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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Aug 20. 2022

적반하장 오 차장

 차장은 대학을 졸업한 후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입사할 때 품었던 부푼 기대와 달리 근무 환경은 열악했고 회사 상황이 어려워져서 쥐꼬리만 한 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곳에서는 답이 없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 큰맘 먹고 6개월짜리 자바 개발자 교육을 수강했다. 개발자로 이직을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육을 수료한 후 이곳저곳에 지원을 했지만 개발 경험이 없는 그를 받아 준 곳은 작은 중소 개발업체였다. 생각보다 급여도 높지 않았고 365일 끊임없는 야근이 계속되었지만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실력을 키운 후 큰 회사로 이직해서 성공하겠다는 꿈을 꾸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두 번째 직장에서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배웠다. 교육에서 배운 지식은 실무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워낙 작은 회사라 제대로 된 사수도 없었기에 이나 자바 동호회를 통해 필요한 것들을 닥치는 대로 습득해야 했다. 개발자로 이직하는 것이 유행하던 시대라 동호회에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고민을 나누고 새로운 기술을 배워나가는 이 좋았기에 동호회 활동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다 보니 덜컥 동호회 회장직까지 맡게 되었다. 회사 일과 동호회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기에 시간을 쪼개가면서 두 가지 일을 끌어 나갔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오 차장은 회사보다 동호회에 더 몰두하게 되었다. 익숙해지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회사에서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동호회가 훨씬 더 재밌었다. 

여전히 동호회 회장으로 열심히 활동하던 , 잘 나가는 외국계 회사인 A에서 협업을 하고 싶다고 제안다. 협의를 위해 A사방문했는데 그곳은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멋진 사무실에서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담당자가 그를 반갑게 맞이하였고 모든 것이 다 아름다웠다. 마케팅 담당자는 자사의 신제품을 자바 개발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미 다른 회사들과 비슷한 해 본 오 차장에게 이런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영어로 되어 있는 문서를 개발자들이 알기 쉽게 번역해서 개발자들이 자주 방문하는 사이트에 올리고 개발자를 위한 무료 세미나를 개최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마케팅 담당자는 너무 좋은 제안이라며 당장 시작하자고 했고 그는 열심히 기술 문서를 번역했다.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새로운 문서가 나오면 한글로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렸고 제품 기능에 대한 기술 리뷰도 부지런히 커뮤니티에 업데이트했다. 오 차장의 노력으로 A사 제품에 관심을 가지는 개발자가 늘어나자 A사와 정기적인 협업을 하게 되었고 영업 팀, 엔지니어 팀과도 친분을 쌓게 되었다. 반드시 이 회사에 입사하고 말겠다는 집념 하에 오 차장은 일 년이 넘도록 돈도 되지 않는 A사와의 협업에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었고 드디어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A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사가 늘어나면서 컨설턴트를 충원할 예정이니 이력서를 내보라는 연락받은 것이다. 본사에서는 영어 실력이 부족하고 개발자 경력도 너무 짧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마케팅 팀과 영업 팀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오 차장은 꿈꾸던 A사에 입성하였다.


새로운 회사에 출근하는 첫날, 오 차장은 자신이 그렇게 꿈꾸던 출세를 실감했다.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 화려하고 멋진 사무실, 이전 회사에 비해 두 배 이상 뛴 연봉까지, 그가 원하던 모든 것을 이루었던 것이다. 성취감에 도취된 그는 이제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공부한 것들로 우려먹어도 영업이나 마케팅 직원들은 몰랐기 때문이다. 지사에는 엔지니어라곤 그와 프리세일즈 엔지니어 두 명뿐이었기고 각자 업무로 바빴기에 오 차장의 만행은 들키지 않고 일 년 넘게 동안 지속되었다.


그렇게 안락하고 편안한 직장 생활을 즐기던  차장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고객사와 대규모 프로젝트 계약이 체결되었고 오 차장이 컨설턴트로 프로젝트에 투입되게 된 것이다. 프로젝트 컨설팅은 마케팅, 영업 지원 업무와는 차원이 달랐다. 수십 명의 개발자가 투입되어 차세대 시스템 개발을 하고 있었고 오 차장이 담당한 무는 아키텍처 전반에 대한 컨설팅이었다.

