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언가에 중독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성격상 무언가를 쉽게 좋아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중독이 될 위험이 별로 없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 항상 무언가에 빠져 있던데 나는 취미도 없고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다. 심지어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어보면 한참을 생각해야 대답을 할 수 있는정도이다.
이런 내 성격이 싫어서 고치려 노력도 해 보았는데 책에서 무언가에 쉽게 중독되고 빠지는 것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문장을 보고 자기합리화를 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그것에 쉽게 빠지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는데 그 이유가 현실에서 즐거움이나 기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행위라고 하니 위안이 되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없고 무언가에 쉽게 빠지지도 못하는 내 성격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며 안도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걱정되는 중독이 하나 있다. 바로 카페인 중독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 없지만 커피는 좋아하는데 선천적으로 카페인에 약하다. 이십 대 중반에 처음으로 커피를 먹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커피를 마셨던 날, 심장 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하루 종일 가슴을 부여잡고 다녔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느라 피곤한 몸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먹기 시작했는데 카페인의 각성 효과가 너무 강력해서 커피를 마시면 불끈 힘이 쏟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그렇게 시작한 커피와의 인연이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덧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 일과가 시작되지 않은 것처럼느끼게되었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카페인 내성은 없어서 커피를 하루에 두 잔으로 철저히 제한하고 있다. 하루에 겨우 두 잔을 마시는데도 조금 늦은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기 때문에 너무 늦은 시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이렇게 카페인 탐닉과 의존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살고 있는데 가끔씩 커피를 더 찾게 되는 시기가 있다. 바로카페인 중독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이미 두 잔을 마셨는데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서 한 잔을 더 마시기도 하고 외부 미팅 때문에 할 수 없이 커피 세 잔을 마시기도 하는 날이 있는데 이런 날이 반복되면 내 몸이 카페인 중독 현상을 보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카페인 중독이 시작되면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아프고 커피를 마셔야 두통이 사라진다. 그리고 하루에 두 잔 마시던 커피의 양이 슬금슬금 늘어나서 세 잔, 어떤 날은 네 잔도 마시게 된다. 이렇게 커피 양이 자꾸 늘어나면 카페인의 각성 효과도 없어져서 커피를 마셔도 각성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카페인 중독의 기운이 느껴지면 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커피를 줄인다. 오후에도 커피를 찾는 나를 살살 달래면서 하루 두 잔으로 줄여가면 내 몸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느껴진다.
카페인 중독을 경험해 보니 아마 다른 것에 대한 중독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무언가에 빠지고 그러다가 그 몰입이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주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다시 헤어 나오고... 다른 사람들도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이 아닐지.
현대인들은 참 피곤하게 산다. 일도 육아도 열심히 해야 하고 남들에게 자랑할 취미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내고 있는 나는 그들이 도무지 이런 많은 것들을 어떻게 다 해내는지 알 수가 없는데 그들은 그 모든 것들을 다 해내면서 반짝반짝 웃고 있다. SNS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이런 것들을 모르고 지났을 텐데 무심코 남들의 피드를 보다가 의기소침해지곤 했다.
그런데 그들도 모두 중독된 것이 아닐까. 힘이 들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취미 생활을 하고, 일에 치여 허덕이면서도 퇴근해서 운동을 하러 헬스장으로 향하고, 속으론 울고 있으면서도 겉으론 웃으며 SNS에 올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닐까.
무언가에 중독되어야만 유지될 수 있는 우리들의 삶이 안타깝다. 우리는 왜 그렇게 바쁘게,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나서 보니 남에게 보여주는 삶은 중요한 것도 아니고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나를 구제할 수 있는 해결책은 내 마음속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