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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결혼은 잘 한 줄로만 알았는데

식 올린 지 만 4년 반, 연애한 지 만 6년 반

by 여울맘

26살, 갓 입사한 꼬꼬마 시절에 만난 한 회사 선배는 아는 것도 많고 생활력도 강해 보였다. 무엇보다 그의 유머감각은 안 그래도 귀여운 스타일의 외모를 한층 더 빛내주는 듯했다. 그렇게 회사 선배와 사랑에 빠져 1년간 짜릿한 비밀연애를 즐겼고, 1년간 요란한 결혼 준비를 마치고 21년 초 모두의 축복 속에 식을 올렸다.


우리 둘 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유난히 좋아했기에 각자의 생활을 존중해 주면서, 그러면서도 주말엔 공동의 취미를 함께하며 적당히 균형 잡힌 신혼생활을 만끽했다. 좋은 사람만 있다면 결혼은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결혼 1년 만에 계획한 건 아니지만 아기천사가 찾아왔고, 나는 출산과 육아의 삶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고 온몸의 호르몬이 뒤바뀐 것인지 자연스레 나의 우선순위는 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본격적으로 쌓여간다.


임신과 출산을 전적으로 혼자 감당해 내고 이후에도 나는 일 년 반의 육아휴직을 내며 육아에 진심을 다했다. 복직을 한 이후에도 친정엄마의 시간과 체력에 빚을 내가며 육아를 이어갔다. 기나긴 공백 끝에 뒤늦게 회사에 다시 적응해 보려 발버둥 치는 사이에도 남편은 조금의 멈춤도 없이 안정적인 커리어를 이어왔다. 우리는 사내부부였기에 남편의 성공이 누구보다도 기쁘면서도 또 못내 한편으로는 괜스레 섭섭했다. 아기가 생긴 이후에도 남편의 삶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 아니 예쁜 아기가 생겼으니 좋은 쪽으로만 변한 건가.


유학이라는 전환점을 앞두고 다시 휴직을 하고 영국으로의 이주를 준비하는 최근의 몇 달은 더욱 서운하다. 휴직으로 여유가 생긴 내가 육아를 전담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는 걸까. 내가 좋아서 하는 육아임에도 불구하고 아기와 단둘이 마주 앉아 밥숟갈을 뜨는 저녁이 매일같이 이어질 때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우리 부부를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해 줄 만한 그 어떤 상호작용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각자의 위치에서 부지런히 최선을 다 하는 엄마와 아빠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서로에게 관심 없이 살 거면 굳이 왜 우리가 같이 살고 있나 싶다가도 엄마와 아빠를 찾아대는 아기를 볼 때면 엄마아빠로서의 의리로 사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우리 사이에는 중년남녀들이 흔하디 흔하게 이야기하는 ‘전우애’만 남은 것만 같다. 딱히 같이 살 이유도, 그렇다고 굳이 혼인관계를 종료시킬 만한 이유도 없는 애매한 관계. 그게 지금 우리 관계의 현주소 같다.


사랑하는 부부사이라면 적어도 서로를 걱정하고 아껴주는 마음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결혼 4년 만에 그 마음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 관계는 꽤나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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