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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Sep 05. 2023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얼음 하나 넣어 주세요

나는 따뜻한 커피를 좋아한다. 펄펄 끓는 한여름에도 꿋꿋하게 따뜻한 아메리카노나 따뜻한 라테를 주문한다. 개인 취향이지만 따뜻한 커피를 마셔야 커피를 마신 것 같고 아이스커피는 그저 음료수 같기 때문이다.  


유난히 더웠던 8월의 어느 날, 카페에 들어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여름에는 아무도 따뜻한 커피를 마시지 않는지 점원이 따뜻한 음료를 주문한 것이 맞는지 한번 더 확인했다.


기다리던 커피를 받아 들고 자리에 가서 한 모금 마셨는데 커피가 너무 뜨거워서 입 안을 다 데일 뻔했다.

아뿔싸. 얼음을 넣어달라는 것을 깜빡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페에서 아메리키노를 주문할 때마다 특이한 요청을 하나 주가한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하나 넣어주세요."

처음 가는 카페에서는 점원이 꼭 다시 되묻는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넣어달라고요?"


"네. 맞아요.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하나 넣어주세요. 감사합니다."라고 대답을 한 후 자리에 앉는다.


사실 내 취향대로 커피를 마시려면 물을 적게 넣은 핫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두 개 넣어달라고 주문을 해야 한다. 턱없이 뜨거운 아메리카노의 온도를 낮추려면 얼음 하나는 부족하다. 얼음 두 개를 넣으면 온도는 딱 맞춰지는데 커피가 싱거워지기 때문에 애초에 아메리카노를 만들 때 물을 조금 넣어야 한다.


그러나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하나 넣어 달라는 것도 매번 되물음을 당하는데 물을 적게 넣고 얼음을 두 개 넣어달라고 주문을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만 같다. 너무 복잡한 주문이라 아르바이트생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커피 취향은 포기하고 싱겁고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얼음을 하나 넣어서 온도는 낮추었으니 그래도 하나는 건졌다고 생각한다.




커피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온도는 82도라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카페에서는 90도 이상의, 입천장을 댈 정도로 아주 뜨거운 커피를 제공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뜨거운 커피를 선호해서 커피 머신의 온도가 92도 ~ 95도로 세팅되어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나는 보편적인 취향을 가지지 못했나 보다. 외국에서 커피를 마실 때는 대부분 적당한 온도에 제공되는 것을 보면 한국 사람들이 정말 뜨거운 커피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90도가 넘는 뜨거운 커피는 맛도 잘 안 나고 향도 나지 않는다. 물론 식을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만 성질이 급한 대한민국 사람들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적당한 온도가 된 커피를 마시려는 찰나 같이 온 사람이 음료를 다 마신 것 같은데 이만 가자고 한다.


물론 해결 방법은 있다. 드립 커피를 마시 된다. 드립 커피는 커피를 내리는 과정에서 물 온도가 떨어져서 그런지 대부분 적당한 온도로 서빙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드립 커피를 판매하지 않는 카페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드립 커피를 마실 여유가 없을 때도 다. 그럴 때마다 나는 뜨거운 아메리키노에 얼음을 하나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얼음 하나를 넣으면 조금 싱겁지만 적당한 온도의 커피를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지만 뜨거운 커피는 싫은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나 혼자인 걸까.

나는 왜 보통의 대한민국 사람들과 다른 걸까.

다른 사람들은 이 뜨거운 커피를 어떻게 마시는 걸까.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또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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