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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세일즈와 뮤지션

by 아르페지오

나의 어린 시절 꿈은 기타리스트였다. 중학교 2학년 때 Stairway to Heaven이라는 곡을 듣고 Rock 음악에 빠졌다. 용돈만 생기면 원판을 사서 모았다. 80년대에 Rock 음악을 들었던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그 시절에는 금지곡이 많아서 원판을 사야 앨범의 모든 곡을 들을 수 있었다. 학교 점심시간에 반 아이들을 위해 희귀한 음반들을 틀어 주기도 했다.


Rock 음악을 열심히 듣다가 전자 기타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중학생이 전자기타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니 독학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전자기타를 배우려면 시내까지 나가야 했다. 궁여지책으로 동네 상가에서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같은 기 타니까 일단 배워놓으면 나중에 전자기타를 칠 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클래식 기타가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중학교 내내 열심히 쳤다. 그러다 보니 장기자랑이나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불려 가서 연주를 하게 되었다. 다들 피아노만 치는데 기타 연주를 하고 더군다나 여학생이 기타를 치니 신기해서인지 여기저기서 불러주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도 음악을 하겠다는 꿈은 꺾이지 않았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기타를 쳤고 스페인 왕립학교에 가서 기타를 전공하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기타 연습을 하던 중 손목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져서 병원에 갔더니 선천적으로 손목에 이상이 있어서 손목을 꺾는 자세를 오래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손목에 남들에게는 없는 작은 뼈가 있어서 90도 이상 꺾으면 안 된다는 의사의 진단은 내게 기타를 포기하라는 것과 같았다. 몇 달 방황을 하다가 기타 전공을 못하더라도 대학에 가서 밴드를 하는 것으로 진로를 수정하고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자 기타는 클래식 기타에 비해 손목에 덜 무리가 간다고 하고 취미로 음악을 하는 정도는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음악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친구 덕분이었다. 내 옆에서 나의 꿈을 지켜주고 응원해 주던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녀는 노래를 정말 잘했고 샤우팅은 더 잘했다. 그리고 그녀의 꿈은 여성 록커였다. 음악 취향까지 비슷했던 우리는 같이 음악을 할 미래를 꿈꾸면서 힘든 고3의 시간을 버텼다.


그런데 내 친구가 대학에 떨어졌다. 나는 대학생이 되고 그녀는 재수를 하게 되니 만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되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친구의 엄마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내 친구가 집을 나갔다고 혹시 연락이 오면 꼭 알려달라고 하셨다. 같이 가던 카페도 가보고 LP를 사러 다니던 레코드 가게에도 가보고 그녀가 갈만한 곳은 모두 가 보았지만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삐삐도 핸드폰도 SNS도 없던 시절이라 그녀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갑자기 함께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던 친구가 사라진 후 나의 철없던 시절의 꿈도 함께 사그라져 버렸다. 가끔씩 TV에서 멋진 밴드를 볼 때마다 아련한 꿈을 떠올리곤 했지만 모두 잊고 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프리세일즈가 되었다.


이십 년 넘게 프리세일즈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프리세일즈가 뮤지션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프리세일즈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가 담당하고 있는 제품은 기업용 제품이 아니고 일반 사용자용 제품이라 대규모 콘퍼런스를 많이 한다. 콘퍼런스에서 프리세일즈는 제품 신기능을 시연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밤을 새워 무대를 준비하고 발표를 마친 후 무대 위에서 청중들의 박수와 환호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뛰었다.


IT 기업의 콘퍼런스는 별다를 것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 그러나 기업의 콘퍼런스를 준비하기 위해 직원과 스태프들은 많은 노력을 한다. 콘퍼런스의 스토리 라인을 짜고 스토리에 맞는 업계 연사를 섭외하고 오프닝, 엔딩 영상과 음악도 선곡한다. 소개하는 제품과 참석자들의 취향에 맞춰서 무대를 꾸미는 것도 마케팅 팀과 프리세일즈 팀의 업무이다. 우리 회사는 미국 회사라서 본사에서 제공하는 에셋들이 있긴 하지만 국내 실정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스테이지를 꾸미고 콘퍼런스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는 오로지 우리들의 몫이었다.


이십여 년 동안 프리세일즈로 일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콘퍼런스를 해봤는데 2000년 초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는 호텔이나 대규모 홀에서 하는 전형적인 콘퍼런스보다 콘서트나 파티 개념의 콘퍼런스가 유행이었다. 우리 회사는 경희대 평화의 전당, 세빛섬 콘퍼런스홀, 청담동 드레스 가든, Yes24 라이브홀 등과 같은 공연장을 빌려서 밴드도 초대하고 핑거 푸드도 준비해서 참석자들이 즐길 수 있는 흥겨운 파티 혹은 콘서트 분위기의 콘퍼런스를 많이 했다. 혁신적이라는 제품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동종 업계에서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도 콘퍼런스에서 많이 해보았다.

야외에서 하는 파티 분위기로 진행했던 콘퍼런스, 밴드와 함께 하는 콘퍼런스

나는 그 시절 콘퍼런스를 준비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마케팅 팀장과 밤이 늦은 줄도 모르며 행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도 좋았고 서로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를 제안하면서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던 시간도 좋았다. 열심히 준비한 무대에 올라서서 수천 명 앞에서 강연을 할 때면 마치 공연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테이프로 얼굴에 마이크를 붙이고, 무대에 올라서 제품의 신기능을 보여주고, 대형 스크린에 내 모습이 나오고, 청중의 함성과 박수를 받으면 마치 내가 스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간혹 본사에서 전문 연사가 와서 스테이지에 올라가지 못하는 날이면 안달이 났다. "영어 강연을 통역으로 진행하는 것보다 내가 훨씬 더 잘할 수 있는데"하고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비로소 알았다. 내가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니 뮤지션과 프리세일즈는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스테이지에 서고

스테이지를 디자인하고

공연/강연의 스토리를 짜고

청중 앞에서 나의 곡/제품을 어떻게 하면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뮤지션이 뮤직 비디오를 만드는 것처럼 프리세일즈는 블루 스크린 앞에서 제품 소개 영상을 제작한다.

뮤지션이 지방 투어를 하는 것처럼 프리세일즈는 지방 로드쇼를 한다. 지방 로드쇼를 할 때면 무대 장치, 음향 등을 책임지는 수많은 스태프들과 함께 투어를 한다.


생각해 보니 나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은 이루었다.


이제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행사는 거의 없어지는 추세이다. 요즘은 거의 온라인으로 행사를 진행하거나 스튜디오에서 녹화를 해서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은퇴하기 전에 한번 더 오프라인 행사를 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붓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가장 최근에 코엑스에서 했던 콘퍼런스가 생각난다. 그때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더 열심히 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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