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면 기분이 정말 엉망이 될 때가 많다. 나보다 한참 어린 후배들이 나를 제치고 승진할 때, 동료가 내가 한 일을 가로채서 상을 받을 때, 믿었던 동료에게 뒤통수를 맞으면 기분이 엉망진창이 된다.
직장 생활에서 사내 정치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내가 정치를 잘 못해서 이런 일을 겪는 것인지 목소리가 크지 않아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울화가 치밀곤 했다.
연초에 승진자 명단을 받을 때는 지옥을 오락가락하곤 했다. 언젠가부터 항상 나보다 경력도 적고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먼저 승진을 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프리세일즈는 엔지니어이니 세일즈처럼 직급이 중요하지 않다, 경력은 적지만 임원급을 상대해야 하는 세일즈라서 승진이 필요하 다는 등 갖은 이유를 둘러대면서 다른 사람들만 승진을 시켜주었다.
매니저가 노골적으로 당신은 맞벌이이고 저 사람은 외벌이이니 당신의 실적이 더 좋지만 동료의 월급을 올려줘야 한다고 통보할 때도 정말 화가 났다. 내가 맞벌이라 일을 덜한 것도 아닌데 왜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지 열불이 났다. 그런데 소심한 나는 이런 나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매니저 방에서 나오곤 했다.
내게 주어진 출장 기회를 눈앞에서 가로챈 동료도 있었다. 임원 회의에서 나를 보내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구두로 통보를 받았는데 새로 온 매니저가 시스템에 능숙지 못해 입력을 도와달라고 했더니 동료는 자신의 이름을 입력했다. 나중에 사실 관계를 알게 된 매니저조차 놀라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사과를 했지만 이미 본사 시스템에 입력된 그의 이름을 수정할 수 없었고 결과를 번복할 방법은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출장을 다녀와서도 이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이고 나와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모든 사람들과 얼굴을 보면서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가 있는지 그들의 정신세계가 궁금하다. 겨우 그깟 출장 하나 때문에 저런 만행을 저지르다니. 사럼들은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빌런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외국계 회사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회사 한국 지사에는 인사부가 없었다. 호주에 있는 인사 담당자가 아시아 전체를 담당했기에 인사부에 호소할 일이 있으면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했다.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인사 담당자가 다른 나라에 있다는 것은 큰 구멍이었다. 이런 시스템 공백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이렇게 억울하고 속이 터질 것 같을 때 나에게는 마음을 터놓고 하소연할 동료가 없었다. 매니저는 다음 기회에 챙겨 주겠다며 참으라고 했고 남자 동료들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라고 했다. 열 살 넘게 차이가 나는 팀원들에게 호소를 할 수도 없었다. 직장 내에서는 내 마음을 토닥여 줄 동료가 아무도 없었다.
항상 혼자 마음을 다스려야 했기에 화가 날 때면 회사를 나와서 무작정 걸었다. 무작정 걷다 보면 온 몸에 힘이 빠져서 화가 좀 누그러졌다. 좀 지쳐서 힘이 빠진 것 같으면 편의점에 들어가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샀다. 다른 아이스크림은 안 된다. 반드시 하겐다즈 벨지안 초콜릿이어야 한다. 가격이 너무너무 사악하지만 이때만큼은 나를 위해 사치를 부렸다. 몸에 힘이 빠진 상태에서 벨지안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 칩이 향연을 펼치면서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거라며 내게 속삭여주었다. 차가운 아이스크림은 열불이 난 내 마음도 가라앉혀 주었다.
회사를 다니는 내내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끊지 못했다. 건강을 생각하면 아이스크림은 먹지 말아야 하는데 화가 나고 속상할 때 이만큼 나를 달래주는 음식이 없었다.
남편은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질색한다. 건강 박사인 남편은 아이스크림이 건강에 안 좋은 이유를 열 가지도 넘게 나열하면서 내게 일장 연설을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끊을 수 있을까? 일단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어본다. ^^
어쨌든 오늘도기분을 거지 같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어서 남편 몰래 벨지안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하나 뜯었다.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니 열도 좀 식었고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아이스크림은 다이어트의 적이라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다이어트는 도저히 못 할 것 같다.
최근에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에 견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찾았다. 서울유유 초콜릿 우유 아이스크림인데 정말 찐한 초콜릿 맛이다. 하겐다즈 벨지안 초콜릿 아이스크림처럼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 칩은 들어있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진한 초콜릿 맛이다. 그리고 하겐다즈보다 무려 1000원이나 싸다. (사실 하겐다즈 벨지안 초콜릿 아이스크림의 가격은 4800원이다. 100ML짜리 미니 아이스크림에 4800원이라니 정말 사악한 가격이다. 게다가 하겐다즈 벨지안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파인트 사이즈는 나오지도 않는다. 벨지안 초콜릿 & 헤이즐넛은 파인트 사이즈가 있는데 절대 벨지안 초콜릿의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비싼 미니 사이즈를 사 먹곤 하는데 서울우유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미니 사이즈가 3800원이다. 그리고 파인트 사이즈도 나온다. 파인트 3개를 사면 할인해주는 경우도 많아서 가격 대비 훨씬 낫다.^^)
다이어트는 회사를 그만둔 다음으로 미루고 힘든 월요일을 초콜릿 아이스크림으로 버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