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장은 글이 무지 깁니다. 그렇다고 내용을 줄이기도 그렇고 하여, 글 전체를 '나' 자신이 읽기 쉽도록 문장과 맥락을 수정하였습니다. 어차피 글 전체를 훑어 보아야 내용이 파악되기에 그렇습니다. 제가 달아 놓은 코멘트적 글은 일어나는 생각대로 쓴 것이며, 나중에 따로 독립 글로 정리할 생각입니다. 지금은 그냥 그대로 둡니다.
19장도 글이 많이 길던데... ㅎ...고민됩니다~^^;;;
<디오니소스 예술 - 실존의 영원한 쾌락은 현상의 배후에서 찾아야 한다>
디오니소스 예술은 우리에게 실존의 영원한 쾌락을 납득시키려 한다. 이 실존의 영원한 쾌락은 ‘현상 속’에서가 아니라, ‘현상의 배후’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생성하는 모든 것’이 ‘고통스러운 몰락’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개별 실존의 공포 속’을 들여다보지만, 그것에 너무 놀라서 ‘마비’ 되어서는 안 된다.
‘형이상학적 위로’가 당분간 ‘변화하는 형상들’의 덧없는 세상사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해 준다. 우리 자신은 진정으로 ‘짧은 순간’ 동안, ‘원초적 존재 자체’가 된다. 그 존재의 억제하기 어려운 ‘실존에 대한 탐욕과 의욕’을 느낀다.
삶 속으로 몰려들고 부딪치는 수없이 많은 ‘실존 형식들’을 보면서, “세계 의지”의 넘쳐나는 ‘생산성’을 접하면서, 우리는 투쟁, 고통, 현상의 파괴가 “필연적인 것”같다고 생각한다. * 이 '세계 의지'가 음악성이다.
실존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원초적 욕망”과 ‘하나’가 되는 순간, “디오나소스적 황홀경” 속에서 이 ‘욕망’은 파괴될 수 없다. 또한 ‘영원하다는 것’을 “예감”하는 순간, 이 고통의 사나운 ‘가시’가 우리를 찌른다.
두려움과 동정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하게 사는 자들’이다.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것”으로서 우리는, “하나의 살아 있는 것”의 ‘생식 욕구’와 “하나”로 용해되어 있다.
* 사진은 Hossein zare
<그리스의 비극 생성사/ 고대철학자와 고대 시인들도 ‘비극적 신화’의 의미를 개념으로 명확하게 통찰하지 못했다>
그리스 비극의 생성사는 ‘그리스인의 비극적 예술 작품’이 “음악 정신”에서 “탄생했음”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합창”의 ‘원초적’이고 ‘놀라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고 믿는다.
반면에 이와 동시에, 앞서 제시한 “비극적 신화의 의미”를 그리스 철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스 시인’들도 ‘개념’으로 명확하게 ‘통찰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백해야만 한다.
“그들의 주인공들이 하는 말은 행동보다 더 피상적이다.” 신화는 “말" 속에서는 적절하게 구현되지 못한다.
‘장면의 구조’와 ‘구체적인 이미지들’은 시인이 말과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보다, 한층 더 ‘깊은 지혜’를 드러낸다.* 사람의 그때의 말보다 그때의 무의식적 행동이나 표정이 더 많은 많은 것을 알려줄 때가 많다. 우리는 그러한 제스처와 표정으로 분위기를 감지하고, 그것과 교감한다. 그것으로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셰익스피어에게서도 관찰할 수 있다. 예컨대 이와 유사한 의미에서 ‘햄릿의 대화’는 “행동보다 더 피상적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햄릿론은, 그의 말로서가 아니라, ‘극 전체에 대한 깊은 고찰과 개괄’을 통해 얻어졌다.
우리는 ‘그리스 비극’을 단지 ‘언어 연극’으로서만 접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신화와 말 사이의 불일치 때문에 그리스 비극이 실제보다 더 단순하고 무의미하다고 잘못 생각하기 쉽다. 이와 관련하여 고대인들의 증명에 따르면, 그리스 비극이 실제로 가졌을 그런 영향보다 더 ‘피상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즉, 그리스 비극이 실제로 끼쳤을 영향보다 훨씬 적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 그러나 실체로 그리스 비극은 더 깊은 영향을 미쳤고,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고대 자연철학자들의 발견이나 또는 시인들에게도 지혜의 깊이는 모두 그리스 비극을 통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들의 자연 철학적 영감이나 시의 내용을 보면 그러하다.
이것은 ‘언어의 시인’이 실패한 일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신화”를 ‘최고의 정신과 이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을, ‘창조적인 음악가’는 어는 순간에든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언어의 시인들’이 너무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 아닌가?
