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페지오 Apr 23. 2024

우리 모두 각자의 속도로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 모두 각자의 속도로 세상을 살아간다.


회사를 다닐 때 사람마다 업무를 하는 방식이 다르고 업무를 처리하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 같은 업무를 맡겼는데 어떤 사람은 한 시간도 안 돼서 일을 끝내고 빈둥거리는데 어떤 사람은 아직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업무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니었신속하게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대하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모든 사람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기차이를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은퇴를 하고 강의를 하게 되면서 대학교 동창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몇 년 전부터 모교에서 강의를 해왔고 초보인 내가 시간강사로 자리 잡도록 도와주었다.

같은 과목을 강의하면서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되니 그녀와 나의 차이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한 한기가 끝난 후 그녀와 나는 상대방의 강의도 들어보고 서로의 시험지를 교환해서 보았다. 상대방의 강의에서 배울 점을 찾아서 다음번 강의를 개선해 보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의 수업은 항상 늦게 끝난다. 가르쳐 줄 것이 너무 많아서 수업 시간 안에 다 끝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녀의 수업은 그녀의 성격처럼 유쾌하다. 강의 녹화 영상을 보다 보면 그녀가 가끔씩 던지는 농담에 학생들의 웃음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반면 나는 수업시간을 칼같이 맞춘다. 프리세일즈 시절부터 강연 시간을 지키는 것은 서로 간의 약속이라고 생각했고 그러한 신조 때문에 강의 시간은 웬만하면 지킨다.

그리고 나의 수업은 무미건조한 나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농담도 하지 않고(사실 나는 농담을 할 줄 모른다.) 필요한 내용만 꼭 집어 전달한다.


그녀의 시험지는 빈틈없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그리고 사지선다형 문제와 객관식 문항으로 가득했다. 공부를 하지 못한 학생들도 찍어서 어느 정도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 그녀의 마음이 보였다.     

나의 시험지는 주관식 문제로 채워져 있었고 문항 수도 훨씬 적었다. 공부를 하지 못한 학생들은 아예 백지로 내야 하는 나의 시험지는 내 첫인상처럼 차갑게 보였다.


우리는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다녔다. 대학 동창이라 나이와 성별도 같고 그 외에도 많은 공통점이 있다.

같은 시절에, 같은 과목을, 같은 학교에서, 같은 교수님께 배웠고 같은 교재로(세월이 지나 교재 에디션은 바뀌었지만) 같은 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데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대체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든 것일까. 


서로 비슷한 두 사람이 같은 일을 해석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회사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회사에서도 각자 업무를 해석하고 대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개인 별로 현저한 속도차가 존재했다. 완벽주의 성격 탓에 다른 사람이었으면 몇 시간 만에 끝냈을 일을 끙끙 대며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던 때가 많았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열심히 한 사람과 대충대충 한 사람의 차이가 두드러지지도 않는데 나는 왜 이렇게 느린 건지 속상해했던 적도 많았다.     


강의를 면서 사람들마다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대하는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그녀와 나의 강의가 다른 것처럼 그녀와 내가 세상을 마주하는 속도 역시 다를 것이다.




이번 학기 나의 클래스에는 장애 학생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시각 장애인이고 한 명은 청각 장애인이다. 장애 유형이 다르니 강사로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꽤 많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서는 모든 강의 자료가 전자 문서 형태로 제공되어야 하고 청각 장애인을 위해서는 학생에게 나의 입 모양이 잘 보이도록 하고 너무 빠르게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장애 학생을 처음 가르쳐서 어려운 점도 많지만 나는 그들이 대견하다. 장애를 극복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꿈을 키우고 있는 그들이 내 후배라는 것아 자랑스럽다. 들만의 속도를 존중하면서 수업을 잘 따라올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마음 써주고 있는데 나의 마음이 닿고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모두 각자의 속도가 있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해 준다면 우리 모두 잘 어울려서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서로에 대한 배려는 기대조차 할 수 없었던 진흙탕 같았던 회사 생활이 생각나서 왠지 서글퍼진다.




성적 처리가 끝난 후 마지막 수업을 했다. 마지막 수업은 출석 체크는 하지 않고 성적에 대한 이의가 있거나 기말고사 시험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학생들과 1:1 면담을 위해 하는 수업이다. 중간고사를 본 이후에는 대부분 자신의 성적을 예상할 수 있고 다른 시험 때문에 바쁜 탓인지 마지막 수업에는 10% 정도의 학생들만 왔었다. 그런데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에 장애 학생이 왔다. 불편한 몸으로 학기 내내 한 번도 결석하지 않는 것도 대견한데 출석 체크를 하지 않는 수업까지 온 그녀에게 감동했다. 그리고 그녀가 한 학기 동안 감사했다며 그녀가 나를 안아주고 돌아갔다. 그녀가 꼭 꿈을 이루기 바란다고 말하고 나도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만 더 친절하면 안 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