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한 후 특별히 달라진 일상은 없었다. 회사를 다닐 때도 꾸준히 운동을 했고 살이 찌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그러나 중년의 나이가 되면서 슬금슬금 늘기 시작한 몸무게는 어느새 과체중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깡마르지는 않았지만 평생 뚱뚱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과체중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다이어트와의 힘든 사투가 시작되었다. 저녁 6시 이후에는 금식을 해보기도 하고 운동 부족인가 싶어서 PT를 받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원래부터 저녁에 음식을 잘 먹지 않는 내게 저녁 6시 이후 금식은 별다른 효과가 없었고 PT는 선생님을 잘못 만난 탓인지 전혀 재미가 없었다. 결국 그나마 좋아하는 수영을 꾸준히 하기로 결정하고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수영을 했다. 수영을 하고 나면 개운한 기분이 들었고 성취감이 있었지만 다이어트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찌 된 것인지 수영을 일 년 넘게 했는데도 몸무게는 빠지지 않았다. 결국 갱년기 아줌마는 살을 뺄 수 없다고 단념하고 평소대로 살았다. 아침, 점심은 일상식을 먹었고 저녁이면 남편과 맥주 한두 잔을 했지만 대신 저녁에는 탄수화물이나 튀긴 음식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수영을 그만두고 이렇게 생활해도 몸무게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은퇴를 했다.
은퇴 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일 년이 지난 후 재어보니 몸무게가 3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어떤 사람에게는 3킬로그램 감량이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운동을 싫어하고 다이어트는 더 싫어하는 내겐 의미 있는 숫자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1킬로그램도 빠지지 않던 살이 1년 만에 3킬로그램이나 빠지다니.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식생활에 신경을 쓴 것도 아닌데 몸무게가 빠진 이유를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비만의 주원인이었나 보다.
헬스 트레이너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다이어트는 식단이 80, 운동이 20이다."
운동도 물론중요하지만 살을 빼기 위해서는 음식의 양과 질을 조절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은퇴 후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지만 자세히 체크해 보니 먹는 음식의 양이 확실히 줄었다. 원래 많이 먹는 편은 아니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저녁에 맥주 한두 잔을 마시면서 치킨이나 과자 같은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었다. 평상시에는 자극적이거나 튀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술을 한 잔 마시면 칼로리가 높은 음식이 당겼다. 가끔씩 맥주를 좋아하는 남편과 펍에도 갔으니 주기적으로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었던 것 같다. (슬프지만 펍에는 건강한 안주가 없다.) 아마도 이런 습관이 차곡차곡 쌓여서 뱃살로 누적되었던 것 같다. 많이 먹지도 않는데 살이 찐다고 억울해했지만 칼로리를 계산해 보면 정확하게 먹은 만큼 살이 쪘던 것이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스트레스로 술을 먹을 일이 없어졌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좋아하지도 않는 치킨이나 과자 같은 것은 먹지 않게 되었고 이러한 칼로리 감소가 그대로 체중 감소로 이어졌던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면 활동량이 줄어서 살이 찔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살이 빠지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회사는 내게 백해무익한 존재였나 보다. 스트레스도 안겨주고, 병도 안겨주고, 덤으로 뱃살도 안겨주었던 회사를 훌훌 털어버리니 몸도 마음도 가볍다.
어렸을 때, 부모님도 선생님도 내게는 전문직이 적성에 맞을 거라고 하셨는데 그걸 무시하고 회사원이 되어서 그 고생을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