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미워, 하지만 엄마를 미워할 수도 없어

40개월: 아기의 시간은 곧 엄마의 시간인걸

by 여울맘

제법 주관이 뚜렷해진 40개월의 아기는 엄마인 내가 본인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 느낄 때면 씩씩 대며 "엄마, 미워!"하고 울어버린다. 그 모습이 꼭 남편에게 성내는 내 모습 같다.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한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게 나는 그렇게나 서러웠다. 아기도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엄마가 늦게까지 놀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게 꽤나 속상할 것이다. 하지만 미움은 잠시일 뿐, 서로 꼭 끌어안고 5초만 지나도 서로의 온기만으로도 서로에 대한 모든 감정이 사르르 녹아버린다. 누구보다 서로를 자주 미워하지만, 동시에 세상 그 누구보다도 미워하기가 어렵다.


엄마라는 존재가 아가의 세계를 지배하는 시기는 길어야 십 년, 그 이후에는 엄마 대신 친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고 한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내 품에 아기가 온전히 안겨있을 그 시간이 길어야 십 년이라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했는데, 입장을 바꿔 아기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머리가 굵어지기 전의 그 십 년의 시간이란 사실 그 어느 때보다 밀도가 높고 강력하다.


아기에게는 나의 모든 것이 롤모델이다. 내가 하는 말은 절대적인 룰이 되어 버리고, 아기의 눈에 담긴 내 행동과 말투는 어느샌가 그대로 우리 아기의 삶에서 재현된다. 하다 못해 머리를 묶을 때에도 엄마처럼 묶어주기를 바라고 매일 아침 내 옷차림과 신발을 본인의 것과 비교하며 공통점을 찾기 바쁘다. "봐, 엄마도 이렇게 하잖아"라고 본보기를 보여주면 바쁜 아침에도 금세 아기의 외출 준비를 마칠 수 있다.


뭐든지 나를 기준 삼아 자라나는 아기가 기특하고 대견하지만 동시에 꽤나 많이 겁이 난다. 사실 아기는 나를 롤모델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곁에 있는 나를 의심 없이 모방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나는 매일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찍질하며 자라나고 있는데, 이 미완성된 모습을 누군가가 벌써 부지런히 따라 하고 있다. 아기가 부지런히 자라는 그 시간에는 엄마가 부지런히 자라나는 시간도 그대로 녹아있다.


결혼을 하고 서른네 살이 되어 돌아보니, 우리 부부에게도 우리 부모의 시간이 그대로 심어져 있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부모님의 사고방식을 옳은 것으로 학습하면서 자라났다. 우리 집은 때로는 요령 없고 고지식하다 싶을 정도로 규칙에 집착하는데, 남편의 집에서는 자유분방하게 요령껏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다. 그동안 내가 옳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가치들은 그저 내 부모가 그들의 30대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중립적으로 담고 있는 것 그뿐이었다.


당연하게도 30대의 나의 젊은 부모가 살아나던 방식은 완전하지 않았을 테고, 그래서 나에게 나의 부모의 모습은 가끔은 다소 어리석고 고지식하고 무례하기도 하다. 한때 나의 전부였던 나의 부모가 이상적인 롤모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속이 상하는 일이다. 그래서 가끔은 엄마에게 더 모질어지고, 부모를 쉽게 미워하게 된다. 하지만 부모의 30대는 내 유년시절 그 자체이기도 해서 부모님을 미워하는 순간 내 자신을 부정하는 꼴이다. 딱히 효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더라도 스스로가 매일을 건강히 살아내기 위한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도 부모를 미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 우리 아기도 나중에 30대의 젊은 엄마가 이상적인 롤모델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십 분만 지나도 방금 아기에게 소리를 질렀던 못난 내 모습에 자책을 하는 부족한 나인데, 이런 시간들이 아기의 초기 10년에 아무 거름망 없이 그대로 침투해 버린다. 20년만 지나도 아기는 나의 고집 세고 성미 급한 모습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요즘의 내가 그러듯이 "엄마, 그게 아니라고!"라고 나에게 소리를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동시에 아기가 보고 배운 게 그런 모습뿐이라면 아기도 내 부족한 모습까지 그대로 닮아 자라 있을 것이다. 완벽한 롤모델이 되어 주지 못한 30대의 젊은 엄마를 미워하면서, 하지만 동시에 그보다 나을 게 없는 본인의 모습에 상처 입으면서. 조금 슬프긴 하지만 30대에 엄마가 되어야 하는 타임라인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기에게 엄마가 가장 중요한 그 시기는 사실 엄마 본인에게도 어른이 되어가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직 부족한 존재가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인지했다는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면서, 우리가 부지런히 자라나는 과정이 서로에게 조금 덜 힘들기를 바라는 게 최선이다. 오늘도 아기의 시간과 엄마의 시간이 부지런히 자라나서, 이십 년 후에 우리가 서로를 덜 미워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겨울왕국에 왔다고 생각하던 아기, 요즘 엘사드레스만 입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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