈 녀석에게 섣불리 내 모든 것을 걸진 않을 것이다. 이제 조금 더 자신 있게 나만의 시간을 확보할 것이다. 하루 종일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자라나고, 저녁에 모여 앉아 서로에게 서로가 있다는 것을 진하게 확인하는 방식이 이제 어느덧 훌쩍 자라난 우리 "어린이"와 그 "어린이의 엄마"에게 필요한 삶의 방식이 되었다. 이제 아기는 가끔 귀찮게는 할지언정, 더 이상 엄마의 시간을 절대적으로 독점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를 귀찮게 하는 그 순간들이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존재감을 불태우고 있는 시점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