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개월: 다시 시작된 엄마 껌딱지
다시 한번 과감히 두 번째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전업주부로 돌아온 지 어느덧 3달. 며칠 전부터는 출국을 앞두고 양가 부모님 댁에서 충분한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어린이집도 퇴소하고 하루 종일 할머니댁에서 가정보육을 이어오고 있다. 늘어져라 늦잠을 잔 이후에도 침대에서 한참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뒹굴댈 수 있고 오늘은 우리 어떤 데이트를 할까 종알대는 꿈만 같은 삶이다.
아기도 이런 삶이 만족스러운 건지 요새는 한층 더 사랑과 애교가 넘친다. 별안간 내 다리를 꼭 안아주기도 하고, 내 기분이 좋아 보이면 "여울이 덕분에 엄마 기분이 좋아졌어?"라고 종알댄다. 얼마 전에는 엄마가 아빠와 단둘이 외출하고 돌아오자 아빠가 엄마를 뺏어갔다고 생각한 건지 아빠에게 원망과 미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서로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모녀 사이에서 아빠만 괜히 입지를 잃어가는 모양새다.
요새 유난히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 덕분에 오랜만에 찾은 할머니댁에서도 나의 육아는 24시간을 꽉 채워서 계속된다. 아기는 할머니랑 놀다가도 금세 엄마를 찾고, 잠이 들 때는 그 누구도 엄마를 대신하지 못한다. 나로서는 특별히 해주는 것이 없는 것 같은데 그 어느 때보다 벅차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요즘이다.
오랜만에 친정살이를 하며 부모가 아기 세상의 전부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내 모든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의 기준은 우리 부모님이셨다. 그러던 내가 어느새 머리가 자랐다고 친정을 찾을 때마다 엄마의 살림습관과 위생관념에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지금 바라보는 엄마의 성격과 습관, 사고방식은 못마땅한 것 투성이이지만 30년 가까이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엄마의 삶을 받아들여 자라왔다. 지금 엄마로서의 내 모습도 사실 부끄럽고 아쉬운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는 내 모습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 그저 내가 자신의 엄마라는 사실을 자랑 스러이 여겨준다. 이런 사랑이 도대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아가의 사랑에 감격하는 한 편, 나와 나의 엄마와의 관계가 계속 눈에 밟힌다. 사실 아가의 사랑의 전제는 언제나 나의 사랑일 것이다. 아기에게는 무엇이든 지지해 줄 테니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보라고 등 떠밀면서 막상 우리 엄마에게는 뭐든지 하지 마라 잔소리다. 그럼에도 엄마는 항상 뒤돌아보면 그곳에서 내 지지선을 굳건히 만들어주고 있고, 그 덕분에 나는 언제나 최후의 보루로 엄마를 찾아간다. 엄마의 내리사랑을 가득 받은 덕분에 지금 본능적으로 여울이에게도 사랑을 가득 내려줄 수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지금 엄마와 다소 삐그덕 대는 나의 관계도 언젠가 이렇게 사랑으로 가득 찬 사이였겠지?
오늘도 여울이는 지금 내가 주는 사랑 그 이상으로 되돌려준다. 과거에 엄마에게서 받은 사랑과 오늘 여울이에게서 받은 사랑이 시간을 넘어 씨실과 날실처럼 매일 내 마음을 기워준다. 나를 사랑해 줘서, 그리고 내가 사랑을 줄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들을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