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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맘 May 15. 2023

엄마라는 이름의 커리어

생후 8개월 : 아가가 처음으로 엄마를 불러주었다

그동안 육아가 적성인 줄 알았던 나는 요새 보란 듯이 꽤나 매운 8개월의 산을 넘고 있다.


8개월이 된 아가는 기고, 잡고 서고, 매달리고 신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누워있기 싫어하는 아기 덕분에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입히는 게 어느새 가장 어려운 일이 되었다. 내가 어딜 가든 졸졸 기어 오고 내가 눈에 안 보이면 엉엉 울어버리는 탓에 화장실 한 번 가기도 쉽지 않다. 정신적으로도 많이 발달한 건지 원하는 것이 분명해졌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도 부린다.


아기가 훌쩍 자라난 8개월의 시간만큼이나, 나의 휴직기간도 꽤나 많이 흘렀다. 유급휴직 1년은 어느새 반도 남지 않았고, 어느새 회사의 주요 소식을 잘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회사와 멀어질수록 역설적이게도 회사로의 복귀라는 압박도 실감 나게 다가온다.


엄마로서의 자아는 아이의 인생을 경영하는 일종의 자영업 같아서 하는 만큼 성과가 나오기 때문에 어찌 보면 꽤나 보람차다. 때문에 이대로 영영 퇴직하고 싶다고 습관적으로 말하고 다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진심으로 직장인으로서의 자아를 놓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으로서의 나를 자랑스러워해 주는 가족들도 있고, 이건 내 청춘이 오랜 시간 그려왔던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제는 어느새 훌쩍 커서 이것저것 어지르고 있는 아가를 바라보며 이 기나긴 휴직기간 동안 어떤 식으로라든 업무 능력을 키워 두어야 하지 않을까 마음만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기가 '엄마'라고 또렷하게 불러주었다. 한번 뱉으니 계속해서 '엄마마마 엄마마' 중얼거리는 것이다! 칭얼대면서 '엄마' 비슷한 발음을 한지는 꽤 되었지만 이렇게 또렷하게 날 바라보며 말해준 건 처음이라서 큰 감동이었다.


사실 아가에게 '엄마'라는 말은 밥이자, 잠이자, 뽀송한 새 기저귀이자, 장난감 일 뿐일지도 모른다. 눈앞에 내가 아닌 누가 있더라도 그저 필요한 게 생기면 가장 효과적으로 그걸 해결해 주는 명령어로 '엄마'를 외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아가가 나를 '엄마'로 불러준 순간, 나는 엄마로서의 삶도 나의 하나의 커리어로 자부심을 가지고 가꿔보자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한 인간을 잘 키워낸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셀 수 없이 많은 과제와 난관을 이겨내야 한다. 부모는 그 과정을 옆에서 잘 이끌어주는 쉐르파 같은 자리이다.


그런데도 막상 나부터도 육아를 하는 엄마들을 저평가했던 건 아닐까. 어쩌면 육아'만'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왠지 불안했던 내 기분을 아가가 눈치채고, 처음 뱉은 '엄마'라는 말로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 같다.


엄마, 엄마도 멋진 커리어야. 지금 엄마는 여러 커리어 중 엄마라는 커리어에 집중 투자하고 있을 뿐이야.

현실적으로 난 결국 직장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평생 회사에 매여 아등바등 워킹맘을 살아내게 될 것이다. 지금의 휴직기간은 오롯이 엄마로서의 커리어를 탄탄하게 쌓아 올릴 수 있는, 어쩌면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는 소중한 기회이다. 내년 이맘때쯤 아가와 떨어져 회사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지금의 하루하루를 그 어느 때보다 밀도 높게 보내야 겠다는 조바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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