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컴퓨터 공학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바로 취업하여 25년 동안 직장을 다녔다. 25년 동안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치열하게 살아서 삼십 대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지워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삼십 대는 암울 했다. 은퇴하신 친정 부모님을 부양해야 했고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셨다. 친정 엄마가 아이를 봐주셨지만 남편의 병간호까지 해야 했던 할머니는 어린 손주를 살갑게 돌봐주시지는 못했다. 애정에 굶주린 아이는 출근할 때마다 나를 붙들고 울었고 나는 매일 눈물을 훔치며 출근했다. 그 시절 정시 퇴근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고 저녁 9시가 넘어서야 겨우 퇴근할 수 있었다. 엄마가 보고 싶은 아이는 저녁 6시만 되면 전화를 걸어서 오늘은 몇 시에 집에 오는지 물어보았고 전화를 끊고 놀이터에 나와서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다. 남편 병간호와 손주 육아로 지친 친정 엄마는 집에서 쉬지도 못하시고 손주와 같이 놀이터에 앉아 계셔야 했다. 퇴근해서 집으로 달려가면 10시가 넘었는데도 아이는 도통 잠을 자려하지 않았다. 아이가 지칠 때까지 놀아주고 나면 자정이 넘었고 겨우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새벽에 출근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을 왔다 갔다 하시면서 투병하시던 몇 넌 동안 나의 삶은 힘겨웠다. 오랜 투병으로 눈덩이 같이 불어 나는 병원비와 수술비 때문에 간병인이나 도우미를 쓰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나는 한없이 지쳐 갔다.
5년여의 투병 끝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친정 엄마가 쓰러지셨다. 수년간의 병간호로 찌든 피곤과 스트레스가 병을 키웠던 것이다. 엄마가 수술을 하시고 기운을 차리시자 이번엔 내가 아팠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병원을 갔더니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나도 병치례를 했다. 아버지 병간호, 그리고 엄마의 수술, 이어진 나의 수술로 이어진 나의 삼십 대는 칠흑 같은 암흑 그 자체였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나니 드디어 나를 위한 시간이 생겼다. 어느 날 삼십 대의 일기를 꺼내보다가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시절의 암담함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사랑으로 품었을까? 한참 사랑을 받았어야 하는 어린 나이에 우리 아이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할아버지는 중환자실을 왔다 갔다 하고 할머니는 항상 지쳐 있었고 엄마 아빠는 회사에서 밤늦게 집에 왔는데 대체 우리 아들은 뭘 하면서 하루를 보냈을까?
미안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다가 아들이 군대에 갔을 때 긴 편지를 썼다. 너무 미안하다고, 그땐 엄마도 어렸고 엄마 노릇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서툴렀다고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아들에게 나의 마음이 잘 전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가끔씩 아들에게 편지를 쓰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아들 휴가에 맞춰 휴가를 냈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집밥을 해줬다. 아들은 맛있게 밥을 먹으면서 엄마가 일주일 내내 집에 있는 것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가족 휴가가 아닌데, 담임 선생님 면담도 아닌데, 입시 설명회에 가는 것도 아닌데 엄마가 휴가를 내고 일주일 내내 삼시 세끼를 차려준 것이 스물세 살 아들에게 처음이었던 것이다.
워킹맘이지만 육아에도 소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우리 아들이 사랑으로 컸을지, 가슴 한편에 부족한 것은 없을지 걱정이 된다. 서너 살 때 아이와 부모와의 애정 관계가 중요하다고 하던데 나는 그때 삶이 너무 버거워서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을까?
나는 회사에서 일 욕심이 있는 여자 후배들을 보면 결혼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 만약 결혼을 하고 싶다면 최소한 아이는 낳지 말라고 말한다.
아마도 나의 경험이 일반적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투병까지 겹친 상황 때문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더 힘겨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마다 직장에서의 많은 기회를 포기해야만 했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회사로의 이직, 회사에서 학비가 지원되는 MBA와 박사과정, 그리고 진급도 포기해야만 했다.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도 나를 위해 낼 시간이 없어서 나를 위한 투자는 모두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 똑똑한 후배들이 일과 육아 사이에서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일이 중요하다면 아이를 낳지 말라고 조언을 한다.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다. 일을 포기하는 것이 꼭 엄마라는 법은 없지만 부모 중에 한 사람은 온전히 아이를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