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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Jul 27. 2022

엘리트 팀장의 최후

김 팀장은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조기 졸업하고 박사과정까지 최단기간에 완료한 엘리트였다.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대기업 연구소에 최연소 팀장으로 채용되었을 때 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출근 첫날, 김 팀장은 팀원들을 만났다. 팀원 대다수가 그보다 나이가 많았고 새로운 기술에 대해 무지하고 도태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연구소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며 연구소장을 설득했다. 그의 화려한 언변에 설득된 연구소장은 연구소에서 SI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연구소장의 승인을 받자마자 그는 박사과정 프로젝트를 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군부대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고 군에서 야심 차게 기획하고 있던 SI 프로젝트를 수주하였다. 군부대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내로라하는 대형 SI 업체들이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치고 나가떨어졌는데 대기업 연구소에서 책임지고 프로젝트를 겠다고 하니 부리나케 계약을 체결하였다.


김 팀장이 들고 온 계약서를 보고 부서의 모든 직원들은 넋이 나갔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이야기이니 GPS나 위치 추적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인데 제안서에는 2년 내에 군부대 위치 추적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적혀있었다. 그러나 김 팀장의 자신 넘치는 태도를 보고 박사 과정 내내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그가 필요한 기술을 연구했을 것이고 그것을 이용하면 될 것이라고 믿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날, 팀원들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김 팀장은 위치 추적 기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학술지에 나오는 여러 기술들을 나열하면서 어떻게든 개발을 해보라며 논문을 몇  던져주고 나가버렸다. 급해진 팀원 중 하나가 콘퍼런스에서 GPS 기술에 대해 발표한 업체에게 연락을 하였다. 어렵게 업체와 미팅이 성사되었는데 업체 담당자는 위성을 사용하여 위치 추적을 할 수 있지만 아직은 상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며 손사례를 쳤다. 물러날 곳이 없는 우리는 업체를 겨우겨우 설득해서 프로젝트를 같이 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렇게 우리의 지옥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자갈밭을 걷는 것과 같았다. 월화수목금토일 주 7일 내내 12시간 넘게 일했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참고할 자료나 사례가 없으니 시행착오가 계속 발생했다. 업체 직원까지 합쳐도 열 명도 안 되는 개발자 인력도 문제였다. 김 팀장이 기획한 프로젝트는 적어도 30명은 필요한 것이었는데 실무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그는 머릿속으로만 필요한 인력을 계산했고 필요 인력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었던 것이다.


주 7일, 12시간 근무가 지속되자 직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야근과 결과가 보이지 않는 프로젝트는 모두를 지치게 했다. 그러나 팀에는 탄탄한 지식과 내공을 겸비한 선배 연구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주니어 사원들을 달래 가며 하나씩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여의 시간이 흘렀고 끝도 없을 것 같던 프로젝트가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과로 때문에 몸과 마음이 치쳐갔지만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성취감이 우리를 계속 달리게 해 주었다.


팀원 모두 일심동체가 되어 서로 도우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김 팀장은 팀원들을 믿지 않았다. 자신이 작성한 기획서보다 진도가 빠르게 나가지 않자 팀원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저녁 7시면 퇴근하던 김 팀장은 갑자기 루틴을 바꾸었다. 저녁 7시에 스포츠센터에 가서 운동을 하고 9시쯤 사무실로 다시 와서 직원들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팀장이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시간에 퇴근한 직원은 다음 날 훨씬 더 많은 업무를 배정받았다. 현재 맡은 업무도 버거운데 징계까지 받게 되자 아무도 팀장이 돌아올 때까지 퇴근하지 못했다. 팀장은 프로젝트 개발을 서둘러야 할 때면 11시에 사무실로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넘게 신문을 보면서 사무실에 머물렀다. 그런 날이면 직원들은 자정이 넘어 퇴근해서 잠깐 눈을 붙인 후 새벽같이 출근을 해야 했다. 이렇게 지옥 같은 시간을 버티며 1년이 흘렀고 프로젝트 1년 차 버전이 완성되었다.  


고객사에 가서 1년 차 프로젝트 결과물을 프레젠테이션해야 하는데 갑자기  팀장이 발표는 본인이 하겠다고 했다. 실무에는 관여하지 않고 감독만 했던 팀장은 프로젝트 내용을 잘 알지 못했다. 팀원 중에 가장 연배가 높은 선임 연구원이 팀장의 프레젠테이션을 돕기 위해 야근을 해야 했다. 프로젝트를 리드했던 선임 연구원이 발표를 하면 될 텐데 안 그래도 힘든 우리를 괴롭히는 팀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발표와 시연을 하는 날이 다가왔고 김 팀장은 고객사 시연을 멋지게 마무리했다. 언변이 뛰어난 팀장은 내용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프레젠테이션을 훌륭하게 해냈다. 나는 처음으로 그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했다. 고객사는 프로젝트 1년 차 결과를 극찬하면서 제안서에 없는 여러 가지 기능을 제안했다. 박수갈채 취한 김 팀장은 모든 기능을 다 개발할 수 있다고 약속을 하였다. 1년 차 프로젝트도 겨우겨우 해냈는데 말도 안 되는 추가 개발까지 떠안게 된 우리들은 할 말을 잃었다.


