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페지오 Sep 09. 2022

장례식장에서

지안의 누나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나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그의 누이는 암으로 몇 년 동안 투병하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부고를 받은 날, 하루 종일 멍하니 있었다. 그의 누나와 안면은 없지만 오십 대 초반밖에 안 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식을 먼저 보낸 나이 드신 부모님, 남겨진 아이들, 그리고 누나를 잃은 그의 슬픔을 가늠할 길이 없어 위로의 말을 섣블리 건넬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나와 비슷한 또래의 죽음은 더 크게 다가온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태풍이 지나간 뒤 화창한 하늘을 보며 그의 누이를 위해 기도를 했다.


다음 날, 마음을 추스르고 동료들과 함께 조문을 갔다. 오랫동안 투병하면서 힘들어하는 누나를 지켜본 그는 생각보다 의연했다. 누나를 잃은 그를 위로하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자리에 앉았다. 일 년에 적어도 한두 번은 만나던 사이였는데 코로나 이후 거의  나지 못했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 어떤 이는 3년 만에, 어떤 이는 2년 만에 만난 지라 근황 이야기부터 시작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행복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다 보니 그도 우리도 장례식장에 있다는 것을 잠깐 잊을 수 있었다.


삼십 대에 한 회사에서 만나서 어느덧 오십 대 초중반이 되어 이곳저곳에서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은 나의 은퇴를 부러워하였다. 오십의 은퇴가 삶을 즐기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에 딱 적당한 나이라고 했다. 그들 모두 은퇴를 꿈꾸고 있지만 노후 자금, 자녀 학비, 부모님 병원비 등 그들의 해방을 가로막는 현실로 인해 꿈만 꾸고 있다고 했다.

60대 중반만 되어도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며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많이 하라고 했다. 여행도 다니고 자전거도 타보고, 하고 싶었던 것 중에 체력이 필요한 것들은 전부 오십 대에 하라고 했다. 다들 자신의 위시리스트를 말해주며 해보라는 통에 나의 삶이 바빠질 듯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깨달았다. 25년 동안 일하면서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좋은 동료들을 얻었고 그들과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열정이 넘치던 즐거운 시간들이 있었다.

그들을 만나고 나니 다시 그때처럼 행복해졌다. 그의 누나가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발인 시간 즈음에 하늘을 보며 그의 누나를 위해 기도를 하려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부모님 걱정, 아이들 걱정은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쉬시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절 우울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