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에 가깝게 지내던 직장 후배에게 퇴사 소식을 알렸다. 이 후배는 나와 17년 동안 같은 회사에서 근무한 직장 동료로 나는 그녀의 이십 대 후반부터 사십 대중반까지 모든 세월을 지켜보았다. 내 눈에는 어린아이 같기만 했던 그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회사 생활을 하는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워킹맘으로 고전 분투하는 그녀의 고충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직장 선배이기도 하고 워킹맘 선배이기도 한 나에게 조언을 구하곤 했고 나는 진심 어린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주장이 강한 그녀는 내 조언을 듣고 나서도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 나가곤 했다. 수년간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그녀가 조언을 구할 때마다 왠지 망설이게 되었다. 심사숙고해서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어도 언제나 자신의 생각대로 하니 맥이 풀렸다. 그녀는 언제나 실패를 맛본 후에야 언니의 말이 옳았다고, 언니 말을 들을 걸 그랬다고 하며 내게 와서 눈물을 흘리곤 했다.
나는 그녀의 고집이 안타까웠다. 조금만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남의 의견도 들으면 좋을 텐데 그녀는 항상 자신의 의견만고집했다. 그녀가 좌절하며 울면 나는 또다시 같은 충고를 건넸다. 조직 생활은 너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다른 사람과 함께 가야 하는 길이니 그렇게 혼자서 모든 것을 주도하려고 하지 말라고.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내 말을 듣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녀와 나는 서로 다른 점이 많았다. 친구로 만났더라면 친해지기 어려웠을 정도로 우리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그러나 그녀와 나는 남자들로가득한 세일즈 조직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동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친하지도 않았지만 친하지 않은 것도 아닌, 설명하기 어려운 끈끈한 사이로 17년의 세월을 함께 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의 퇴사 소식을 알렸다. 놀랄 줄은 알았지만 충격까지 받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40km가 넘는 거리를 운전해서 당장 우리 집 앞으로 오겠다는 그녀를 진정시키고 다음 날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아직 아이가 어려 주말에는 시간을 내기 어려운 그녀가 주말에 당장 만나자고 하니 나의 퇴사가 그렇게 큰일인가 싶었다.
만나자마자 그녀는 나의 퇴사를 만류했다. 내 존재가 여직원들에게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했다. 나이가 많은 여직원이 거의 없는 우리 회사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롤모델이 되었기에 자신도 고비마다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때 언니도 이런 과정을 다 겪으며 회사 생활을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버텼다고 했다. 속마음을 잘 터놓지 않는 그녀라서 나는 그녀가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는 줄 몰랐다. 삼십 대 초반의 다른 여직원들에게도 나의 퇴사는 충격이 될 거라 했다.
이번에는 내가 충격을 받았다. 그저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나의 퇴사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결정하게 되어 남아있는 후배들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왜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그녀가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런 것들을 참고 견디어 냈냐며 잘했다고 했다. 17년 동안 함께 했지만 그녀가 나 때문에 우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울먹이는 그녀를 보면서 내가 그녀를 많이 오해했다는 것을 알았다. 겉으로는 강한 척하고 센 척을 하면서 여린 마음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직장생활에서 다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나에게까지 방어막을 쳐 놓았던 것이었다.
떠나기 전에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퇴사하면서 얻는 것도 있어 다행이다.
항상 어정쩡한 거리를 유지하던 그녀와 한 뼘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예전에 동네 주점에서 보았던 캘리그래피가 생각나서 사진을 찾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