* 사진은 Hossein zare
<음악적 효과의 강한 힘을 학문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로써 비극이 소유한 커다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진정한 비극이 소유하고 있을 위안,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위안’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음악적 효과”의 ‘강한 힘’을 “학문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 ‘강력한 힘’도 단지 ‘우리가 그리스인일 경우’에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표현은 상징적 표현이다. 우리가 ‘정신의 그리스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창조적인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 현대인은, 우리에게 낯익고 풍부한 음악에 훨씬 더 익숙하다. 그래서 현대인이 고대음악을 듣게 되면, “음악적 천재가 청년 시절 수줍은 힘의 감정에 맞춰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 순수하게 느껴진다는 것. 즉 순수하지만 뭔가 노회함은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집트의 사제들이 말했듯이, 그리스인은 ‘영원한 아이’고, 비극적 예술에서도 “아이”에 불과하다. “그들”은 ‘고상한 장난감’이 자신들의 손에서 생겨나, 장차 ‘파괴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 불과한 것’이다. * 그리스인이 영원한 아이라는 의미는 그만큼 순수하다는 의미이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그 순간의 놀이에 몰입한다. 아이에게는 그 순간의 놀이만이 최고의 즐거움이다. 그리스인들에게는 그런 아이적 특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아이는 자신이 몰입한 그 놀이이자 장난감이 장차 파괴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이는 그 장난감이 파괴되고 잊힐 것이라는 것을 그 순간에 알지 못한다. 그런 자각도 없다. 이 부분은 상징적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스인은 ‘비극’에 몰입하였으나, 장차 비극은 파괴되어 갔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유년의 놀이적 기억들은 점점 묻힌다. 그리스 문화가 성년이 되고 노년을 거치면서 유년의 그리스를 잊어버린 것이다.
* 우리도 아이였을 때, 그때의 소꿉놀이가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그것은 어느 순간에 막을 내리고 망각되어 버렸다. 그리고 문득 그때의 기억이 비의지적으로 소환되면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충일감을 경험한다. 그리스 비극의 힘은 이와 같은 것은 의미일 것이다.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계시’에 이르고자 하는 ‘음악 정신의 투쟁’은 서정시의 ‘초기’부터 ‘아티케 비극’에 이르기까지 ‘계속 강해지다’가 갑자기, 다시 말해 ‘풍성한 만개滿開’의 단계를 어렵게 ‘쟁취’한 이후 곧 ‘꺾이고’ 만다. 그리고 이내 ‘그리스 예술’의 “표면”으로부터 사라진다. * 대체적으로 문화는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고 보인다. 오랜 시간 형성된 것이 어느 순간 응축되어 강한 힘을 내뿜고 풍성하게 피어난 후 갑자기 소멸하여 버린다. 고려의 ‘청자’처럼, 고려의 ‘차문화’처럼. 조선의 ‘분청도자기’처럼, 분청은 그리스의 소박성처럼, 어쩌면 소박성의 절정에 도달한 도자기였다고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순간에 소멸하였다. 이 분청의 기억과 예술성은 그 후로 많은 영감과 함께 어떤 즐거움과 웃음이 속에서부터 피어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어떤 자극과 같은 것이다. * 여기서 “표면”이란 ‘비현실의 가상 세계’를 의미한다. 즉 상상과 영감의 원천이 사라졌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산출 과정 역시 사라지게 된다. 그와 같은 예술은 더 이상 생성이 안 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다시 메커니즘을 학문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 “투쟁”에서 탄생한 ‘디오니소스 세계관’은 “비밀의식” 속에 생존해 있다. 멋지고 기이한 변종을 거듭하면서 ‘진지한 정신’을 멈추지 않고 매혹한다. 이 세계관이 언젠가 “신비스러운 심연”으로부터 솟아올라 “다시 예술”로 떠오르지 않을까?
< ‘비극을 파괴한 권력’은, ‘비극적 세계관의 예술적 재탄생’을 ‘방해’할 정도로 ‘강한 힘’을 지녔는가?>
우리가 씨름하는 질문은 “비극을 파괴한 권력”이 비극 및 비극적 세계관의 ‘예술적 재탄생’을 방해할 정도로 ‘강한 힘’을 지녔는가? 하는 것이다.
‘지식과 학문의 낙천주의’에 대한 “변증법적 충동”이 ‘고대의 비극’을 본 궤도에서 이탈시켰다.이런 사실로부터 “아폴론적 세계관”과 “비극적 세계관” ‘사이’의 “영원한 투쟁”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학문의 정신’이 “한계”에까지 이른 후에야, 또한 ‘보편타당성’에 대한 ‘학문의 권리 주장’이, 이 ‘한계 증명’으로 인해 ‘무효’가 된 후에야 비로소, “비극의 재탄생”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학문은 보편타당성에 대해 권리가 없다는 의미인 듯하다. 앞서 니체는 학문의 목적은 과정에 있다고 말하였다. 즉, 학문 역시 예술처럼 ‘과정’에 방점이 있다는 것이고, 예술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문화 형식에, ‘앞서 설명한 의미’에서의 ‘음악을 하는 소크라테스’라는 ‘상징’을 붙여야 할 것이다. * 학문의 정신이 한계에 이른 문화 형식에 “음악을 하는 소크라테스”라고 ‘상징’을 붙여야 한다는 것. 소크라테스가 감옥 안에서 죽음 직전에 아폴론적 인식을 통하여 음악을 한 것에 빗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서로 대조하면서 니체는, ‘학문의 정신’을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을 통해 처음으로 드러난 믿음, 즉 ‘자연의 해명 가능성’과 ‘지식의 보편 치유력’에 대한 “믿음”이라고 이해한다.
