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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맘 Jan 31. 2024

동화가 아름다운 이유

생후 17개월: 아기와 함께라면 언제 어디서든 동화가 된다

동화(童話).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의 이야기.


어른들은 동화 같은 삶을 동경한다. 합격, 승진 이런 거창한 행복은 동화가 될 수 없다. 내게 동화 같다는 말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동의어였다. 출근길에 문득 바라본 파란 하늘, 지친 퇴근길에 나를 반겨주던 분홍빛 노을, 매일 다니던 콘크리트 바닥 구석에 어느 날 피어난 민들레, 주말 아침잠이 덜 깬 나를 폭 안아주던 사랑하던 사람의 품 뭐 그런 것들. 결코 대단하진 않지만 내 마음을 빈틈없이 꽉 채워주는 확실한 행복 말이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그 자체로 내 아이가 만들어내는 동화가 된다. 아이들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는데 특화되어 있다. 날 좋은 날 산책을 나가면 내 아이의 동화는 날개를 단다. 솔방울을 하나씩 주워서 유모차에 담기만 해도 신이 나고, 푸드덕 날아가는 새를 만나면 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오늘은 자신이 주은 솔방울을 까치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건지 아기가 까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솔방울을 내밀었는데, 다음 달 어치의 행복함까지 모두 당겨 쓴 기분이었다. 말로 설명하면 별 거 아닌 게 되어버리는 순간들이지만 아기와 함께하는 그 순간에는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빈곤한 상상력을 가진 엄마에게 아기의 상상력은 매번 놀랍다. 나비가 그려진 밴드를 붙였을 뿐인데 어느새 하늘하늘 날갯짓을 하며 돌아다닌다. 나에게도 나비 밴드를 붙여주며 같이 날자고 제안하는 아기를 뿌리칠 수 없어 같이 날아다니다 보면 육아로 꾀죄죄해진 내 행색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바쁜 저녁시간 중 혼자 낱말카드를 말아 뿌뿌 불며 놀고 있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기가 잠든 뒤 돌돌 말아진 나팔 그림의 낱말카드를 발견했다. 본인의 상상 속 세계에서 멋지게 나팔을 불고 있었을 귀여운 아기에게 박수를 보내주지 못한 게 아쉽고 미안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나 볼법한 아름다움이라 '동화같이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는 줄 알았는데, 아기랑 있다 보면 동화가 현실이 된다. 아이의 삶은 조금의 덧붙임이나 꾸밈없이도 있는 그대로 동화(童話)이다. 어쩌면 내가 살아오며 동화 같다고 느꼈던 순간들은 내 안의 작은 아이가 깨어난 순간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아기가 기가 막히게 일상 속 행복을 포착해 내듯이 아주 가끔씩은 내 속의 어린 내가 허덕이고 있는 어른의 나를 위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잡아서 눈앞에 들이밀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동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지나가는 바람에도 행복했던 내 어린 시절의 시간들이 겹쳐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모두 동화였을텐데 어느새 커버린 어른들에게 동화는 마냥 먼 세계의 이야기로만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아이는 어른인 내가 어렸을 때 살아 냈던 나의 동화를 일깨워준다.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에는 아이와 엄마가 된 나, 그리고 어린 나까지 세 존재가 함께한다. 지금의 동화와 함께 과거 내가 살아냈던 동화의 아름다움까지 더해진다. 그 무엇보다 확실한 행복이 두 배가 된다. 누군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의 장점을 꼽으라면 '아이와 함께하면 나도 동화를 살게 돼요'라고 대답하고 싶다.


물론 육아의 모든 순간이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다. 하지만 모든 동화가 해피엔딩인 것은 아니니까. 눈앞의 희로애락까지 모두 끌어안고 오늘도 사랑스러운 내 아이의 동화의 다음 페이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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