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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Dec 24. 2022

당신은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가요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본방사수는 하지 않는다.

나의 일상이 어딘가매이것도 싫고 처음에는 괜찮은 듯하다가 끝으로 갈수록 이상해지는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 낭비하는 것도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내가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는 본방사수를 했다. 우연히 회차를 보게 된 후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 주말 밤마다 혼자 TV를 켜고 숨을 죽이면서 보았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드라마의 모든 것에 빠져들어서 OST를 무한 반복해서 들었고 같은 장면을 보고 또 봤다. 드라마가 종영한 후에도 한동안 드라마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왜 그렇게 좋았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조직 폭력배와 호스트 바 생활에서 도망쳤지만 알코올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구 씨,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인해 형제들과는 다르게 사는 듯 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첫째, 편의점 대리로 성실하게 일하고 있지만 매일 똑같은, 그리고 더 나아지지 않을 하루를 힘겹게 버텨내있는 둘째, 착하디 착한 성격 때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어느덧 웃음을 잃어버린 셋째, 그리고 가구를 만들고 부업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 그들의 부모.


어떻게 보면 나와는 별로 공통점이  사람들의 이야기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마음속 깊이 다가왔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다 이야기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좋아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회차는 구 씨가 주인공이었고 어떤 회차는 미정이 주인공이었고 그리고 어떤 회차는 세 형제의 엄마가 주인공이었다. 한 회 한 회마다 각자의 시선에서 그들만의 서사가 펼쳐졌다. 등장인물 모두를 응원하고 그들이 온전히 해방되기를 바라면서 드라마가 아니고 마치 주변 사람의 이야기인양 감정이입을 하면서 보았다.


나에게는 인생 드라마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드라마였 영상, 음악, 대사, 드라마의 모든 것이 좋았기에 당연히 다른 들도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지인들과 이야기를 보니 호불호가 갈렸다. 드라마 분위기가 어둡고 우울해보다가 그만두었다는 이들도 있었고 호스트바 출신인 구 씨의 스토리가 공감이 되지 않아서 아예 보지 않았다는 이들도 있었다. 반대 의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나의 해방일지"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곤 했는데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본 후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좋아하고 지금 일상에 만족하고 해방을 꿈꾸지 않는 이들은 이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거라고.




음악을 좋아해서 운전을 할 때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항상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의 선곡 리스트를 보았더니 유독 제목에 "새"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가 많았다. 나의 선곡 리스트는 별로 알려지지도 않고 유명하지도 않은 곡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유독 "새"라는 제목이 많은 걸까 궁금해졌다. 며칠을 고민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다가 날아가는 새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아. 나는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고 싶은 거구나. 이 모든 짐을 훌훌 털고 훨훨 날아가고 싶은 거였구나.'


아이의 수험생 시절, 퇴근 후 파김치가 된 몸을 끌고 다시 대치동 학원으로 가서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입시 설명회를 듣고 또 듣던 날, 문득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는 아이가 혼자 알아서 하는 거라며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골프를 치러 다니는 남편처럼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나보다 더 힘든 아이를 생각해서 그러면 안 된다고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전람회의 "새" 들었다.


직장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아무나 확 들이받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득 차 있었지만 아무한테나 화풀이할 수는 없으니 멍이 들 정도로 가슴   날에는 시나위의 "새가 되어 가리"를 들었다.


엄마와, 혹은 남편과 싸우고 집을 나왔는데  곳이 없어서 집 앞 공원을 뱅뱅 돌면서 하염없이 울던 날에는 페퍼톤스의 "새"를 들었다.


훨훨 날아가겠다는 노래 가사를 들으면 나도 날이 오르는 것 같았다. 훨훨 날아간다는 가사를 듣고  듣고 나면 잠깐이라도 어디론가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학원 설명회로, 집으로 혹은 회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마도 "나의 해방일지"도 나에게 그런 위안을 주었던 것 같다.


인생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누구나 벗어나고 싶은 그 무엇이 있지만 할 수 없이 그 짐을 떠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생계를 위한 벌이일수도 있고 가족과의 질긴 인연일 수도 있고 끊어내지 못하는 연인과의 관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이들에게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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