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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Oct 01. 2022

엄마와 아들 2

스물다섯이 된 우리 아들은 졸업하기 전에 한 한기 휴학을 하고 인턴을 하겠다며 열심히 알아보는 중이다. 전자공학과라서 전공을 살려 취업하면 취업엔 걱정이 없는 것 같은데 굳이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겠다고 하니 필요한 공부도 더 해야 하고 인턴을 해서 경험을 쌓아야 정규직 채용이 되나 보다. 

부모 마음에는 쉬운 길로 갔으면 좋겠는데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확고하게 있으니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다니던 회사에서 인턴을 뽑는데 거기에 지원해도 되느냐고 다.

회사를 그만 둔지 몇 달밖에 안 되었는데 우리 회사(그만뒀지만 20년이나 다닌지라 아직 우리 회사라는 호칭이 편하다.)에서 인턴을 뽑는다니 의아했다. 우리 회사는 인턴을 뽑을 리가 없다고 했더니 한 명도 아니고 분야별로 여러 명을 뽑는다며 링크를 보내주었다. 아들이 보내 준 자료를 자세히 보니 정말 모든 분야 별로 인턴을 뽑고 있었다. 신입 사원도 안 뽑는 회사에서 인턴이라니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보내 준 링크를 상세하게 살펴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뿔싸! 회사 이름이 스펠링 하나가 달랐던 것이다. 로고이며 제품군이며 이십 년을 다닌 나조차 같은 회사라고 착각할 정도로 유사했지만 회사 이름을 자세히 보니 완전히 다른 회사였던 것이다. 게다가 내가 다녔던 회사는 미국 회사였는데 이 회사는 중국 회사였다. 중국이 카피를 잘한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회사 이름까지 스펠링 하나만 다르게 만들고 똑같은 제품군을 만들어서 팔다니. 아마 경쟁사라고 여겨지지도 않는 작은 회사였기에 회사를 다닐 때는 모르고 지났던 것 같다.

아들에게 엄마 회사는 Efghi이고 이 회사는 Efqhi로 완전히 다른 회사라고 더니 화들짝 놀란 눈치다. 엄마가 다니던 회사에 인턴으로 취업하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스펠링 하나만 바꿔서 짝퉁 회사를 만든 중국이라는 나라도 놀랍지만 엄마가 20년이나 다닌 회사로 착각하고 엉뚱한 회사에 이력서를 내려고 준비하고 있던 아들도 신기하다.


어릴 때부터 내 눈에는 아들은 뭐든 대충대충 하고 덤벙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꼼꼼하고 차분한 편이라는데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덜렁거리고 덤벙거리는 것처럼 보여서 혼도 많이 다. 사춘기가 오면서 엄마와 아들이 너무 많이 부딪치자 남편이 아들과의 대화를 담당하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남편과 아들은 다투지 않았다. 아들이 못 보는 것은 남편도 못 보고 지나쳤고 그래서 남편은 아들이 덜렁거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제야 여자인 엄마의 관점과 남자인 아빠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부터는 아들에게 잔소리할 것이 있으면 남편에게 먼저 물어보았다. 남편 생각에도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될 때만 혼을 내니 예민한 사춘기와 꼼꼼한 엄마가 부딪쳐서 큰소리가 날 일이 없었고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아들이 커 가면서 엄마인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점점  많아졌던 것이다.


지원하려는 회사 이름도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았냐고 한마디 했더니 아들은 삐쭉거리며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제대로 삐진 것 같은데 그래도 이번에는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오랜만에 쓴소리를 했다.

 

어찌 되었던 오랜만에 아들 덕분에 한번 웃었다. Efghi 사에 인턴으로 지원하겠다며 엄마 덕(?)보려고 했다가 실망한 아들은 민망한지 한참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십 년 다닌 나도 속을 뻔했는데 아들이 속은 것은 당연한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해진다. 아들이 좋아하는 간식 하나 만들어서 같이 먹으며 화해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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