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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맘 Mar 03. 2023

나의 작은 꼬마 탐험가

생후 5개월 : 눈을 뗄 수 없는 배밀이 지옥이 시작되었다

많은 부모들이 아가가 뒤집기를 시작하고 되집기를 하지 못하는 시기를 뒤집기 지옥이라고 한다. 아가가 스스로 신나게 뒤집어 놓고 막상 되집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니 그 상태로 보챈다는 거다. 그런데 막상 우리 아가는 120일쯤 뒤집기에 성공한 이후 생각보다 이 시기를 평화롭게 보냈다. 역시 우리 아가는 순둥이구나, 도취되어 있는 사이에 우리 아가는 우리에게 예상치 못했던 배밀이 지옥을 맛 보여주고 있다.


아가의 배밀이는 160일쯤 되는 어느 날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가를 장난감과 함께 매트 가운데 풀어놓고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오니 매트 위에 아가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여 주변을 살피는데 매트 밖으로 나와 의자다리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나의 아가. 조금씩 꼬물댈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배밀이만으로 그렇게 먼 거리를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어서, 의자 밑의 아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로 아가는 꼬마 탐험가가 되어 집 안 곳곳을 누비고 있다. 저 멀리 의자 다리에 꽂히면 그곳만을 응시하며 질주하기도 하고, 원하는 곳에 다다르면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뜯으며 적극적으로 탐색한다. 아가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매우 빨라서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도 순식간에 위험한 것을 만지려 하기 일쑤다. 특히 요새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로봇청소기와 슬리퍼에 꽂혀 있어서 아가 눈을 피해 청소기를 돌리고 슬리퍼를 벗느라 애를 먹고 있다.


수시로 아가의 놀이매트 위를 닦고 소독제를 뿌려가며 아가용품의 위생에 신경 쓰고는 있지만, 온 집안을 그렇게 쓸고 닦을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나 아가는 바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미처 내 눈으로 발견하지 못한 먼지와 이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 같아 처음에는 아가가 매트를 이탈하는 걸 막는데 급급했다. 역시 우리도 베이비룸 가드를 설치해야 되는 건가 당근마켓을 기웃거려 보기도 했는데, 일단 베이비룸으로 거실이 또다시 잠식당하는 게 싫었고, 무엇보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걷기 시작한 이후에는 더 이상 쓰기 어렵다는 이야기에 포기했다.


나는 결국 우리 아가가 탐험가가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가는 자기가 직접 가서 탐색해 보기 전까지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다. 수많은 좌절 끝에 결국 직접 철제 의자 다리를 만져보고 나서야 '이건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구나' 깨달은 건지 철제 의자 다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다. 요새는 자기 눈높이에 있는 건 거의 다 정복했다고 생각하는지, 선반 2층에 있는 박스나 장난감을 용케 끌어내려 보기도 한다.


아가가 탐험 중이라고 생각하니 평소 아무 감흥 없던 집 안 곳곳이 나에게도 새로워 보여서 순간순간이 재미있다. 나는 이 작은 꼬마 탐험가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기로 했다. 딱 반 걸음 정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면서 혹시 위험한 상황이 생기려 하면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위험물을 제거해주려고 하는 편이다. 아가가 무언가를 해내면 옆에서 감탄해 주면서 나도 함께 그 물건을 탐색해 준다. "이건 무겁네?"라든지 "우와 여기는 깜깜하네. 기어서 밝은 곳으로 나가볼까?" 같은 말을 해주면 아가도 자신이 해낸 성취에 왠지 더 신나 하는 기분이다.


그래도 아직 주방 쪽은 떨어진 음식물을 아가가 집어먹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위생이 특히 걱정되어 말리고 있지만 이 추세로 보면 조만간 주방까지 아가에게 점령당할 지도 모르겠다. 그날을 대비해 나의 꼬마 탐험가의 모험심이 안전하게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요일마다 구역별 청소 알람도 설정해 뒀다. 그래도 예상치 못한 걸 입에 넣고 있는 아가를 보면 나와 남편은 우리도 모르게 일단 말리려 들겠지만, 웬만한 세균 조금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말에 조금 자신감을 얻어보기로 했다.


나의 아가, 커서 탐험가가 되어도 멋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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