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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Jan 17. 2024

조각 맞추기

어렸을 때 테트리스 게임을 좋아했다. 친구들이 오락실에 갈 때도 나는 게임은 좋아하지 않는다며 혼자 집으로 가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테트리스 게임에는 푹 빠졌다. 가끔 하는 것으로는 성이 안 차서 집에 있던 컴퓨터에까지 게임을 설치했고 한 단계씩 레벨을 깨는 재미에 푹 빠져서 정말 열심히 게임을 했다. 여러 가지 모양의 도형을 맞추어서 직사각형을 만들고 그것들이 짠 하고 사라질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내가 시작한 테트리스 게임은 온 가족에게 전파되어서 곧 동생도 테트리스 게임에 빠졌고 얼마 후에는 엄마와 아버지까지 가담하셔서 가족끼리 재밌게 경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게임은 쳐다보지도 않던 내가 왜 그렇게 테트리스 게임에 빠졌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서로 다른 모양을 끼워 맞춰서 직사각형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그 후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이십 년 넘게 IT 업계에서 일했지만 테트리스 게임 말고는 다른 게임에 빠져 본 적은 없다. 남들이 재밌다고 하는 게임도 한두 번 해 보면 시들했다.




집에 무언가가 늘어져 있는 것을 싫어해서 뭐든지 바로바로 버리는 편인데 유독 화장품 용기 뚜껑을 깨끗하게 세척해서 모아 놓는 습관이 있다. 모든 용기 뚜껑을 다 모아 놓는 것은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유형의 뚜껑들만 모아 놓는다. 이렇게 뚜껑을 모아 놓는 이유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용기에 담아 있는 제품을 샀을 때 뚜껑을 교체하기 위함이다.

다양한 종류의 용기 뚜껑을 모아 놓은 나의 보물상자

용기 디자인에도 여러 가지 철학이 있겠지만 모든 디자인에는 실용성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화장품을 사다 보면 뚜껑 표면이 둥글둥글한 용기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뚜껑은 화장품을 처음 사용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거의 다 써서 남은 것들을 써야 할 때면 둥글둥글한 뚜껑이 매우 걸리적거린다. 로션을 거의 쓰고 나면 용기 아래에 남은 것까지 알뜰하게 쓰고 싶어서 용기를 거꾸로 세워 놓고 사용하는데 뚜껑 표면이 둥글둥글하면 거꾸로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용물을 거의 다 쓸 때쯤 모아 놓은 보물 상자를 꺼내서 표면이 평평한 뚜껑으로 교체한다. 이렇게 교체를 하고 나면 이제 거꾸로 세워놓아도 걱정이 없다. 이렇게 용기를 세워 놓고 사용하면 아래에 남아있던 내용물이 위로 모여서 일주일은 너끈히 쓸 용량이 나온다. 거꾸로 세워보지 않았더라면 그냥 버릴 뻔했는데 보물 상자 덕분에 일주일 분의 로션을 더 찾아낸 것이다.

둥글둥글한 뚜껑(왼쪽)을 평평한 뚜껑으로 교체한 모습(오른쪽)

용기 모양이나 사이즈가 여러 가지인데 어떻게 딱 맞는 사이즈의 뚜껑을 찾는지 궁금한가? 용기 디자인에도 표준 규격이 있기 때문에 서너 가지 사이즈의 뚜껑만 보관해 놓으면 쉽게 용기에 맞는 뚜껑을 찾을 수 있다.


모아 놓은 뚜껑은 샘플을 사용할 때도 능력을 발휘한다. 화장품을 사면 샘플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샘플 용기는 구멍이 큰 타입인 경우가 많다. 이런 뚜껑은 로션 타입에는 괜찮지만 스킨 류의 액체 용품을 사용할 때는 내용물이 확 쏟아져 나와서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비록 샘플이지만 며칠은 쓸 분량인데 이렇게 쏟아 버리는 것은 아까우니 모아 놓은 뚜껑 중에서 딱 맞는 뚜껑으로 교체해서 사용한다. 모아 놓은 용기가 없다면 여행용 용기를 하나 구매해서 그 뚜껑을 활용해도 된다.

구멍이 큰 타입의 뚜껑(왼쪽)을 스킨 타입에 맞는 뚜껑으로 교체한 모습(오른쪽)

그리고 펌프 타입의 용기도 내용물을 다 쓸 때쯤 뚜껑을 교체해서 사용한다. 용기 아랫부분에 내용물이 많이 남았지만 펌프 타입의 용기는 거꾸로 세워 놓을 수가 없다. 펌프로 내용물이 나오지 않을 때쯤 일반 뚜껑으로 교체해서 거꾸로 세워놓으면 남은 내용물을 한참 동안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다.

펌프형 뚜껑을 일반 뚜껑으로 교체한 모습

오늘도 거의 다 쓴 로션 통을 마음에 드는 뚜껑으로 교체해 놓다가 어릴 때 테트리스 게임을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맞추는 것을 좋아해서 지금도 이렇게 용기 뚜껑을 맞추고 있나 보다.




회사 생활을 할 때도 서로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조각들을 맞추다 보면 전체 그림이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일에는 인과 관계가 있는 법이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문제도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발생한 것이다. 원인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조각을 맞추어보자. 게임을 할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조각을 맞추다 보면 전혀 보이지 않던 해답이 보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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