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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Apr 09. 2022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고발합니다

며칠 전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데 저만치서 학생 한 명이 뛰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학생의 표정이 너무 절실해서 열림 버튼을 눌러서 엘리베이터를 잡아주 했는데 내 앞에 서있던 여성이 버튼을 먼저 눌렀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과 달리 엘리베이터 문이 사정없이 닫혀버렸고 학생은 한 끗 차이로 엘리베이터를 놓치고 말았다. 엘리베이터  사이로 우리를 쳐다보던 망연자실한 학생의 표정을 오전 내내 잊을 수가 없었다.


실수로 닫힘 버튼을 누른 여성은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서 어떡해요. 열림 버튼이 왼쪽 아니었나요?"

그녀는 분명 열림 버튼을 누른다고 자신의 왼쪽에 있는 버튼을 눌렀는데 하필 그것이 닫힘 버튼이었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 여성에게 공감하고 있다면 당신은 엘리베이터를 탈 때 주로 오른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엘리베이터 안에서 승강장을 바라보고 섰을 때 기준) 어느 날, 평소와 다르게 엘리베이터의 왼편에 서 있었다면 열림 버튼이 당신의 오른쪽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표준에 따라 제작된 엘리베이터일 경우에만 해당된다. 오늘부터 주의 깊게 엘리베이터를 관찰해 보면 열림/닫힘 버튼 배치가 엘리베이터마다 제각각임을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엘리베이터 버튼 배열에 대한 국가 표준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엘리베이터 열림/닫힘 버튼 위치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엘리베이터 사용자 인터페이스 (User Interface) 표준이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하는 인터페이스에 표준이 없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고 놀랍게도 국가기술표준원에서 지정한 표준이 있었다.


[참고]  KSB50127 엘리베이터 카 내 조작 버튼 위치 및 배열 장애인용 점자 표시 방법 (https://e-ks.kr/streamdocs/view/sd;streamdocsId=72059241016463513, 출처 : 국가표준인증 통합정보시스템)


표준에 따르면 문 열림 버튼은 엘리베이터 내에서 승강장 측을 바라보고 섰을 때 기준으로 도어 측에 배치되어야 한다. 즉, 엘리베이터 내부에서 승강장을 바라보고 섰을 때 열림 버튼은 도어 측에 있고 닫힘 버튼은 반대쪽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엘리베이터의 왼쪽에 서있던지 오른쪽에 서 있든지에 상관없이 열림 버튼을 누르고 싶다면 도어 측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된다.(그림 1 참고)

                              

[그림 1] 양쪽 열림 버튼이 모두 도어 측에 있음 (표준에 따라 제작된 경우)

사람들은 이러한 표준 배치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열림 버튼을 눌러야 할 때면 도어 측 버튼을 누르게 된다.

엘리베이터의 열림/닫힘 버튼 배열이 제각각이라는 것을 발견한 이후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기록해 보았다. 몇 개월 동안 꼼꼼히 관찰해 본 결과 대다수의 엘리베이터 열림/닫힘 버튼은 표준에서 지정한 방식대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표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설계된 엘리베이터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사람을 보고 열림 버튼을 눌렀는데 문이 닫혀버려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면 이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바로 엘리베이터 열림/닫힘 버튼의 배치가 제멋대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 동네 백화점 엘리베이터를 살펴보니 오른쪽에 열림 버튼이 있고 왼쪽에 닫힘 버튼이 있었다. (그림 2 참고) 언뜻 보면 일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엘리베이터의 오른쪽에 탔을 경우에는 열림 버튼을 누르려면 도어 측 버튼을 눌러야 하고 엘리베이터의 왼쪽에 탔을 경우에는 벽 쪽 버튼을 눌러야 한다. 표준 배치에 익숙한 사용자라면 무의식적으로 열림 버튼이라고 생각하고 도어 측 버튼을 눌렀는데 이것이 닫힘 버튼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버튼의 상대적인 위치가 달라지면 열림 버튼과 닫힘 버튼의 위치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용자는 표준 배치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열림과 닫힘 버튼 위치를 혼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림 2] 양쪽 조작 버튼이 동일하게 배치된 경우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심지어 어떤 빌딩의 엘리베이터는 표준과 정반대로 설계되어 있기도 했다. 즉, 도어 측에 닫힘 버튼이 있고 반대쪽에 열림 버튼이 있었는데 이 사실을 발견하고 난 후 그 건물의 설계에 대해서 의심하게 되었다.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도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았으니 세세한 부분에서 많은 것들을 놓쳤을 것 같아서 왠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나를 당황하게 한 건물은 서울에 있는 호텔이었는데 엘리베이터 버튼의 위치 때문에 호텔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까지 떨어졌다.

[그림 3] 열림 버튼이 도어에서 먼 쪽에 배치된 경우 

통상적으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에는 표준이라는 것이 있고 사람들은 이에 익숙해져 있다. 예를 들면 리모컨의 전원 버튼은 왼쪽 상단에 있고, 핸드폰에서 암호를 입력하거나 전화번호를 누를 때 사용하는 숫자 패드의 배열은 3x4 형태로 숫자 배열 순서와 위치가 동일하다. 이러한 것들이 생활 속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표준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의 사례이다.


엘리베이터 조작 버튼에 대한 표준은 2011년에 국가기술표준원에서 처음으로 제정되었다고 한다. 표준 문서에 "문 열림 버튼은 엘리베이터 내에서 승강장 측을 바라볼 때 도어 측에 배치되어야 한다."라고 명확하게 명시되어 고 경험상 문 열림 버튼이 도어 측에 배치된 것이 사용하기에 편리했다.

이렇게 국가에서 지정한 표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이 각양각색으로 설계된 이유는 무엇일까? 표준이 제정되기 전에 설계된 엘리베이터들이 많기 때문일까? 아니면 표준을 꼭 따라야 한다는 강제성이 없기 때문일까?


최근에는 엘리베이터 조작 패드에 항균 패드가 붙어있어서 열림/닫힘 표시가 잘 안 보이는 경우가 많다. 표준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가 적용되어 있다면 버튼 위치만 기억해서 버튼을 누르면 되니 훨씬 편리했을 것 같은데 제각기 설계된 엘리베이터 버튼이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참고] 그동안 찍어놓은 엘리베이터 조작 패드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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