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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맘 Jun 27. 2024

뒤돌아보니 또 엄마의 분리불안이었다

21개월 : 사는 게 버거워도 기록할 수밖에 없는 놀라운 아가의 성장속도

두 달 차 워킹맘은 여전히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버겁다. 아기를 재우면서 같이 쓰러져 잠드는 게 매일의 일상이고, 복직하면서 야심 차게 세워 둔 만다라트 계획에는 먼지가 쌓인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새 아가의 성장속도는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빨라서, 쓰러져 자고 싶은 몸을 일으켜 어떻게든 육아일기를 남기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의미도 모르고 모든 말을 따라 하기 바쁘던 앵무새 시절의 20개월을 지나 21개월에 접어든 아가는 하루하루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하는 어휘가 늘어간다. 최근에는 "여울이 어려워, 도와줘"라고 해서 우리를 놀라게 하더니 오늘은 "배불러, 많이 먹었어"라고 말하면서 식판을 치워 버리는 모습으로 다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옹알이 같은 웅얼거림도 가만히 들어 보다 보면 다 의미가 있는 어휘들이다. 할머니가 읽어주신 "네드의 무지개"라는 책 이름을 중얼거리는가 하면, 잠자리에서는 "이불 덮어줄게, 다시 덮어줄게, 눈 감아, 기다려, 자장 우리 아가"라고 나를 토닥이며 재우는 아가의 작은 염불소리가 깜찍하다.


복직이 버거운 엄마와 달리 아가의 적응력은 이번에도 나를 뛰어넘는다. 아가를 어린이집에 보낼 땐  빼앗긴 낮시간이 초조하더니, 복직을 하고 나니 오후 4시 하원시간부터 퇴근 후 7시까지의 시간이 못내 아쉽고 미안하다. 복직한 첫 달에는 가끔 생기는 회식도 원망스러웠고, 처음으로 맞이한 1박 2일 워크숍에서는 아기 핑계를 대며 도망치기 바빴다. 한 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아기의 섭섭함을 달래줘야 한다는 강박에 하루종일 나를 채찍질하다 보면 퇴근 후 녹초가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 반면, 아가는 할머니까지 함께 살며 더 복작거리게 된 집이 오히려 좋은 건지 그 어느 때보다 밝기만 하다. 


어느새 복직 두 달이 되어 그때를 되돌아보니 이번에도 역시 엄마만의 분리불안이었구나 싶다. 뱃속에 있던 열 달을 포함하면,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낸 18개월까지 총 28개월간 하루도 아기와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어린이집을 보내게 되고, 하원 후에도 할머니의 손에 아기를 맡기게 되었다. 아가와 나는 한 몸이었는데, 어느새 아가의 하루에는 내가 아는 시간보다 내가 모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워킹맘이 된 나를 힘들게 한 건 회사의 업무도, 아가에 대한 미안함도 아니고 사실 아가와 분리된 나의 불안증 그뿐이었던 것 같다. 


이제 겨우 21개월 아가에 대해 분리불안을 느끼는 게 유난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아가의 삶에는 내가 모르는 부분이 점점 더 커질 텐데 그 시간들을 어떻게 성숙하게 넘길 수 있을지, 초보엄마는 그저 막연하게 두렵고 불안하다. 엄마가 된다는 건 아기를 키워내는 것 그 이상으로 나의 마음과 감정을 내어줘야 하는 일이다. 나의 분신인 듯하면서도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꾸려가는 그녀를 나는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만 또 앞서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나는 아직 그저 초보 엄마다. 이젠 허술하고 실수 투성이인 초보엄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도 된 것 같은데, 모범생 초보 엄마는 그게 여전히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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