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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맘 Jun 04. 2024

두 개의 방

20개월 : 복직한 엄마는 이도저도 다 못하는 듯하다

어린이집에 유달리 잘 적응해 준 아기 덕분에 예정보다 빠른 복직을 하게 된 지 벌써 한 달. 나는 다를 거라 기대했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숱한 워킹맘의 고생담 속 주인공이 된 듯하다.


오랜만에 돌아간 직장에서 나를 보는 눈은 의심 투성이이다. 과거의 후배들은 이제 어느새 나보다 노련한 선배티가 나고, 아직 진심으로 후배를 선배처럼 모실 준비가 안 된 나는 매 순간 괴롭다. 일 년 반의 육휴는 생각보다 길었고, 그 사이 직장인으로서의 나는 생각보다 더 녹이 슬어버린 듯하다.


더욱 서글픈 건 엄마로서의 역할은 그마저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와 외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우리 아가는 일곱 시가 되어야 겨우 나와 만난다. 그마저도 회식과 야근이 생기면 얼굴도 못 보고 잠들기 일쑤다. 매일 눈치를 보며 칼퇴근을 하려 애쓰는데, 막상 칼퇴하고 집으로 들어오면 지쳐 쓰러지기 바쁘다. 하루종일 남의 손에 맡겨진 아기보다 하루종일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다 진이 빠져버린 나 자신을 돌보기 바쁘다.


착한 우리 아가는 이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건지 단 한 번도 투정을 부리지 않고 의연하게 놀아주는데, 그게 또 가슴이 아프다. 두 돌도 안 된 아기가 벌써 슬픔과 아쉬움을 삭히고 있는 건 아닐까. 아기에게 마냥 미안하고 죄책감이 든다.


회사에서도 인정받지 못할 거라면 육아나 제대로 하고 복직할 걸 싶다가도, 사회 속 커리어를 쌓아가는 자아도 마냥 내팽개치고 싶지는 않고. 그렇게 매일 내 맘 속 두 개의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도저도 아니게 살고 있다. 하필 내 주변에는 비슷하게 휴직 후  복직했는데 곧바로 멋지게 실력을 뽐내기도 하고, 동시에 아기도 잘 키워내는 유니콘들만 눈에 띈다.


각자 태생과 여건이 다른 건데 그걸 인정하기 싫어 발버둥 치다 보니 내 마음만 계속 갉아먹게 된다. 복직하면 일 가정 양립을 통해 활력이 생길 거라 기대했던 마음과 달리, 일 가정이 모두 무너지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자니 마음도 함께 무너진다.


오늘은 모처럼만에 일찍 퇴근해 아가의 손발을 만지작거리고 볼을 쪽쪽 빨아대면서 힘을 얻어야 할 타이밍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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