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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듣기 싫었던 말

by 아르페지오

엄마가 이사를 간 후 과거를 되돌아보고 있다.


엄마가 하는 말 중에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은 '평생 이렇게 살았는데'였다.


엄마는 늘 소화가 안 돼서 고생하셨다. 아무래도 커피가 문제인 것 같아서 커피를 좀 줄여보라고 했더니 엄마는 '평생 이렇게 살았는데'라고 했다.


엄마는 매일 커피를 다섯 잔도 넘게 드셨다. 그러고는 소화가 안 돼서 꺽꺽 소리를 내며 괴로워하시곤 했다. 걱정이 되어서 커피를 좀 줄여보라고 말한 것인데 내게 돌아온 답은 '평생 이렇게 살았는데'였다. 그 후로 엄마에게 무언가를 권유할 때마다 망설여졌다.


'평생 이렇게 살았는데'라는 말은 내 입을 굳게 닫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 말은 딸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팔십 평생 그렇게 살았으니 앞으로도 계속 내식대로 살겠다는 말이었다. 그런 엄마한테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엄마가 이사를 간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다. 나도 먼저 연락하고 싶지는 않아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낸다. 엄마도, 내 동생도 참 대단하다. 미안하다고 한번 연락할 법도 한데 그들의 마음을 도무지 모르겠다.


우리 가족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엄마를 내쫓으면서 이대로 가족의 연이 끊길 수도 있다 생각했으니 나도 이제 조용히 나의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왜 친정 엄마를 만나면 짜증부터 내게 될까?'라는 주제로 흘러들었다. 네 명의 친구 모두가 연로하신 친정 엄마를 챙기면서 지내는데 엄마가 걱정돼서 친정에 가면 이상하게 엄마를 보자마자 짜증부터 내게 된다고 했다. 친구들은 그런 자신이 싫지만 매번 같은 행동이 반복된다며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28년이나 엄마와 같이 살았던 나는 짜증을 낼 이유가 충분했다. 엄마는 내게 짐이었다. 스물다섯 살부터 부모를 책임져야 했고 좁은 집에서 3대가 같이 살았으니 매일매일이 지옥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내게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고 내 눈치를 보지 않았다. 내가 아들이었으면 달랐을 것이란 생각이 나를 더 씁쓸하게 했다. 성격과 취향이 다른 엄마와 딸은 매일같이 부딪쳤고 매일같이 충돌했다. 그러나 언제나 참아야 하는 사람은 나였다.


그런데 친구들은 겨우 일주일, 혹은 이주일에 한번 친정 엄마를 보러 가는데 짜증부터 내게 된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가만히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 엄마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이 속상해서, 왜 이렇게 늙어버렸는지 화가 나서 짜증을 내게 되는 걸까? 아니면 엄마의 모습에서 이십 년 후, 삼십 년 후 내 모습을 보게 되어서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게 되는 걸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범한 부모에게도, 적어도 자식에게 빚더미를 안기지 않은 부모에게도 짜증이 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마도 늙어버린 엄마에게서 내가 정말 닮고 싶지 않았던 모습들이 보여서, 나에게도 이미 그것들이 유전되었음을 알게 되어서 짜증을 내게 되는 것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엄마에게서 내가 정말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 투영될 때 화가 났다. 그것들이 엄마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게 돼서 더 짜증이 났다.


나는 매일 아침 엄마를 볼 때마다 짜증이 났다. 그리고 동시에 죄책감을 느꼈다. 친구들 말을 듣고 나니 내가 그렇게 못된 딸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위안이 된다.


빨리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다. 시간이 흘러서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고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아서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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