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은 4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혼자 지내고 계시다. 홀로 계시는 어머님이 걱정되어 찾아뵐 때마다 집안의 물건이 하나씩 줄어든 것을 느낀다. 아버님도 안 계신 큰 집에서 어머님은 끊임없이 물건을 정리하신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 유품을 너무 빨리 정리하시길래 걱정을 했다. 슬픔이 지나쳐서 저러시는 것인지, 갑자기 우울증이라도 오면 어쩌나 불안했다. 그러나 걱정은 잠깐이었다. 어머님은 집 안의 다른 물건들까지 정리하기 시작하셨다. 입지 않은 옷들을 정리하셨다며 보여주신 옷장은 휑했다.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서 과연 저만큼의 옷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이 될 만큼. 텅 빈 옷장을 보면서 너무 심하게 정리를 하신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어머님의 집이고 어머님의 물건이니 내가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시댁에 갈 때마다 가끔씩 이 집이 사람이 사는 집이 맞을까 생각한다. 거실에는 TV와 소파만 덩그러니 있고 나와있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 안방에도 침대와 옷장 이외에는 아무런 물건이 없다. 다른 방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들들이 쓰던 물건들도 다 버리셨고 한국에 올 때마다 몇 개월씩 머물다 가던 큰 이들과 큰며느리의 물건도 싹 버리셨다. 지저분하게 쌓여 있는 것도 아니고 옷장이나 창고에 들어있는 것들이라 천천히 정리해도 될 것 같은데 물건을 싹 비워버린 어머님을 보면서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어머님의 정리벽은 최근에 생긴 일이 아니다. 어머님은 둘째 아들인 나의 남편이 결혼해서 분가하자마자 아들 방에 있던 물건들을 모두 정리하셨다. 집에 남겨 두고 온 물건을 처분하신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물건을 모두 버리셨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크게 화를 냈다. 옷이나 책 같은 것들은 버려도 되는 것이었는데 남편이 아끼던 수백만짜리 오디오를 고물상에 가져다주셨다는 말을 듣고 남편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오디오는 살 때보다 값이 갑절은 올라서 고가에 중고로 거래되고 있는 물건이었다. 어머님 덕분에 뜻밖에 횡재를 하였을 고물상 아저씨 얼굴 떠올리면서 우리는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우리 엄마는 결혼한 딸네 집에 산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신다. 겨우 스무 평 남짓한 딸의 신혼집에 들어오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짐을 그대로 다 가지고 오셨다. 창고인지 집인지 모를 정도로 어수선한 집에서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물건을 좀 정리하라고 말하면 딸 눈치를 더 보게 될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의 성격은 바뀌지 않았다. 3대가 같이 모여서 한 집에 사니 서로의 공간이 얼마 되지 않는데도 자꾸만 무언가를 사서 집에 쌓아두셨다. 마트에서 싸구려 그릇들을 사 모으면서 원래 있던 그릇들도 버리지 않았다. 취향에 맞지도 않는 엄마의 그릇 때문에 주방 찬장이 무너질 것 같아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편은 주방에서 그릇을 꺼낼 때마다 짜증을 낸다. 엄마 눈치를 보다가 남편 눈치도 보다가 중간에 끼여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어느새 오십이 넘었다.
우리 집 신발장의 절반은 엄마의 신발이 채우고 있다. 나는 팔순이 다 된 노인에게 왜 그렇게 많은 신발이 필요한지 알 수가 없다. 남편은 신발장에 자리가 없다면서 운동화 두 개, 구두 한 개로 사계절을 버틴다. 엄마의 옷은 자신의 방에 있는 붙박이 장을 채우고 우리가 공용으로 쓰고 있는 옷장까지 채우고 있다. 옷장에 들어가지 못한 옷들은 베란다 창고에까지 쌓여 있다. 창고에 들어있거나 옷장에 빽빽하게 걸려 있는 옷들을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입으실까? 옷이 저렇게 많은데 대체 어디에 어떤 옷이 있는지 기억하고 계실까? 비싸고 좋은 옷이라면 억지로라도 이해할 것 같은데 하나같이 싸구려 옷들이다. 대체 엄마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나 간격이 큰 두 집을 오가면서 나는 혼란에 빠진다.
나는 어떻게 나이가 들어야 할까? 어머님처럼 물건을 쌓아두지 못하고 실수로 중요한 물건까지 버리는 것이 맞을까? 우리 엄마처럼 모든 물건을 쌓아두어서 집을 창고로 만드는 것이 맞을까? 중도를 지키고 싶은데 어느 한쪽에 치우 지지 않고 중도를 지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