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페지오 Feb 02. 2024

그녀는 너무 예뻤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외모를 이용하는 여성들을 맞닥뜨릴 때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자신의 외모가 남보다 뛰어난 것을 알고 그것을 회사 생활에서 교묘하게 이용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


미 대리를 처음 본 것은 11년 전 그녀가 계약직 사원으로 우리 회사에 입사했을 때였다. 당시 우리 팀에는 고객 데이터를 정리할 계약직 직원이 급하게 필요했고 업체를 통해 그녀를 소개받았다. 그녀가 처음 출근한 날, 모든 직원들이 흘끔흘끔 그녀를 쳐다보는 을 느꼈다. 연예인을 해도 될 만큼 예쁜 그녀의 외모는 멀리서도 눈에 뜨였고 다른 층에 근무하는 직원들까지 그녀를 구경하러 올 정도였다.


미 대리는 몇 개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한 경험이 있었지만 내세울만한 경력이나 스펙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신입 사원을 한 번도 채용해 본 적이 없는 우리 회사에서는 그녀를 대리로 부르기로 했다. 모든 직원이 대리, 과장, 부장 등의 직급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무개 씨라고 부르는 것은 어색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출중한 외모로 첫날부터 이목을 끌었던 미 대리는 회사 업무에서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이력서에는 엑셀을 능숙하게 다룬다고 쓰여 있었지만 엑셀의 기본 기능조차 사용할 줄 몰랐고 데이터 처리 경험도 많다고 말했지만 해야 할 업무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업무가 시급해서 계약직 직원을 요청했는데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원을 배정받은 이 과장은 앞이 깜깜했다. 미 대리를 뽑은 김 팀장에게 따져 물었지만 김 팀장은 잘 가르쳐서 일을 시키면 된다며 이 과장을 타일렀다.


한시가 급했던 이 과장은 할 일들을 제쳐두고 필요한 엑셀 기능을 열심히 가르쳐 주었지만 미 대리는 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돈을 내고 학원에 가도 배울 수 없는 실무 기술을 가르쳐주는 데도 전혀 집중하지 않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과장에게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3일 내내 온 힘을 다해 교육을 했고 교육이 끝난 후 이 과장은 미 대리에게 업무를 하나 맡겼다. 샘플 데이터를 주고 이 과장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틀 안에 정리를 해오라고 지시한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팀장님을 찾아가서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달라고 요구할 생각이었다.


예상과 다르게 미 대리는 이 과장이 낸 숙제를 완벽하게 해 왔다. 교육을 전혀 듣지 않는 것 않았는데 어려운 숙제를 해 온 미 대리에게 이 과장은 감동을 받았다. 자신이 그녀를 잘못 본 것인가 싶어 미안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달라고 하려던 마음은 잊고  대리와 같이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회의실 책상에 나란히 앉아서 같이 작업을 하자고 제안했더니 미 대리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같이 작업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으니 자산에게 데이터를 나눠주고 해야 할 일을 알려달라고 했다. 이 과장은 미 대리가 원하는 대로 고객 데이터의 1/3을 그녀에게 배정해 주고 업무도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3일간의 기한을 주었다. 만약 미 대리가 일을 끝내지 못하게 되면 프로젝트에도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중간중간 진행 상황을 체크하려 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거부했다. 이 과장은 불안해하면서 3일을 보냈고 미 대리는 맡겨진 업무를 완벽하게 제출했다.  


그 후로도 계속 미 대리는 이 과장과 같이 작업하는 것은 거부하고 업무를 분배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미 대리는 분배받은 업무를 모두 완벽하게 끝냈다.


3개월 동안 맡긴 업무를 모두 깔끔하게 수행한 미 대리를 이 과장도 신뢰하게 되었다. 계약 기간이 종료될 즈음 김 팀장은 미 대리의 계약을 연장하자고 했고 이 과장도 동의를 했다. 그렇게 몇 번의 계약을 연장하다가 미 대리는 정직원으로 채용이 되었다.


