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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갉아먹는 또라이들

회사에서 겪게 되는 쓸데없는 감정 소모

by 아르페지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쓸데없는 일로 사람들과 부딪치고 감정 소모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웬만하면 감정을 드려내지 않고 속에 있는 말도 잘하지 않는 성격이다. 이런 성격이라서 그런지 참다 참다 한번 부딪치게 되면 크게 화를 내곤 한다. 24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언성을 높인 적이 딱 다섯 번 있었는데 모두 너무 많이 참은 탓에 그동안 참아왔던 것이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그때그때 이야기하고 풀려고 노력하지만 타고 난 성격이 잘 고쳐지지 않아서 고민이다.


회사 생활에서는 드라마에서나 있을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요즘 나와 부딪치는 동료는 자신이 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뭐든 본인이 하는 것만 옳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틀리다는 전제로 시작해서 모든 것을 자신의 틀에 맞추려 한다. 그 사람은 다른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다. 한 회사에서만 20년 넘게 있었고 지사가 설립될 때부터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모든 업무에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회사는 달랑 서너 명이 근무했던 2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백여 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하고 있으며 다양한 비즈니스 영역까지 사업이 확대되었다. 지사장님조차 모든 비즈니스를 컨트롤하기 어려운데 매니저도 아닌 그가 왜 다른 사람들을 컨트롤하려고 하고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의 이런 행동 때문에 우리 팀원 모두 그와 트러블이 있었고 한 명은 인사부에 신고를 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 팀 과장이 고객사에 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사전 통보도 없이 고객사에 따라와서 과장의 프레젠테이션에 대해 지적을 했다고 한다. 매니저도 아닌 그가 그럴 권리가 있는 걸까?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고객사도 아닌데 연락도 없이 남이 일하고 있는 일터에 와서 그런 식의 침범을 해도 되는 걸까? 직원은 모욕감을 느꼈고 인사부에 그 시람이 자신의 업무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신고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버젓이 회사를 다니며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회사의 이런 행태가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 회사의 경영진에게 로버트 서튼의 "또라이 제로 조직"이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 명의 또라이가 회사 전체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그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공감했던 구절이 있는데 그들에게 읽어주고 싶다.

"또라이는 단지 직접적인 피해자에게만 상처를 주는 게 아니다. 그런 못된 짓을 함으로써 직장 내 모든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자기 자신의 경력과 명성마저 손상시키고 오점을 남기는 것이다."

그렇다. 한 명의 또라이가 전체 조직을 병들게 할 수 있다. 당신이 매니저라면, 당신이 경영진이라면 이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제도 나는 이 또라이와 부딪쳐서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했다. 내년도 플래닝을 위해 매니저에게 보내야 할 데이터가 있는데 본인이 취합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당신이 매니저가 아니니 우리 모두 각자 매니저에게 보내겠다고 했더니 그는 매니저에게 자신이 만든 템플릿을 보내고 다른 사람들도 해당 템플릿에 데이터를 채워달라고 요구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영문을 모르는 매니저는 또라이의 요청을 수락했고 우리는 맞지도 않는 템플릿에 억지로 데이터를 채워 넣어야 했다. 결국 나와 나머지 팀원들은 정작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또라이 때문에 쓸데없는 데이터를 채워 넣느라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이 또라이는 평소에는 회사 일을 잘리지 않을 정도로만 한다. 정말 어떻게 딱 잘리지 않을 정도까지 하는지 신기하다. 그런 또라이가 왜 내년도 플래닝에 필요한 데이터 취합을 하겠다고 했는지 나는 알고 있다. 매니저가 새로 왔고 지사장님도 새로 오셨기 때문에 데이터를 취합한 다음 생색을 내며 본인이 만든 것이라며 여기저기 뿌렸을 것이다. 데이터를 채우느라 고생한 우리는 그가 생색내며 뿌리는 이메일 수신 리스트에는 없을 것이다. 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이 또라이는 이런 수법으로 살아남았다.


추석 연휴 전에 끝내야 할 업무들이 산더미 같은데 이 쓸데없는 일과 감정 소모 때문에 반나절 넘는 시간을 허비한 후에 과연 이런 것들이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동안 여러 명의 매니저에게 호소를 하고 시정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또라이는 여전히 우리 팀에 존재하고 여전히 같은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내가 현명하다면 이 난관을 잘 헤쳐갈 수 있을까? 나의 새로운 매니저는 이 또라이가 개선될 거라고 믿는 걸까? 혹시 나도 어떤 사람에게는 또라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걸음 떨어져서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현명하게 헤쳐나가 보려고 생각에 또 생각을 해본다. 나에게 솔로몬의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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