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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직장인

by 아르페지오

일 년 내내 코로나로 인해 외출도 어렵고 여행도 못 가는 삶이 연속되면서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다. 이전에는 직장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를 여행으로 풀곤 했다. 일 년에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가는 여행으로 직장 생활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느끼는 기쁨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의 추억으로 몇 개월을 버텨나가곤 했다.

그런데 이젠 그런 기쁨도 찾을 수가 없고 직장 스트레스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시대에 다른 직장인들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번 주 내내 말도 안 되는 고객 이슈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이번 달에 담당 어카운트가 바뀌면서 인수인계받은 고객사인데 이전부터 진행해오던 제품 연동 테스트가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을 전달받았다. 인수인계를 받고 고객과 통화를 해보니 6개월이나 테스트를 해왔으며 진전이 없어서 무척이나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이번 달 안에 연동 테스트를 끝내야 하는데 6개월째 진전이 없어 매우 급한 상황이었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전 히스토리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조차 들을 수 없었다. 이 고객을 담당했던 동료도 이전 작업 내용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서 테스트가 어디까지 이루어졌는지 잘못된 것은 없는지 하나하나 다시 짚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것들을 요청할 때마다 고객분의 짜증을 그대로 받아야 했다.


일주일 내내 이런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건지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말이 연동 테스트이지 우리 회사 제품 영역이 아니라 O사 제품과 우리 제품 간 인증이 제대로 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인데 내가 네트워크이나 통신 전문가가 아니기에 통신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단계별로 하나하나씩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서 고객사에 출입을 할 수 없는 상태라 모든 테스트를 원격으로 수행해야 하고 이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니 시간이 두배로 더 걸리고 진행 상황을 바로바로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며칠을 밤늦게까지 정신없이 이것저것 테스트를 하다 보니 대체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건지 회의가 들었다. 엄밀히 따지면 이러한 연동 테스트는 프리세일즈인 나의 업무도 아니고 나의 전문 영역도 아닌데 남의 제품 셋업 가이드를 공부하면서 멘땅에 헤딩하듯 구글을 찾아가며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답답하고 짜증도 났다.

아무리 봐도 이것은 O사 엔지니어가 봐줘야 하는 문제인데 O사에서는 자기 회사 제품에서는 에러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며 코빼기도 안 보였고 나는 모르는 회사 제품의 설정 가이드까지 공부해가며 헤맬 수밖에 없었다. O사 제품에 설정을 하는 과정에서 에러가 나는데 자기 회사 제품 이슈가 아니라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며칠을 헤매고 별 짓을 다해도 진전이 없어 포기하려던 차에 혹시 나하고 O사 제품과 경쟁사와의 연동 매뉴얼을 찾아보았다. 매뉴얼을 보니 우리 회사 제품과의 연동 매뉴얼에서는 빠진 내용들이 보였고 고객분에게 다른 회사 제품과 연동할 때는 이런 것들을 적용하도록 되어 있으니 우리 제품에도 적용해보면 어떻겠냐고 이메일을 보냈다.


한 시간쯤 지나서 고객으로부터 연동이 제대로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O사의 매뉴얼에 우리 회사 제품과 연동하는 설정 세팅의 일부분이 빠져있어서 에러가 났던 것인데 O사에서는 에러 메시지가 우리 회사 제품에서 나는 것이라고 떠밀어서 나는 일주일, 우리 회사의 다른 엔지니어는 6개월이나 고생을 했던 것이었다. 기가 막히고 억울했지만 한 마디 사과조차 들을 수 없었고 문제는 해결되었다.


원격으로 테스트를 했기 때문에 O사 엔지니어와 만난 적도 없고 서로 이메일만 주고받았지만 본인 회사의 제품 매뉴얼만 자세히 검토해줬더라면 6개월이나 시간을 낭비하진 않았을 텐데 그분의 태도가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오후 4시에 고객이 보낸 최종 결과 보고서를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객사 프로젝트가 6개월이나 지연된 책임을 고스란히 지게 되었을 텐데...

원격으로 일을 해야 하고 이메일로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일이 많으니 서로를 조금만 더 배려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상대방의 입장에서 조금만 더 생각해줬더라면 이런 문제를 6개월이나 끌지는 않았을 텐데...


그리고 요즘 브런치에서 남들의 퇴사 일기만 검색해서 읽고 있는 내가 직장생활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도 못 가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도 못 가는데 일주일 내내 쌓인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하면 할수록 직장생활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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