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딸 5
결국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다.
어느덧 엄마를 모시고 산 세월이 28년이 되어간다. 결혼 전에도 부모님과 함께 살았으니 결혼해서 남편과 단둘이 살았던 1년을 제외하고 오십 년 넘게 엄마와 동고동락을 한 셈이다. 3대가 한집에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맞벌이를 하는 우리를 위해 엄마가 육아와 살림을 전담해 주셨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조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내가 은퇴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신의 역할을 잃어버린 엄마는 집 안에서 가만히 계실지 못했다. 내가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면 괜히 옆에 와서 돕겠다며 그릇을 깨거나 쓰고 있는 식기를 깨끗이 씻어서 치워버리시곤 했다. 정신없이 요리를 하다가 쓰고 있던 주걱이나 그릇이 없어진 것을 보면 짜증이 났다. 도와주시려고 한 행동임을 알면서도 부아가 났다. 감정이 이리 뛰었다 저리 뛰는 갱년기까지 더해져서 엄마에게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
젊을 때는 바빠서 집안일엔 신경도 쓰지 않던 남편도 가사를 돕기 시작하니 엄마와 부딪치기 시작했다. 깔끔한 남편은 엄마가 청소를 한 곳을 매번 다시 쓸고 닦았다. 나이가 들어 눈이 어두워진 엄마는 청소를 한 후에도 집안 여기저기에 머리카락이나 먼지를 남겨두었다. 꼼꼼한 남편은 조용히 집안을 다시 쓸고 닦았다. 될 수 있으면 장모님이 안 보실 때 청소하려고 신경을 썼지만 어떻게 알아채신 모양이었다.
집안에서 자신이 할 일이 사라져 버려서 불안해진 엄마는 자꾸만 일을 만들어냈다. 걸핏하면 자동차 접촉 사고를 내서 딸을 불러냈고 날이 추운데도 무리하게 산책을 하셔서 앓아누우셨다. 갱년기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만도 버거운 딸은 점점 엄마를 피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내 몸만 챙기기도 힘든데 엄마까지 나를 힘들게 하니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이십 대부터 부모를 부양하고 간병하느라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살았는데 오십이 넘어서 몸이 아픈데도 편하게 쉴 수 없으니 화가 나고 부아가 치밀었다.
엄마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결국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다. 갑자기 남편이 수술을 해서 간병을 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었는데 엄마가 또 접촉 사고를 낸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모진 말을 퍼붓고 집을 나왔다. 여든이 다 됐는데 제발 운전은 그만하시라고 했더니 보험료를 자신이 내고 운전을 계속하시겠단다. 보험료 낼 돈은 내가 주는 돈이 아닌가? 그럼 이제 용돈도 안 드릴 테니 알아서 하시라고, 해준 것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끝없이 요구만 하냐고 맺혔던 감정을 퍼부었다.
삼십 년 가까이 모셨으면 자식 도리를 할 만큼 한 것 아닌가? 끊임없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엄마가 이젠 버겁고 힘들다. 풀리지 않는 인생의 숙제를 푸느라 지천명의 나이에도 여전히 방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