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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Sep 12. 2022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노 사장

25년 회사 생활을 하면서 9명의 사장님을 겪어보았다. 직원 수가 만 명이 넘는 큰 회사에 근무할 때는 신년회 같은 행사가 있을  겨우 사장님 얼굴이나 는 정도였지만 외국계 회사로 옮긴 후에는 밀접한 거리에서 그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지사장님들 중에는 인품도 좋으시고 배울 점이 많은 들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오늘은 그중에서 가장 이상했던 사람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장은 외국계 기업을 다니다가 우리 회사 지사장으로 부임했다. 그가 다녔던 회사는 미국 회사이지만 직원수가 천명이 넘고 한국에 진출한 지 수십 년 된 회사라 거의 한국 기업이라  수 있었. 90년대 초반에 I사에 입사한 그는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갔고 I사의 이사가 되었다. 그는 100명이 넘는 팀을 이끄는 수장이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이사 타이틀을 떼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었던 그는 여러 회사에 지원하였고 직원 수가 다섯 명도 안 되는 우리 회사 지사장으로 게 되었다.


입사 첫날, 그는 자신의 이력을 거창하게 나열하며 자신이 대단한 사람임을 각인시켰다. 3명밖에 안 되는 직원들은 두 시간 동안 이어지는 지사장의 연설을 들으며 앞으로의 험난한 시간을 예감했다.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자 노 사장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영어로 회의를 해야 했고 미국인 상사가 불쑥불쑥 전화를 해대는데 도무지 영어가 들리지 않았다. 영어라고는 간단한 이메일을 써본 것이 전부였던 노 사장에게는 모든 것이 버거웠던 것이다. 대부분의 회의가 본사 VP(Vice President)와의 일대일 회의이니 다른 직원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대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업무에 차질이 생기자 궁여지책으로 마케팅 차장을 모든 회의에 참석시키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 교포인 마케팅 차장은 영어를 완벽하게 이해했지만 통역을 매끄럽게 하지 못다. 모든 단어는 영어로 그대로 쓰면서 관사만 한글로 바꾸어 전달하는 식의 통역으로는 노 사장을 이해시킬 수가 없었다. 결국 노 지사장은 그의 통역사 역할을 할 직원을 뽑기로 했다. 본사에 통역사를 뽑는다고 말할 수 없으니 사무실 관리를 위한 직원이 필요하다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직 직원을 한 명 채용했다. 노 사장의 통역사로 입사한 K는 어릴 때부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아서 한국어와 영어에 모두 능통했다. K가 모든 회의에 들어와서 통역을 하기 시작하니 모든 것이 다 순조로워졌다. 업무량이 많아지면서 신속하게 답변을 해야 하는 이메일이 늘어나자 노 사장은 K에게 자신의 이메일 계정과 비밀번호까지 공유했고 K는 지사장을 대신하여 이메일을 쓰고 회의에 참석해서 발언까지 하였다. 모든 것이 잘 굴러가는 듯 보였지만 복병은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취업한 K는 근태가 좋지 않았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당일 아침에 전화로 휴가를 냈고 지각은 밥먹듯이 했다. 때론 말도 안 되는 이유(강아지가 아프다, 지방에 가서 친구를 만나야 한다 등등)로 며칠씩 결근하기도 했다. K의 근태는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가 꼭 필요했던 노 사장은 모든 편의를 봐주면서 고용을 유지하였다.


그렇게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어느 날 저녁, 노 지사장프리세일즈 팀의  과장을 조용히 방으로 불렀다. 장황하게 직장 생활 선배로서의 조언을 하던 사장은 딸의 학교 미술 과제를 내밀며 내일까지 해오라고 했다. 예상치 못한 지시에 당황했지만 조 과장은 밤새워 과제를 다. 가뜩이나 일도 못하고 영어도 못해서 눈총을 받고 있는데 지사장에게 잘 보이면 어떻게라도 살아남을 것 기 때문이었다.

국제 학교에 다니는 지사장의 딸은 아이비리그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미술 과제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전 과목 학점이 중요했기에  과장에게 자신의 딸의 미술 과제를 전담하라고 지시하였다.


마케팅 차장과 나는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신입사원이었던 과장은 아무 생각 없이 순응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회사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 투성이었다.