 년 넘게 기술에서 손을 놓고 안이하게 지냈더니 개발자들은 그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났고 심지어 자사 제품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가 나태하게 보냈던 몇 년 사이에 자바 기술은 눈부시게 진보했고 그는 도태되었던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공부를 시작했지만 아무리 공부를 해도 뒤쳐진 실력을 하루아침에 메꿀 수는 없었다. 매주 아키텍처 리뷰 회의가 열렸지만 오 차장은 개발자들의 코드와 논의되고 있는 기술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와서 컨설팅을 못하겠다고 발뺌을 할 수도 없으니 코드를 보지도 않고 아키텍처에 문제가 없다고 둘러대기 시작했다. 개발자들은 본사에서 파견된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6개월 동안 수만 라인의 코드를 생성해 냈다.


어느덧 프로젝트 개발이 완료되었고 시스템 오픈을 앞두고 성능 테스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성능 테스트를 시작하자마자 다섯 대의 서버가 모두 다운되었다. 2주 후에 시스템을 구동해야 하는데 서버가 다운되자 고객사에서는 난리가 났다. 고객사 팀장에게 불려 가서 추궁을 당했고 당장 문제를 찾아서 수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도무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는데 며칠 내에 문제를 해결하라니 앞이 깜깜했다. 그동안 아키텍처 리뷰를 못했던 것을 이실직고할 용기가 없었던 그는 상사에게 전화를 해서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 좋은 김 전무는 장기간 프로젝트로 너무 고생한 것 같다며 병가를 승인해 주었다.


토요일 오전, 오 차장은 교통사고 후유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한방병원을 찾아서 입원을 했다. 병명은 디스크였다. 일반병원에서는 입원이 허용되지 않는 경미한 디스크였지만 이곳에서는 돈만 내면 입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위기로부터 도망쳤다.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저 이 끔찍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전화기를 끄고 어떻게든 이 위기만 피하고 나면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담당 컨설턴트가 출근도 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자 고객사는 김 전무에게 전화를 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게 된 김 전무는 프리세일즈 엔지니어였던 나를 호출했다. 나는 일요일 오전, 영문도 모르는 채로 고객사에 불려 갔다.


일요일에 갑자기 불려 간 고객사에서는 고성이 난무하였다. 고객사 팀장은 소리소리를 지르며 당장 해결하지 못하면 소송을 하겠다고 했지만 프로젝트 내용을 모르는 김 전무와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고객사와의 회의가 끝난 후 전무에게 오 차장의 행방을 물었더니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병가를 내고 입원한 사람을 데려올 수 없으니 우리 둘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담당 컨설턴트도 없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내린 것 같았다.


일요일 저녁, 지사장님까지 출근해서 몇 시간 동안 대책 회의를 했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일단 본사 기술팀에 문의를 보내 놓고 답변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시차 때문에 미국에 있는 본사에서 답변을 받으려면 월요일 저녁까지 하루를 더 기다려야 했다. 월요일 내내 고객사에 불려 가서 욕을 먹고 또 먹었다. 내가 참여하지도 않았고 내용도 모르는 프로젝트에 대해 욕을 먹으니 억울하기 그지없었지만 오 차장은 그동안 이런 곳에서 얼마나 고생했길래 병원에 입원까지 했을까 생각하며 꾹 참았다.


월요일 저녁 본사 엔지니어링 팀에서 코드가 잘못 설계되었다는 답변이 왔다. 이미 수만 라인의 코드를 작성된 상황인데 초기 설계부터 고쳐야 한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본사에서 온 답변을 들고 전무님과 함께 고객사 회의에 갔다. 고객사 담당자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보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데 전무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십여 분의  숨 막힐 것 같은 정적이 흘렀고 결국 나는 본사에서 받은 답변을 그대로 고객사에 전달했다.

