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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맘 Aug 23. 2024

엄마로서의 나, 그리고 그냥 나

23개월: 엄마로서도, 사회인으로서도 잘 못하는 것 같아

갑자기 2박 4일 미국 출장이 생겼다. 그리고 동시에 출장 다녀오자마자 새로운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모든 게 갑작스러워서 유불리를 따질 겨를도 없이 아직은 얼떨떨하다. 그렇게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비행기는 북미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아기를 낳게 된 이후 처음으로 아기와 하루 이상 떨어지게 되었다. 강제로 가지게 된 혼자만의 시간이 반가울 줄 알았는데, 비행시간 내내 온통 아기의 스케줄을 상상하고 있는 나를 보니 아직 엄마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미국 출장과 새로운 부서에서의 커리어보다는 엄마의 부재를 실감하게 될 아기가 걱정되고, 다녀와서 어떻게 아기의 마음을 다독여줄까 가 우선이다. 나름 내 인생에서도 크나큰 변화를 마주하고 있는 순간인데 이렇게 엄마로서만 살아도 되는 걸까.


우리 엄마를 보며 나도 꽤나 헌신적인 엄마가 될 거라 짐작은 했었다. 내가 봐 온 엄마는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뛰어와 가정을 돌보시며, 변변한 취미조차 즐기지 않으셨다. 꽤나 머리가 큰 내가 엄마에게 취미생활을 즐기라고 권했을 때에도 엄마는 진심으로 엄마보다 가정이 우선인 것처럼 보였다. 사실 엄마가 날 위해 희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나의 이기적인 욕심이었을 것이다. 뒤돌아보니 엄마 본인에게도 우리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꽤나 보람되어 보였다.


그때는 나도 이 정도로 몰입도 높은 엄마가 될 줄은 몰랐다. 막상 아기를 낳아보니 아기는 상상 이상으로 사랑스럽고, 매일 매 순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아기를 돌보는 순간은 그야말로 단순 노동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 요새는 옷을 안 입겠다, 더 놀겠다 떼를 쓰는 시간이 많아져서 얄미우면서도, 또박또박 자기주장을 피력하는 아기가 또 앙큼하게 귀엽다. 아침에 자는 아기 얼굴을 비비고 나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기의 볼살이 사무치게 그립다. 사랑하지 않고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는 신비한 존재이다.


아기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수록 나를 위한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엄마의 희생이 달갑지만은 않았던 나인데, 어느새 나의 엄마의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다연이가 요새 내 말과 행동을 따라 하고 배우는 걸 보면, 딸이 엄마를 닮는 건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한 세대를 지나온 만큼 좋은 쪽으로 나아져야 할 텐데, 나도 모르게 다연이가 부담을 느낄 희생을 자청하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렵다.


나는 커리어 욕심도 있었고, 나 자신에 대한 자기 계발 욕구도 꽤나 강한 사람이었다. 멋진 차를 몰고, 멋진 옷을 입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전문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 나의 일기는 육아일기가 전부이다. 나를 웃게 하고 설레게 하는 건 아기의 애교가 유일하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대부분이 육아이다. 나를 위한 영어 공부는 하고 싶지가 않으면서도 아기를 위한 영어전집과 교구는 부지런히 알아본다. 회사에서는 적당히 폐만 끼치지 않으려 하면서도 육아는 최고 수준으로 하고 싶어서 온갖 육아서적을 찾아본다.


내 본능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살라고 하고 있는데, 이렇게 사는 게 나와 아기에게 모두 좋은 길인지는 확신이 없다. 엄마와 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그 어느 것도 잘 해내지 못하고 오늘도 하루가 또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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