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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Sep 08. 2020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을까

나는 컴퓨터 공학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바로 취업하여 25년 동안 직장을 다녔다. 25년 동안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치열하게 살았는데 이상하게도 삼십 대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다. 아마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지워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삼십 대는 암울 했다. 은퇴하신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셨다.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셨지만 병간호에 시달리던 할머니는 어린 손주를 살갑게 돌봐주실 수가 없었다. 애정에 굶주린 아이는 출근할 때마다 엄마를 붙들고 울었고 나는 매일 눈물을 훔치며 출근했다. 일복이 많은 탓인지 정시 퇴근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고 저녁 9시, 10시가 훌쩍 넘어서야 겨우 집에 들어왔다. 엄마가 보고 싶은 아이는 저녁 6시만 되면 전화를 걸어서 언제 퇴근하는지 물었6시부터 놀이터에 나와서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다. 하루 종일 아버지 병간호에 지친 친정 엄마는 집에서 쉬지도 못하시고 손주를 따라 놀이터에 앉아 계셨다. 조급한 마음에 전력 질주를 해서 집에 들어가면 아이는 엄마랑 놀고 싶어서 도통 잠을 자려하지 않았다. 아이가 지칠 때까지 놀아주고 나면 자정이 넘었고 겨우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출근을 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을 왔다 갔다 하시면서 투병하시던 몇 넌 동안 우리 가족 모두 힘들게 살았다. 오랜 투병으로 눈덩이 같이 불어 나는 병원비와 수술비 때문에 간병인이나 집안일을 도와줄 사람을 쓰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엄마와 나는 한없이 지쳐 갔다.


5년여의 투병 끝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엄마가 쓰러지셨다. 수년간의 병간호로 찌든 피곤과 스트레스가 병이 되었던 것이다. 엄마가 수술을 하시고 기운을 차리시자 이번엔 내가 아팠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너무 아파서 병원을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나도 입원을 하고 수술을 했다. 아버지 병간호, 그리고 엄마의 수술, 이어진 나의 수술로 나의 삼십 대는 휙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나니 갑자기 나를 위한 시간이 생겼다. 어느 날 삼십 대의 일기를 보게 되었는데 일기를 보고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참 사랑을 받았어야 하는 어린 나이에 우리 애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할아버지는 중환자실을 왔다 갔다 하고 할머니는 항상 녹초가 되어 고 엄마 아빠는 회사에 갔다가 저녁 늦게나 들어왔는데 아이는 하면서 하루를 보냈을까?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서 눈물이 났다.


이런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다가 아들이 군대에 갔을 때 편지를 썼다. 너무 미안하다고 그땐 엄마도 어렸고 모든 것이 처음이라 엄마 노릇이 서툴렀다고 사과했다. 아들에게 나의 마음이 전해졌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앞으로도 가끔씩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몇 달 전 군대에 간 아들 휴가에 맞춰 휴가를 내고 일주일 내내 아들의 스케줄에 맞춰 따뜻한 밥을 해 줬다. 아들이 군대에서 나온 다섯 번의 휴가 중 처음이었다. 아들이 스물세 살이 되고 처음이었다. 엄마가 알주일 내내 집에 있으면서 따뜻한 집밥을 해준 것이. 가족 휴가가 아닌데, 담임 선생님 면담이 아닌데, 입시 설명회에 가는 것이 아닌데 엄마가 휴가를 내고 일주일 내내 삼시 세끼를 차려준 것이 우리 아들에게는 처음이었다.


워킹맘이지만 육아에도 소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우리 아들이 사랑으로 잘 컸을지, 가슴 한구석에 부족한 것은 없을지 걱정이 된다. 아이에게는 서너 살 때 부모와의 애정 관계가 중요하다고 하던데 그때 나와 남편은 삶에 찌들어 있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걸까?


나는 회사에서 똑 부러지게 일 잘하는 여자 후배들을 보면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한다. 만약 결혼을 하고 싶다면 아이는 낳지 말라고 말한다.


아마도 나의 경험이 일반적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투병까지 겹친 상황 때문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힘겨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마다 직장에서의 많은 기회를 포기해야만 했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회사로의 이직을 포기했고

회사에서 학비가 지원되는 MBA나 박사과정을 포기했고 진급도 포기했다.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도 더 이상 낼 시간이 없어서 새로운 도전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똑똑한 후배들이 일과 육아 사이에서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그래서 난 망설임 없이 당신에게 일이 더 중요하다면 아이를 낳지 말라고 조언한다.


일과 육아... 미안하지만 둘 다 잘할 수는 없다. 본인에게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고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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