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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맘 Dec 20. 2022

내 아가의 하찮음에 대하여

생후 3개월 : 그럼에도 아가의 세상은 잘만 굴러간다.

아가라는 존재는 가끔 보면 참 보잘것이 없다.


걸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고개를 가누지도 못한다. 자기 몸에 손발이 달려 있다는 건 70일쯤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자기 손발에 놀라 잠에서 깨기 일쑤였고, 손싸개를 풀어 두면 자기 손으로 얼굴을 할퀴어놓는 것도 다반사였다.


아가의 하찮음이 극대화되는 건 잠들 때이다. 눈만 감으면 잠들 수 있을 텐데, 아가에게는 그게 그렇게도 어려워서 꼭 쪽쪽이를 물려주거나 품에 꽉 끌어안아서 안정감을 주어야만 한다. 100일쯤이 되자 그래도 뉘어 놓으면 스스로 눈을 질끈 감고 잠꼬대처럼 한참을 앙앙 칭얼대다가 잠에 드는데 그게 여전히 하찮고 귀엽다.


최근 읽은 육아서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에서 아기의 전능함에 대한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아기는 '너 스스로 기저귀도 못 갈고 손발만 버둥거리며 누워있잖아', '스스로 잠도 못 들잖아' 하고 타박받지 않는다. 배고플때쯤 바로 먹을 것이 주어지고, 뜨겁거나 축축한 불쾌감은 빠르게 해소되며, 졸리면 잠들어 지는 아기의 세상. 아기는 적절한 양육을 통해 전능감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 능력 없는 하찮은 아가지만, 역설적이게도 아기의 세상은 그 누구의 세상보다도 무탈하게 성공적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아기를 돌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귀엽게 만들어 놓았다. 이 때문에 손발만 버둥거리며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밥을 먹여주기를 재촉하는 아가이지만, 엄마는 언제나 아가의 세상에 들어온 빨간 불을 끄러 기꺼이 호다닥 달려갈 수밖에 없다. 아가가 세상에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 좌절이 아니라 전능감이 될 수밖에 없도록 자연이 아가의 귀여움을 치밀하게 설계해 놓은 것 아닌가 싶다.


다만, 우리 아가의 세상도 마냥 전능감에 취해있지는 않을 것이다. 100일이 되어가자 아가에게 뒤집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것인지, 옆으로 가만 누워 베개를 안고 있다가도 베개를 넘어가고 싶어서 온몸을 낑낑거린다. 누워서 모빌을 보다가 상체를 들어 올리며 앉으려고 하기도 하고, 눈앞에 보이는 물체를 잡고 싶어서 손을 버둥거리기도 한다. 드디어 아가가 뒤집고 앉으려는 새로운 단계로 성장하려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아직은 수없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아마 아가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처음 배워가고 있을 것이다.


아가가 좌절감을 느끼기 전에 원하는 대로 뒤집어주고 앉혀줄 수도 있겠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하찮은 아가로 머물 수는 없다. 이 잠깐의 좌절의 시기를 넘어서는 순간 아가는 더 큰 성취감을 느낄 것이다. 아가는 더 이상 전능하지만은 않을 테지만,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보다는 훨씬 멋진 세상일 것이다.


앞으로 아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 신발을 신는 것 등등 더 많은 것을 스스로 하고 싶어 할 것이고, 때로는 어른처럼 멋지게 해내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함에 좌절할 수도 있겠다. 그때마다 아가의 전능한 세상이 깨어질까 두려워 호다닥 달려가 부축하는 엄마가 되기보다는, 다들 넘어지면서 크는 거라고 말해주며 스스로 다시 시도해볼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흔하디 흔한 메시지를 나는 우리 아가에게 여러 버전으로 가공해서 수없이 들려줘야 할 것이다. 실패할 때마다 상한 마음을 어떻게 달래주고 용기를 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아기에게 실패의 가치를 알려주고 용기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앞으로 엄마인 나의 큰 숙제 중 하나이다. 그에 앞서 엄마인 내가 먼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본보기가 되어줘야 할텐데. 엄마의 숙제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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