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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Apr 12. 2024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만 더 친절하면 안 될까

며칠 전 좌석 버스를 탔는데 기사님과 손님 사이에 큰 소리가 났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손님 한 명이 "기사님, 자리가 있나요?"이라고 질문을 했고 기사님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 후로 그녀는 정확히 세 같은 질문을 큰소리로 반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로봇처럼 건조했고 지나치게 또랑또랑했다.


그녀가 타는 정류장이 자리가 없어서 간혹 승객을 테우지 못하고 지나치는 곳이었기 때문에 같은 질문을 몇 번씩 반복했던 걸까? 한두 번 물어보고 대답이 없으면 포기할 법도 한데 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그녀의 태도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입석 금지가 시행되어 버스에 좌석이 없으면 기사가 알려주는데 왜 저렇게 같은 질문을 계속하는 걸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 결국 기사가 짜증을 냈다.


그는 좌석이 없으면 문을 열지도 않았을 것이고 자리가 있으니 문을 연 건데 쓸데없이 질문을 하냐고 말다. 상황을 보아하니 버스 기사는 이미 첫 번째 물음에 대답을 했는데 그녀가 듣지 못하고 같은 질문을 계속했던 것 같았다. 자리가 있냐고 물어보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크고 또랑또랑해서 신경질적으로 들렸기 때문에 짜증을 내는 기사님 심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좌석이 있는지 확인하고 타겠다는 그녀의 의도도 이해가 되었다.

결국 그녀도, 기사도 서로 언성을 높이게 되었 말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그녀는 큰 소리로 투덜거리면서 버스를 탔고 버스 기사도 뭐라고 짜증을 냈지만 다행히 뒷자리에 앉은 내게는 들리지 않았다.


버스 기사와 그녀,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승객들 모두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 간의 언쟁이었지만 아침부터 이런 언쟁을 지켜것은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다.


교통 체증이 심한 서울에서 버스 운전을 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일 것이다. 더구나 입석 금지 제도 때문에 승객이 탈 때마다 좌석이 남아 있는지를 일일이 체크해야 하니 버스 기사의 직업 피로도는 꽤 높을 것 같다.


매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지친 몸을 끌고 나서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나도 이십 년 넘게 매일 출근을 하던 사람이니 직장인의 고된 삶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힘든 것은 그녀의 직장에서 혹은 그녀의 삶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신경질적인 말투로 버스 기사님을 다그치면 안 되었다.


버스 기사 또한 자신의 직장에서 손님의 질문에 대해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면 안 되었다. 자신의 대답을 그녀가 못 들었다면 한번 더 대답해 주면 되는 것 아니었을까? 두 사람 모두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분까지 상하게 만들면서 하루를 시작할 필요가 있었을까?


직장을 다닐 때  나는 스트레스로 날이 시퍼렇게 서 있었다. 화사에서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도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가 지속되었고 그러다 보니 별 것 아닌 남편의 말에, 아무것도 아닌 아들의 핀잔에도 매몰차게 쏘아붙이곤 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원인인데 남편의 별 것 아닌 말에 감정이 폭발해서 부부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은퇴하고 나서 감정의 평온을 찾게 된 후 나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돈을 벌려고 직장을 다닌 것인데 정작 소중한 가족에게 화를 내고 있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겨우 돈을 번다는 이유로 사춘기 아들을 보듬어주지 못했고 힘겨운 갱년기를 견디고 있던 남편을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우리가 서로를 조금만 더 배려해 주고 조금만 더 친절했더라면 그때 우리의 관계는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  


세상이 점점 더 살기 힘들고 각박해지는 것 같다. 아마도 지금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몇 년 전 나보다 훨씬 더 힘들 것 같다.

그러나 그럴수록 서로에 대한 배려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세상 그 어느 누구에게도 엉뚱한 상대에게 화풀이를 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상대방을 조금만 더 배려하고 예의를 갖춘다면 지금보다는 세상이 나아지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만 더 친절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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