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6개월: 엄마가 잘하는지는 아가의 사랑이 증명한다
유난히 육아가 버겁던 요즘 전문가의 힘을 빌려 마음을 달래보고 싶었는데 웬걸 세상에 마음이 아픈 사람이 이리도 많을 줄이야. 우리 지역 열댓 곳의 병원 그 어디서도 당일 진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정신과를 처음 찾아본 티를 팍팍 내며 연신 진료를 거절받고 나서야 겨우 심리상담센터 한 곳에 마음을 털어놓을 수가 있었다. 병원을 찾아 헤매는 겨우 두 시간 남짓 아기와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그 사이에 벌써 기분이 괜찮아져 괜스레 민망해하며 상담실을 들어섰는데, '16개월 아기가 있는데요'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울음이 터져 버렸다. 펑펑 울면서 겨우 이어간다는 이야기가 아기는 너무 예쁘고 객관적으로 키우기 편한 아기라고, 남편도 최근 몇 주를 빼면 정말 열심히 육아에 참여해 줬다는 이야기인 게 스스로도 우스웠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내 마음속 문제라는 걸.
그저 평가하거나 해결하려 들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지금 잔뜩 꼬여 막혀 있는 내 마음의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막막했는데 오늘만 보고 말 사람처럼 아무 이야기나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찬찬히 돌아보니 삼십여 년을 모범생으로 살아온 내가 엄마가 되어서도 모범생이 되고 싶었던 게 결국 문제였다.
육아와 공부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게 참 많다. 비슷한 점이라고 한다면 정공법만 한 게 없다는 것. 교과서에 충실하라는 닳고 닳은 말처럼 육아는 자신의 아기를 교과서 삼아 꾸준히 관찰하고 되짚어보며 여러 행동을 관통하는 기질적인 특성을 꿰뚫어야 한다. 수많은 육아 팁이 나돌지만 언제나 우리 아이에게만 해당하는 불의타 문제가 있다. 꼼수로 좋은 결과를 내는 건 한계가 있다. 오랜 시간 아이에게 시간과 관심을 쏟으면 그만큼 아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나만의 육아 비법이 쌓여간다.
그러면서도 육아에는 정답이랄 게 없어서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의심하게 된다. 주입식 교육에 유달리 특화되어 있는 나에게는 이게 무엇보다도 힘들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도 소아청소년정신과 전공자인지, 소아청소년과 전공자인지, 언어학 전공자인지, 유아교육 전공자인지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무엇을 길잡이 삼아 내 아이를 길러내야 할지는 매 순간 부모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처음에는 분야별로 제일 믿을만한 롤모델을 몇몇 골라 그들이 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 했다. 그러나 그 집과 우리 집의 가정환경이 다르고, 그 아이와 우리 아이가 다르기 때문에 무엇 하나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할 수는 없었다. 또 세상에는 뭐 이리 좋다는 육아법이 많은 건지 어디서 주워들은 육아법을 다 해내려면 아이가 깨어있는 하루 열 시간 남짓 시간이 모자랐다. 육아관들이 서로 충돌하지나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평생을 모범생으로 살아오며 대입, 취직, 결혼, 출산까지 대다수가 좋다고 평가하는 목표를 하나씩 깨 오던 게 내 정체성이었는데 육아에서는 유달리 그게 힘들었다. 겨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정보들을 짜깁기해서 모범적인 엄마와 아내의 모습을 설정했지만 막상 현실에서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기와 남편은 그저 혼자 허덕이는 엄마의 모습에 어리둥절할 뿐이고, 나 스스로도 이게 맞는 건지 확신이 없었다. 육아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아기가 주체가 되어 커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아기가 만족하는 것이 좋은 육아라고 한다면 우리 아기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저 많이 안아주고, 눈 맞춰주고, 재잘재잘 말 걸어주는 것뿐이다. 소근육 발달, 언어능력, 인지능력, 이중언어, 사회성 이런 것들은 사실 내가 잘 받고 싶은 속세의 성적표일 뿐이었다.
엄마가 되어서도 모범생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발버둥 쳤는데 엄마의 세계에 사실 모범이란 없는 것 같다. 그저 모든 엄마는 아기에게 대체불가능한 유일한 엄마일 뿐이다. 누군가는 더 부지런히 엄마표 놀이를 준비해 주고, 영어로 말 걸어주고, 정성 가득한 수제 이유식을 만들어 줄 수 있겠지만 우리 아기는 언제나 그런 완벽한 엄마들을 뒤로하고 내 품으로 뛰어와 안길 것이다. 가끔 화를 참지 못하고 아기에게 눈을 부릅뜨는 모습마저도 아기는 한 치의 의심 없이 엄마라고 불러준다. 아기에게 엄마는 그저 존재 자체로 최고인데 그동안 나는 아기를 외면하고 그저 내 지인들과 SNS 팔로워들의 눈앞에 완벽한 엄마이고 싶어서 버둥거렸던 건 아닐까. 앞으로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모범생으로 살게 되겠지만 엄마로서의 내 정체성은 언제나 내 아이의 사랑으로 탄탄히 증명될 거라는 자신감을 가져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