그 후로 이 과장은 미 대리와 일 년 넘게 같이 일했지만 한 번도 그녀가 직접 업무를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녀가 자리에 앉아있을 때는 엑셀 화면만 띄운 해 실제 작업은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 미 대리는 자리를 비웠다. 그녀가 대체 언제 일을 제대로 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추궁을 할 수도 없었다. 근무시간에 다른 직원들과 차를 마시러 가거나 다른 부서와 회의를 하러 간다며 자주 자리를 비웠지만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해내니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과장은 진실을 알게 되었다. 손님이 찾아왔는데 하필 회사 근처 카페에 자리가 없어서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카페에 갔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바로 미 대리와 박 과장의 목소리였다. 두 테이블 사이에 얇은 칸막이가 있어서 그들은 이 과장을 보지 못한 듯 대화를 이어갔다. 미 대리는 월요일에 이 과장이 그녀에게 시킨 업무를 박 과장에게 설명하고 있었고 박 과장은 그것을 받아 적고 있었다. 박 과장은 미 대리의 업무를 내일 오전까지 해서 보내주겠다고 말한 후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이 과장은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까칠하기로 두 번째라면 서운할 박 과장이 미 대리의 업무를 대신해 주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더 믿을 수 없었던 것은 미 대리를 대하는 박 과장의 태도였다. 그는 아주 다정하게 미 대리와 대화를 하고 있었고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들은 연인처럼 보였다. 비밀을 알게 된 후 이 과장은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들은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틈틈이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차를 마시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정한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작년에 결혼식장에서 보았던 박 과장 와이프 얼굴이 떠올랐다. 이 사실을 박 과장의 와이프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지만 확실한 물증도 없이 의심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과장은 박 과장 와이프의 연락처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찜찜함을 묻어둔 채 이 과장은 이 둘에 대해 점점 잊게 되었다.


그렇게 또 일 년의 시간이 흘렀고 미 대리가 곧 결혼을 할 것이고 회사를 그만둔다는 소문이 돌았다. 미 대리에게 직접 소문을 확인하려는 찰나 그녀가 직접 청첩장을 가지고 왔다. 미 대리가 주고 간 청첩장을 보다가 한참 동안 잊고 있었던 박 과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과장은 미 대리의 결혼식장에서 일그러진 박 과장의 얼굴을 보았다.


미 대리의 결혼식 다음 날, 이 과장은 다른 부서 직원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박 과장과 미 대리가 연인 관계였으며 박 과장이 미 대리의 결혼을 끝까지 말렸다는 것이었다. 박 과장은 미 대리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이혼까지 했지만 미 대리는 박 과장과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단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박 과장이 필요해서 이용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박 과장과 사내에서 아슬아슬한 불륜 관계를 이어나가면서 자신이 결혼할 상대는 따로 찾아서 이중 연예를 하고 있었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자마자 그를 버린 것이다.


너무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라 말도 안 된다며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모든 퍼즐이 맞혀졌다. 자신의 업무도 아닌데 일 년 넘게 미 대리의 모든 업무를 대신해 주던 박 과장이며, 회사 주변 레스토랑, 카페에서 유독 둘이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뜨였던 것까지.


예쁘고 싹싹했던 미 대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외모를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박 과장은 그녀의 모든 업무를 대신해 줬고 그녀와의 핑크빛 앞날을 꿈꿨다. 그리고 이혼까지 했지만 그녀에게 버림받았다.    


때론 드라마보다 더한 일이 회사에서 일어나곤 한다.

미 대리의 일화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던 많은 여직원들을 짓밟아 버렸다. 하나씩 풀리기 시작한 그녀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회사 전체에 퍼졌고 어느 새부터 '여자는 이래서 안 돼'라는 말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미 대리의 이중생활을 알지도 못했고 오히려 피해자였던 그들은 승진에서 채용에서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기 시작했고 결국 다른 회사를 찾아 떠나갔다.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미 대리가 왜 그토록 정직원이 되기를 원했던 건지, 결혼과 동시에 그렇게 쉽게 포기해 버릴 정직원 자리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해야만 했던 것인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 대리 유형의 또라이 대처법

순수하고 아름다운 겉모습에 속지 말아라. 그녀는 아름다움 속에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전에는 그녀는 절대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니 정신을 차리고 도망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지나친 도움을 요구하고 한 사람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관계는 절대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더라도 공과 사는 구분할 것, 지나친 호의나 친절은 베풀지 말 것, 그것이 미 대리 같은 유형의 또라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살짝 얼은 호수 위에 앉아 있는 청둥오리 한쌍과 오리 한 마리가 위태로운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미 대리'는 실제 이름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뜻하는 한자 '미'에서 가져왔습니다. 특별한 성씨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초래하고 싶지 않아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성을 사용하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늑대의 탈을 쓴 양, 양 차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