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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맘 Jan 13. 2023

내 젖을 더 이상 찾지 마세요

생후 4개월 : 나의 모유수유 일기

나의 모유수유는 정말 얼렁뚱땅 시작되었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 난 당연히 분유수유를 할 줄 알고 분유제조기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모유의 좋은 점에 대한 이야기는 애써 흘려들으면서. 그렇게 별생각 없이 출산 후 조리원에 온 첫날, 난 선생님 손에 이끌려 어느새 가슴마사지를 받고 있었고 콸콸 잘 나오는 초유에 흥분하신 선생님은 당장 내 아기를 데려오셔서 초유를 물려주셨다.


그 순간이 시작이었다. 그냥 유리창 너머로 볼 때도 이미 이쁜 아가였지만, 눈도 뜨지 못한 채 젖냄새를 맡고 입만 아앙 벌리던 내 아기새의 모습은 한순간에 내 모든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어느새 내 젖을 앙 물고 힘차게 빨던 아기의 촉감은 또 다른 반전. 저 작은 몸 어디서 이런 힘이 난 걸까.


이후로 난 홀린 듯 모유수유를 시작했다. 모유를 먹다 자꾸만 품에서 잠드는 아가 때문에 매일 수유량을 잘 채우고 있는건지 걱정이었다. 행여나 모유량이 부족해질까 새벽에도 부지런히 3시간마다 일어나 유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젖몸살이 오지 않을까 전전긍긍이었다. 빵순이였던 나는 모유에 좋다면 좋아하지도 않던 식단도 억지로 챙겨 먹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아가의 몸무게는 잘 늘지 않아서 나는 늘 죄스럽게 발을 동동 구른다. 젖물리는 방법이 잘못된 건 아닐까, 수유텀을 잘못 잡은 건 아닐까, 내가 밥을 너무 대충 챙겨 먹은 건 아닐까.


모유수유를 한 이후부터 내 젖을 찾는 목소리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되었다. 남편이나 친정엄마가 아기를 봐주다가 젖동냥하러 온 심봉사처럼 보채는 아기를 데리고 날 빼꼼 찾아올 때면, 나도 모르게 "아직 먹을 때 아니야"라고 소리쳐버린다. 가끔은 배고파 보채는 아가가 아주 조금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젖을 물리기 전에는 매번 이번 수유는 오래오래 잘 먹일 수 있을까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젖을 먹이는 그 이십 분 남짓의 시간은 매번 기대 이상으로 황홀하게 행복하다.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서 엄마와 아기가 가장 가까이서 교감하는,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둘만의 추억으로 쌓여간다. 이쯤 되면 모유수유는 아기를 위한 거라기보다는 전적으로 날 위한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은 유난히 아기가 모유를 짧게 먹어서 분유를 보충해 줬더니, 무려 160ml를 더 먹어서 날 좌절시켰다. 그동안 매번 이만큼 더 먹고 싶었던 거야? 내가 널 충분히 먹이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 이젠 4개월도 되었으니 진짜로 분유수유로 돌아서야겠다 마음먹었다. 이제 아무도 내 젖을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슴 처짐을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기를 맡기고 외출도 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부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막상 모유를 먹다 말고 나와 눈 맞추고 씩 웃어주는 아기를 보면 이 기쁨을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 이젠 내 젖을 찾지 말라 호기롭게 외쳐놓고도 결국 나는 아기와의 치열한 밀당에 패배해서 얼렁뚱땅 하루만 더 모유를 먹여보자 모유수유를 이어간다.


이렇게 얼렁뚱땅 1년 완모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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