그때부터 모든 질타가 내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설계 단계에 왜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냐는 질타부터, 시스템 오픈이 2주 남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책망까지 수없는 질책이 이어졌다. 대체 왜 내가 여기에서 이런 질책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도망칠 곳도 없었다. 억울한 마음에 전무님에게 호소를 했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고 누군가는 수습을 해야 한다며 전무님은 나를 다독였다. 그날 이후 전무님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나와 고객사를 피해 다녔다. 그로부터 2주 동안 나는 매일 고객사로 출근을 했다. 이곳저곳에 불려 가서 앵무새처럼 본사에서 받은 답변을 말해야 했고 매번 욕을 먹었다. 고객사 팀장, 부장, 이사, 상무, 전무에 이르기까지 살면서 그렇게 욕을 먹은 것은 처음이었다. 개발자가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고객사는 십 분 내에 달려올 수 있는 곳에서 상시 대기하라고 했다. 할 수 없이 2주 내내 고객사 사무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점심과 저녁 식사도 30분 내에 하라는 명령에 모든 끼니를 고객사 1층에 있는 식당에서 해결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쏟아 날 구멍이 있다더니 다행히 뛰어난 개발자들이 실력을 발휘해 주었다. 개발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 코드를 튜닝하니 시스템 부하가 줄어들었다. 시스템 부하를 줄이기 위해 서버를 두 배로 증설했고 우리 회사는 추가 제품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젝트를 구동할 수 있게 되었고 계획보다는 늦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시스템을 오픈할 수 있게 되었다. 


겨우 볼모 생활에서 풀려 나서 회사로 복귀한 후 이상한 뉴스를 보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했다는 오 차장이 콘퍼런스에서 발표를 했다는 기사였다. 발표를 하고 있는 오 차장 사진까지 떡하니 나온 기사를 출력해서 전무님에게 달려갔다. 사진을 보여주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너무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서 목소리도 떨리고 손도 떨렸다. 나보다 더 얼굴색이 파랗게 변한 전무님은 알아보겠다고 하며 나를 돌려보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전무님으로부터는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동료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오 차장이 한방병원에 디스크로 입원했다는 것을 귀띔해 주었다. 그는 아무나 입원할 수 있고 외부 출입도 자유로운 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분노로 치가 떨렸다. 이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전무님과 회사가 더 미웠다.


두 달이 지나 오 차장은 병가에서 복귀했지만 나는 회사에서도 오 차장에게서도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오 차장은 나를 슬슬 피해 다녔고 전무님은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있는 법이라며 얼렁뚱땅 넘기려 했다. 일 년 후 컨설팅 부서가 없어지게 되면서 오 차장과 전무님은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나는 이 억울함을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지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서 볼모로 잡혀 있었고 온갖 욕을 먹었으니 억울함과 분함이 꽤 오래갔던 것 같다.


오 차장에게 묻고 싶다. 그런 만행을 저질러 놓고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양심의 가책은 받았는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병가를 내고 입원한 사람이 어떻게 버젓이 콘퍼런스에서 발표를 할 수 있는지, 그런 일을 저질러 놓고 어떻게 사과 한마디 없는 건지.


슬프지만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가 전무님에게 어떤 변명을 늘어놓아서 그 위기를 넘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직장 생활을 25년 겪어보니 오 차장과 같은 빌런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이때의 뼈아픈 경험 덕분에 두 번째, 세 번째 빌런을 만났을 때는 나도 막무가내로 당하지는 않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오 차장 같은 빌런들은 어딘가에서 희생양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타깃이 된 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세상은 생각보다 공평하지 않고 회사는 착한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빌런들은 피해자들만 망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일을 잘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 직장 내 모든 선한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결국 한두 명의 빌런 때문에 능력 있고 착한 이들이 먼저 회사를 떠난다. 착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회사를 떠나고 빌런들만 남게 되면 회사가 어떻게 될까? 그들은 이제 희생양을 찾을 수 없는데 어떻게 자신의 실수를 덮어 나갈까? 어떻게 본인이 친 사고에서 도망칠까?


회사에 제대로 된 리더만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서 이 사건을 곱씹을 때마다 오 차장보다 전무님에 대한 원망이 더 커졌다. 잘못된 상황을 바로 잡고 규율을 세을 수 있는 리더가 있었더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 전무는 사람은 좋았지만 복잡하거나 귀찮은 일은 외면하려 했고 그의 게으름이 오 차장 같은 빌런을 만들어낸 것이다.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는 오 차장이 진정한 빌런이었는지 김 전무가 그보다 더한 빌런이었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몇 주 동안 볼모로 잡혀 있었던 고객사 건물을 지나갈 때마다 이때의 억울함을 곱씹게 된다.


오 차장 유형의 또라이 대처

아쉽게도 오 차장 같은 유형의 또라이에 대해서는 대처 방법이 없다.

무조건 도망 다녀라. 그에게 걸리지 않도록!




이 글은 익명을 사용하였으며 온전히 제 기억을 바탕으로 재건되었기에 사실과 다른 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차장님, 혹시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이제라도 당신의 해명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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