회사로 돌아온 후 다들 목소리를 높였다. 제안서에 없던 내용은 추가로 개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김 팀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것처럼 계속하면 된다고 하며 함께 하지 않을 거면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그의 강경한 태도에 아무도 더 이상 이의제기하지 못했다. 또다시 우리의 지옥 같은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후에 연구원 한 명이 사무실 한가운데에서 쓰러져서 엠블란스에 실려갔다. 그는 누구보다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면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던 선임 연구원이었는데 몇 달 전부터 허리가 아프다고 말하곤 했었다. 의사는 디스크가 너무 심해서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아픈데도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내고 참고 일해왔던 것이었다. 그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후 수술을 하겠다고 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렇게 한 명의 이탈자가 생겼다.


 한 명, 두 명씩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수개월 동안 과로에 지친 팀원들이 하나둘씩 퇴사를 하거나 팀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김 팀장은 이탈자가 생길 때마다 어딘가에서 충원 인력을 데리고 왔다.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직원은 해고하기도 했다. 김 팀장의 철저한 감시와 감독 하에 프로젝트는 완료되었다.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을 하였지만 여기저기 때운 흔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시스템을 구동하였지만 여기저기서 오류가 발생하였다. 오류가 발생할 때마다 팀원들은 고객사에 불러가서 땜질을 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근본적인 문제를 수정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저 오류가 발생할 때마다 땜질을 하면서 그렇게 연명해나갔다. 그러다가 프로젝트는 모두에게서 잊혔다. 프로젝트 중간에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퇴사한 나는 프로젝트도 김 팀장도 잊고 지냈다.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나 이직한 회사에서 잘 지내고 있을 때 같은 건물 5층에 예전에 다니던 연구소 사무실이 보였다. 궁금해서 지인에게 물어봤더니 대기 발령을 받은 직원들이 출근하는 사무실이라고 했다. 말이 대기발령이지 퇴사 통보를 받은 후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버티고 있는 직원들이 임시로 출근하는 사무실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에도 떠올리고 싶지 않던 김 팀장이 5층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삼십 대 초반의 나이에 최연소 졸업, 최연소 박사, 최연소 팀장 타이틀을 달고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초라한 모습의 그가 내 앞에 있었다. 인사를 하려 했더니 횡설수설하면서 5층에서 급하게 내렸다. 동료에게 들은 바로는 그는 연구소에서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했고 연거푸 실패를 했다고 하였다. 그렇게 여러 번의 실패를 겪고 나니 연구소장님도 그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연구소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다.


십 년 전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던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지금의 초라한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직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혼자만 똑똑하고 잘났다고 으스대던 엘리트 팀장의 최후의 모습은 너무 비참하였다. 소통을 하고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좋은 팀장이 되었을 것이다. 회사에서는 그 어떤 일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조금 일찍 깨달았더라면 그는 성공했을 것이다.


김 팀장 유형의 또라이 대처법

김 팀장을 만났던 시절, 나는 신입 사원이어서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경력이 쌓이면서 별별 사람들을 다 겪어보고 나니 김 팀장은 아주 다루기 쉬운 유형의 또라이였다.

그는 직원들을 감시하기만 했지 실무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원들이 얼마나 성과를 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지금의 나라면 김 팀장이 스포츠센터에 갈 때 나도 자유시간을 가질 것이다. 회사 휴게실에 가서 잠깐 눈을 붙이고 오거나 김 팀장처럼 운동을 했을 것이다. 어차피 김 팀장이 감시하러 오는 저녁 9시까지만 다시 돌아오면 되니 내게는 무려 3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일을 다 끝냈는데도 불구하고 김 팀장이 올 때까지 꾸역꾸역 버티며 체력소모와 감정 소모를 했다.


회사에서 너무 정직할 팔요는 없다. 너무 일만 열심히 하느라 자기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나가떨어질 수 있다. 너무 지친 것 같으 가끔 일탈과 농땡이를 쳐야한다. 그래야 오래 버티고 건강하게 회사 생활을 수 있다.


저녁 운동을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직원들을 감시하던 김 팀장은 내가 회사 생활에서 만난 첫 번째 또라이였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단 한 번의 실패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가 직장에서 겪었던 쓰라린 경험으로 조금이나마 성숙해졌기를 간절히 바란다.  

제주 바다에서 본 기울어진 등표가 김 팀장을 떠올리게 했다.


이 글은 실화를 기반으로 작성된 에피소드이지만 제 기억을 바탕으로 재건되었고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각색된 부분도 있기에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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