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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Jan 22. 2021

아름다운 죽음

아버님을 결국 요양병원에 모셨다. 어머님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대동맥류로 고생하시던 아버님은 작년 가을부터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셨다. 집에서도 혼자서는 거동을 거의 못하셨고 보조기에 의존하여 식탁, 침실, 화장실 정도만 겨우 왔다 갔다 하셨다. 의사는 수술을 해도 가망이 없다고 했다. 고령이라 전신 마취와 어려운 수술 과정을 견뎌내실지도 모르겠고 수술이 성공한다 해도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하면서 수술을 할지 말지 가족들이 결정하라고 했다. 무책임한 말에 가족들은 무너졌다. 큰 아들 내외는 해외에서 거주하고 있어 둘째 아들인 우리 남편이 아버님, 어머님과 여러 차례 상의를 했고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이후로 5개월이 흘렀다. 아버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셨고 혼자 간병을 떠맡으신 어머님이 지쳐가시는 것이 눈에 보였다. 우리 부부도 맞벌이이고 간병을 도울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간병인을 붙여드렸지만 모르는 사람과 24시간 붙어 있는 것이 불편하시다며 한 달 만에 간병인을 내보내셨다.


간병인을 내 보신 후 어머님께서 울면서 전화하시는 횟수가 잦아졌다. 더 이상 못 하겠다며 한 번만 더 입원하면 바로 요양병원으로 가시겠다고 했다. 어머님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남편의 한숨 소리가 더 커졌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한숨과 걱정만 늘어가는 시간이 꾸역꾸역 흘렀고 아버님 상태가 나빠져서 다시 입원을 게 되었다.

입원하신 지 사흘쯤 되었을 때 어머님이 요양 병원을 알아보라고 하셨다. 퇴원하시는 날, 결국 아버님을 모시고 집이 아닌 요양 병원으로 향했다. 간병을 하고 계신 어머님 대신에 세면도구, 속옷 등 필요한 물품을 챙기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는 아버지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하고 자랐다. 이기적인 아버지는 자식보다 본인이 항상 우선이었다. 좋아하는 술과 담배만 끼고 사시다가 예순이 조금 넘으신 나이에 폐암으로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결혼하고 따뜻하고 자상하신 시아버님을 만났다. 가족끼리 외식을 하러 갈 때면 항상 며느리들에게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보셨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어머님과 내 수저에 하나씩 올려주셨다. 나의 아버지에게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자상한 모습이었다.


아버님은 음악, 역사 모든 분야에 지식이 풍부하셔서 손자를 앉혀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아버님의 이야기가 너무 재밌고 시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좋아서 시댁에 가는 것이 좋았다. 맞벌이를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매주 주말에 시댁에 갔다. 결혼하고 이십 년 넘게 시부모님을 친부모님 같이 생각하고 살았다.


그렇게 멋있고 자상하고 다정하신 아버님을 요양병원에 모시려니 눈물이 났다. 요양병원에는 치매나 의식이 없는 환자가 대부분인데 아버님은 거동만 불편하신 것이지 의식은 너무 명료하신 상태라 요양 병원에 모시는 것은 정말 최후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간병을 하시던 어머님까지 병이 날 지경이었기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요양병원으로 가기로 결정한 전날에도, 모셔다 드리고 온 다음 날에도, 그리고 지금도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코로나로 면회도 안 되는 상황에서 잘 지내고 계신지, 병원에서 보살펴드리는지 , 대부분 의삭이 없는 환자들이라 말동무도 없는 그곳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오늘 저녁엔 친정 엄마가 차려 주신 저녁을 먹다가 아버님이 좋아하는 반찬을 보고 아버님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날 뻔했다.


작년 가을에 응급실에 실려가셨을 때 아버님은 구차하게 수술 같은 것은 하지 않고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삶은 너무 가혹하다. 평생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고생만 하신 아버님을 왜 저렇게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죽어도 여한이 없고 집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고 싶다고 하시는데 그 부탁을 들어드릴 수가 없는 것이 속상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간병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어머님이 말리셨다. 긴 병치례로 짜증과 화가 늘어서 어머님도 감당할 수 없는 아버님을 내가 간병할 수 없을 거라고 하셨다.


삶이 너무 서글프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살다가 생을 마무리하는 사람이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 요양병원에서 대화할 상대도 없이 쓸쓸히 계실 아버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버님 면회도 못 하게 막는 코로나가 너무 밉다. 빨리 코로나 상황이 좋아져서 아버님을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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