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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Nov 06. 2022

코딩은 좋아하지만 개발자는 싫어요

아주 오랜만에 코딩을 했다. 지인의 부탁으로 자바 스크립트 함수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게 뭐라고 오전 내내 의자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집중해서 코딩을 했다.


사실 나는 개발에서 손을 뗀 지 십여 년이 넘었고 C 언어와 자바 언어는 잘 다룰 줄 알지만 자바 스크립트는 배워 본 적이 없다. 지인이 부탁한 기능은 공개된 코드를 몇 개 짜깁기해서 수정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자바 스크립트 구문을 잘 알지 못하니 구문을 해석하고 디버깅을 하느라 서너 시간이나 걸렸다.

마침내 코드가 돌아가서 잘 실행되는 것을 본 순간, 잊고 있었던 개발자 DNA가 살아났다. 학교 컴퓨터실에서, 회사 사무실에서 디버깅에 성공해서 코드가 돌아갈 때 느꼈던 그 짜릿함을 오랜만에 다시 마주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대학교와 대학원 6년, 그리고 개발자 3년, 자바 강사 2년을 합치면 거의 십 년 넘게 코딩을 으니 따지고 보면 코딩과 함께 한 세월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다. 이렇게 보면 런 것 같고 저렇게 보면 런 것 같은 알쏭달쏭한 국어, 외워도 외워도 끝이 없는 국사, 도무지 암호 같고 의미를 모르겠는 화학보다 항상 명료한 답을 내어주는 수학이 좋았다. 수학좋아하다 보니 우연히 경시 대회에 나가서 상을 한번 탔고 수학을 잘한다는 칭찬을 받기 시작하니 다른 공부는 제쳐두고 수학만 공부했다. 다른 과목 성적은 바닥이어도 수학 성적은 반에서 일등이어야 했고 경시 대회에서 상을 놓치면 화가 났다.


그렇게 제멋대로 학창 시절을 보내다가 대학교 원서를 써야 할 때가 다가왔다. 외우는 것을 잘 못하는 내게 의대, 약대는 적성이 맞지 않을 것 같았고 수학과는 취직하기 힘들 것 같아서 고민 끝에 컴퓨터 공학과에 지원했다.


컴퓨터 공학이라는 학문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긴 했지만 나름 적성에 맞았다.

여러 과목 중 알고리즘이라는 과목을 제일 좋아했는데 수학과 코딩을 연결할 수 있고 로직에 의해 수백 라인의 코드를 단 몇 줄로 만들 수 있는 간결함의 미학에 매료되었다. 과제를 할 때면 쓸데없이 라인 수를 줄이려고 끙끙대다가 어둑어둑해진 후에야 실습실에서 나오곤 했. 코드를 간결하다듬어서 일분일초라도 빨리 실행되게 하는 과정이 미팅, 소개팅보다 즐겁고 짜릿했다. 새벽에 연구실에서 수십 라인의 코드를 다섯 줄로 줄여놓고 혼자 즐거워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런데 막상 개발자로 취업을 해보니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코드를 짜는 것은 여전히 즐거웠지만 문제는 디버깅이었다. 회사 일은 혼자서 할 수 없으니 여러 사람이 작성한 코드를 조합해야 하는데 코드를 합치고 나면 어딘가에서 에러가 나곤 했다. 여러 사람이 작성한 수 천 수 만 라인의 코드에서 에러가 나기 시작하면 버그(코드의 문제점)를 찾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내가 아무리 완벽하게 코드를 짜도 다른 사람의 코드와 합쳐지면 생각지 못한 에러가 나기도 했고 개발자마다 스타일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코드는 이해하기조차 어려우니 디버깅(코드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번 디버깅을 시작하면 서너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고 매일 코드와 씨름하면서 퇴근하지 못하는 날들이 쌓여갔다. 365일 야근이 이어졌고 프로젝트를 완료할 때까지 휴일 따위는 없었다. 과로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정신도 피폐해져 갔고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3년 만에 개발자를 그만두고 프리세일즈라는 직업을 택했다.


그 후 프리세일즈로 20년 넘게 일하면서 가끔씩 개발자 시절이 그리웠다. 딱 정해진 답이 없는 프리세일즈 일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팀으로 일하는 영업 사원의 실적에 따라 내 성과도 숫자로만 매겨지니 사기가 떨어지기도 했다. 어쩌다 회사에서 코드를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 생기면 손을 들고 자청다. 신이 나서 코드를 들여다보면서 개발자로 몇 년만 더 일해볼 걸 그랬다는, 너무 일찍 그만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개발자가 적성에 맞았던 것 같다. 365일 내내 야근이 이어지고 프로젝트를 완료해야 하면 휴식도, 휴일도 없는 혹독한 개발자의 삶이 싫었던 것이지 코딩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코딩을 좋아했지만 개발자의 삶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요즘 시대의 개발자들은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일하고 있을까?

코드가 돌아가야만(실행되어야만) 오늘 할 일이 끝나는 개발자의 삶에서 과연 야근은 없어졌을까?

말 한마디에 수만 라인의 코드를 뒤엎고 처음부터 프로그램을 다시 짜게 만들던 내부 혹은 외부로부터의 갑질은 사라졌을까?


오랜만에 짠 몇 줄의 자바 스크립트 코드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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