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데이, 영국으로 떠나다!

그곳에서 지금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by 여울맘

서른셋에 뒤늦게 떠나는 유학이 조금 많이 떨린다. 회사에서는 이 정도 연차가 차면 흔히들 나가는 유학이라 나도 큰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준비해서일까. 막상 유학을 나서는 마음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십 년 전 교환학생을 갈 때와는 확실히 다른 마음가짐이다. 스물셋과 달리, 서른셋이 된 나에게는 지켜야 되는 것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영국에 가서 지금 가진 것을 잃게 될까 불안하다. 동시에 많이 가질수록 갖고 싶은 것들도 함께 늘었다. 벌써부터 영국에 도착해서 대충이 아니라 "잘 해내고 싶은" 것들이 많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따라잡아야 할 것들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출국장을 나설 때부터 머릿속을 가득 채운 욕심에 꽤나 숨이 막혀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핵심 목표를 추리지 않으면 내 욕심에 스스로가 다칠 것만 같았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옆자리에 우연히 신생아와 젊은 외국인 부부가 탑승했다. 귀여운 아기는 안타깝게도 14시간에 달하는 비행시간 내내 보채고 울어댔고, 아기가 우는 소리는 역시나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3살 배기 아기의 엄마가 된 나는 놀랍게도 그 상황이 불쾌하기보다는 안타까웠다. 그 순간 가장 진땀을 빼고 있을 아기와 젊은 부부가 염려될 뿐이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해심이 많아진다는 것일까? 한 꺼풀씩 경험이 쌓여갈수록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다. 그래서 감정이 요동칠 일이 줄어들고 좋게 말하면 평온한 나날이, 나쁘게 말하면 지루한 시간들이 이어진다. 그 때문에 서른세 살의 나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시끄럽게 울어대는 아기를 보고도 짜증이 나지가 않았다.


단정한 집과 차가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안정적인 육아와 밥벌이가 가능한 한국을 떠나서 굳이 값비싼 영국유학을 가는 이유도 어쩌면 이 계속되는 평온함이 지루하고 답답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평온함이 익숙해진 나는 더 이상 그 평화에서 행복을 찾기 어려웠고, 변화가 필요했다. 처음부터 다시 곰곰이 따져보면 결국 뻔한 직장생활의 앞날이 불행해 보였고, 잠시 숨 고르며 나 자신이 행복한 길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번 유학의 가장 큰 목표는 경제학 석사를 잘 해내는 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유학은 휴식보다는 새로운 커리어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짧은 직장생활동안 이미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 느꼈다. 이번에 어쩌면 전문성을 가질 수 있는 분야를 만들어서 새로운 커리어를 모색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려면 일단 석사생활동안 최소한의 존재감을 내비치며 수업도, 시험도, 과제도 꽤나 우수하게 해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목표는 우리 가족에게 평생의 추억을 많이 만드는 것. 한국에서는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회사와 반쯤 이어진 상태가 계속되어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나의 직장은 온전히 나와 가족들에 집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한국에서 보장받지 못했던 저녁과 주말을 여기서는 온전히 가족이 서로 눈 맞추며 보낼 테다. 아기가 영국에서 보낼 만 3살에서 만 5살의 시간은 또렷한 기억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세 가족이 함께 웃고 요리하고 산책하고 그림 그리고 뛰어노는 시간이 아기의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여 정서가 탄탄하고 밝은 아이로 자라주길 바란다. 여기서만은 핸드폰은 멀리하고 산책을 자주 해야지.

마지막 목표는 런던 뽕 뽑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도시 중 하나인 런던에서 값비싼 하루하루를 보내는 만큼 반드시 뽕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수한 문화인프라를 부지런히 즐기고, 런던에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과 최대한 마음을 열고 이야기 나눠야지. 값비싼 물가를 견딜 만큼 고소득자가 많은 도시인데도 동시에 도처에 널린 공원에서 꽤나 자주 여유를 부리는 이 동네 사람들. 이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찾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아무쪼록 입국하는 그 순간부터는 지난 직장생활을 후회하며 더 이상 날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난 그저 그때의 업무와 동료들과 지독하게 안 맞았던 것뿐이고, 오히려 그 덕분에 조금 더 신속히 유학과 이직을 고민하게 되었다. 운명처럼 다가온 영국생활을 알차게 보내는 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매일아침 6시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오후 6시까지는 학업에 충실하기

오후 6시 이후 가족과 집중하는 시간 갖기

아기가 잠든 후 자정부터 한 시간씩 재테크공부

주말은 박물관과 도서관, 매주 하루는 공원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기

방학땐 기차를 타고 짧은 영국/유럽여행 다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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