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내내 친정 엄마와 함께 살았다. 맞벌이였기 때문에 친정 엄마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고 맏딸인 내가 친정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합가를 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나도 은퇴를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친정 엄마를 모시고 산다. 나이 드신 엄마를 혼자 계시게 할 수도 없고 이제 와서 엄마 집을 따로 마련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 입장에서는 아이도 다 컸는데 장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불편하고 어려울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서로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었다. 남편과 나는 회사에서 밤늦게 집에 들어왔고 집안일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친정 엄마가 아이도 키워주시고 집안 일도 맡아서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할머니의 영역이 불분명해졌다. 아이는 학교를 갔다가 학원에 가서 저녁 7시쯤 집에 들어오니 할머니가 할 일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할머니는 자꾸 밖으로 나가시기 시작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집에 왔을 때 간식만 챙겨주셨으면 했지만 아이는 텅 빈 집에 혼자 있다가 학원 버스를 타야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지만 내 눈에는 아직 어린아이인데, 아직 챙김이 필요한 나이인데 외할머니는 이제 다 컸다며 괜찮다고 하셨다.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유식도 정성껏 집에서 만들여 먹여서 키웠던 아이가 점점 인스턴트식품과 친해져 갔다. 과자도 집에서 만들어 먹였던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서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황혼 육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만끽하기 시작하신 외할머니는 점점 더 바빠졌다. 백화점 문화센터와 각종 동네행사까지 다 참석하시면서 주말에도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열 살까지 키워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 것이라고 마음을 다독이며 주말만이라도 건강한 음식을 먹이려고 노력했다. 내가 바랬던 것은 평일 오후 4시에 아이 간식만 챙겨주셨으면 하는 것이었지만 엄마에게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속상하고 애가 탔지만 직장을 다니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친정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그래도 이만큼 키워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이 범벅이 되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서운했다 고마웠다를 반복하면서 시간이 흘렀고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되었다.
그런데 아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만 남아있나 보다. 아들은 유난히 외할머니만 챙긴다. 집에 들어와서도 외할머니 방에 들어가서 저녁은 뭘 드셨는지 오늘 하루 뭘 하고 지내셨는지 물어보고 제 방으로 들어간다. 엄마에게는 "다녀왔습니다." 한마디가 끝이다. 몇 년 전에는 일본 여행을 가면서 외할머니를 모시고 다녀왔다. 엄마에게는 같이 가자는 말 한마디조차 없었다.
이런 게 서운하면 안 되는데 이상하게 서운하다. 나도 아이가 아플 때 눈물로 밤을 지새웠고 아무리 늦게 집에 오더라도 아이를 데리고 잤다. 엄마를 유독 좋아하던 아들은 엄마랑 같이 자겠다며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기다리는 날도 수두룩했다. 그런 기억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5월이라 그런가, 오늘은 아들의 유난스러운 외할머니 사랑이 이상하게 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