다행히 몇 개월이 안 되어 본사에서도 심각한 상황을 알아차렸다. 지사장상사인 VP(Vice President)가 전 직원에게 비밀스럽게 연락을 해 왔고 직원들과 일대일 면담을 요청하였다. 일대일 면담에서 VP는 지사장의 만행에 대해 확인하였고 마케팅 차장과 나는 사실대로 대답을 했다. 본사에서 이미 상황을 알고 있는데 굳이 거짓말까지 해서 그를 덮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영어가 서툴렀던 조 과장은 이해를 못 해서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그것이 그의 처세술이라 생각했다.


VP가 다녀간 지 일주일 만에 지사장은 해고 통보를 받았다.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해고 통지를 받은 그는 펄펄 뛰었다. 자신을 고발한 직원을 찾아내서 보복을 하겠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발악을 하여도 해고 통지를 되돌릴 수는 없었고 그는 다시 I사로 돌아갔다. 그의 모회사에서는 아직 그의 후임을 뽑지 못했고 이십 년 넘게 근속하였던 그를 다시 받아주었던 것이다.


이후 우리 회사에는 능력이 출중한 사장님이 부임하셨다. 능력이 뛰어난 사장님이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회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6개월이 넘게 걸렸다. 새로 부임한 지사장님은 수개월간 노 사장이 벌리고 간 사고들을 수습하느라 동분서주하였다. 모든 것을 정리한 후 프리세일즈 엔지니어 역할을 제대로 못하던 과장과 통역사 K를 해고하였다. 자녀의 미술 숙제와 통역을 담당할 직원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회사가 정상 궤도를 찾기 시작했을 즈음, 노 지사장, 이제 노 이사가 된 그로부터 전화가 다. 구멍가게 같은 회사에서 고생하지 말고 I사로 오라는 제안에 나는 잠깐 흔들렸다.

밤낮이 따로 없는 사의 업무는 4살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에게 너무 버거웠던 것이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그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였다. 노 이사와 일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노 이사는 가끔씩 내게 I사 입사를 제안하곤 했다.




겨우 6개월 같이 일했지만 내가 보았던 노 사장은 아무것도 혼자 하지 못했다. 외국게 회사에 이십 년 넘게 근무했지만 영어로 이메일 하나 제대로 쓰지 못했고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I사에서는 이십 년 넘게 승승장구하였고 다시 I사로 가서 지냈다. 큰 외국계 회사를 다녀보지 않아서 노 사장의 능력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조직이 크고 직원수가 많으면 관리 능력만 있으면 되는 인지, 아니면 큰 조직에서 필요한 능력이 따로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십오 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개인 통역사를 고용하고 직원에게 자녀의 숙제를 시키던 그와 같은 사람은 다시는 보지 못했다.


만약 노 사장을 다시 만난다면 이렇게 충고를 해주고 싶다.


"사장님. 제발 일 좀 하세요. 사장님만 일을 제대로 하시면 회사는 잘 돌아갑니. 쓸데없는 은 그만하시고 제발 일을 좀 하십시오. 그리고 자식 교육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남이 숙제를 대신해 주면 성인이 된 그 아이가 대체 뭘 혼자 할 수 있을까요? "



노 지사장 유형의 또라이 대처법

사장 같은 유형의 또라이에게는 절대 우습게 보이면 안 된다. 나는 노 사장이 조 과장에게는 자녀의 과제 등 말도 안 되는 허드레 일까지 시키는 것을 지켜보았다. 반면 나에게는 절대 그런 일을 시키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나는 부당한 지시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노 사장이 부임했을 때 나는 경력 7년 차 직원이었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업무를 잘 수행하고 흠을 잡을 수 없는 직원에게는 부당한 지시를 하지 못했다.  내가 특별히 지사장의 비위를 맞추거나 아부를 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I사로 돌아간 후에도 내게 입사를 권유했던 것을 보면 그는 나를 꽤 좋게 평가했던 것 같다.

 

기억하라. 당신을 우습게 보면서 온갖 허드레 일을 시키는 상사는 당신이 허드레 일을 고 당신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일단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것. 그리고 절대 그에게 우습게 보이지 말 것. 이 두 가지가 노 사장 같은 유형의 또라이를 만났을 때의 대처 방법이다.




이 글은 실화에 기초해서 작성된 에피소드이지만 온전히 제 기억을 바탕으로 재건되었기에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이라 생각되 혹시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제게 알려주십시오. 사실 여부확인한 후 내용을 수정하겠습니다.

이 글에서 사용된 '노'씨 성은 실제 이름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못한다는 의미의 'NO'를 의미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성이 아니라 가상의 성씨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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