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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들 3

by 아르페지오

ISFJ 엄마가 ENTP 아들을 키우는 과정은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스물다섯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엄마가 되었으니 경험도 부족했고 아들과 성향도 다르니 자꾸만 부딪쳤다. 아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모자간의 갈등은 더 심해졌고 결국 엄마는 아빠에게 훈육을 넘겼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아들은 성인이 되었고 다 큰 아들과 싸우지 않고 잘 지내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다 보니 여전히 충돌이 발생한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요즘 아들은 독립하려고 원룸을 알아보고 있다. 출퇴근 거리를 고려하면 선택지가 별로 많지 않고 물가가 비싸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발품을 팔아야 하는 눈치이다. 처음에는 혼자 알아서 해보겠다고 하더니 며칠 전에 갑자기 SOS를 했다. 혼자 집을 보려니 어려운 점이 많았는지 집을 보러 갈 때 같이 가달라고 했다. 오랜만의 청이라 흔쾌히 수락하고 같이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러다가 결국 쌓인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독립할 기분에 들뜬 아들은 반백 살 엄마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고 하루에 7,8개씩 집을 보러 다녔다. 물론 집을 보러 갈 때마다 휴가를 낼 수는 없으니 하루에 몰아서 봐야 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겨우 아침 한 끼 겨우 먹고 해가 질 때까지 이 동네 저 동네로 왔다 갔다 하는 일정은 오십이 넘은 엄마에게 버거웠다. 좀 쉬었다 가자고 말해도 커피 한 잔 마시고 잠깐 숨을 돌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금토일 3일 내내 강행군을 하다가 일요일 저녁에 아들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를 전혀 배려하지도 않고 부려먹기만 할 거면 더 이상 도와주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1절만 하고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감정이 폭발한 ISFJ 엄마는 그동안 쌓인 서운함을 다 퍼부어버렸다.


ENTP 아들은 감정을 쌓아놓았다가 한꺼번에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감정적으로 격해진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아들을 키우면서 이미 경험하고 터득하였는데 이번에도 나는 아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말을 뱉는 순간부터 후회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한번 물꼬를 트고 나니 그동안 쌓였던 서운함이 술술 쏟아져 나왔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하고 나니 후련하긴 했지만 아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면 안 되는데 또 실수를 한 것이다.


아들 키우는 것은 참 어렵다. 딸은 없고 아들 하나뿐이라 잘 모르겠지만 딸은 같은 여자로서 이해가 되는 면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아들은 이해도 되지 않고 예측도 되지 않으니 훈육도 교육도 모두 어럽기만 했다. 서로 부대끼며 힘겹게 사춘기를 넘겼고 이제 성인이 된 아들과 말다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도와준다고 흔쾌히 나섰다가 싸우고 나니 마음이 좋지 않다.


왜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겠다.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브런치에 기록을 남긴다.


그나저나 이렇게나 큰 도시에서 방 한 칸 구하는 것이 이다지도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아들은 얼른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서 독립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나도 길고 긴 육아(?)에서 해방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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