‘쉬지 않고 앞으로 돌진’하는 ‘학문의 정신’을 ‘기억하는 사람’은 곧 이것에 의해 “신화가 파괴”되었고, 신화의 파괴로 인해, ‘문학’도 ‘자연적이고 이상적인 토대’로부터 “쫓겨나” 이제 ‘고향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점을 떠올릴 것이다. * 쉬지 않고 돌진하는 학문의 정신 -> 이것에 의해 신화가 파괴 -> 신화의 파괴에 의해 문학은 자연적이고 이상적인 토대에서 쫓겨남 -> 문학의 고향 상실. * 문학의 고향은 자연적이고 이상적인 토대. 즉 강도의 세계와 환영의 세계 = 가상 세계
‘신화를 다시 낳을 수 있는 힘’을 ‘음악이 가졌다’고 주장하고, 이 주장이 정당하다면, ‘학문의 정신’도 ‘소크라테스’가 ‘음악의 이 신화 창조적 힘’을 ‘적대시했던 길’ 위에서 찾으면 될 것이다.
* 사진은 Hossein zare
<소크라테스의 예술 파괴적인 경향과 ‘새로운 아티케 주신 찬가’/ 회화적 음악>
‘이런 일은 ‘새로운 아티케 주신 찬가’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그 음악’은 이제 ‘내적인 본질 의지 자체’를 말하지 않고, ‘개념을 통한 모방’에서 ‘현상을 불충분하게 재현’하고 있다.
‘진정으로 음악적 재능을 소유한 사람들’은 이 “내적으로 변질된 음악”에서, ‘소크라테스의 예술 파괴적인 경향’을 본 후 느꼈던 ‘혐오감’을 다시 느낀다. 그들은 고개를 돌린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그리고 ‘새로운 주신 찬가의 음악’을 “똑같이 증오”하면서 이 “세 현상”에서 “변질된 문화의 특성들을 탐지”해내는데, 그의 ‘적확한 본능’은 분명 ‘정곡’을 찔렀다. * 세 현상/ (1) 소크라테스의 예술 파괴적인 경향 (2) 소크라테스와 에우리데스의 비극 (3) 새로운 주신 찬가의 음악 *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풍자적이다.
이제 음악은, ‘새로운 주신 찬가’로 인해, ‘악의적인 방식’으로 ‘전투나 바다의 풍랑’과 같은 “현상의 모사”가 되었다. 그럼으로써 ‘신화 창조의 힘’을 완전히 빼앗겼다. * 현상의 모사는 ‘전투나 풍랑과 같은’ 현상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를테면 80년대 초에 나온 영화 ‘인디아니 존스’ 같은 경우에 주인공들의 동작이나 상황을 음악으로 모사했다. 으스스한 풍경이나 놀라는 장면이나, 공포스러운 장면, 위험한 장면, 극적인 장면을 음악으로 모사하였다. 이러한 것은 모두 현상의 모사에 음악을 복무하게 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영화산업의 초창기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 두드러졌는데, 멜로디 형태나 악기로 사물의 동작을 흉내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디아나 존스」는 80년대 영화이지만, 할리우드 오락영화에서 현상 모사적 경향이 가속화되었다. 현재로 올수록 영화음악은 오락영화 및 SF에서 현상 모사적 경향에서 벗어나 본질의 해석적 형태의 음악이 삽입되기 시작하였다. 한층 영화의 질이 높아진 것이다. * 「인디아니 존스」는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생각된다.
음악이 ‘삶과 자연의 과정’과 ‘음악적 리듬 및 특징’적인 “음” 사이의 ‘외면적 유사성’을 찾으라고 가용하면서, 우리의 흥취를 돋으려 한다면, 또 우리의 ‘오성’이 이런 ‘유사성의 인식으로 만족’ 해야 한다면, 우리는 ‘신화적인 것을 수용할 수 없는 감정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신화는 ‘무한성을 응시’하는 ‘보편성과’, ‘진리의 유일무이한 사례’로서 ‘자신’을 “직관적”으로 ‘느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可用하다/ 정해진 분량보다 많이 쓰다 * 즉 지나치게 과부하가 걸린다면, 그리고 오성이 유사성의 인식으로만 만족해야 한다면, 우리는 신화적인 수용할 수 없게 된다. 오성은 유사성이 아니라 ‘직접적인 소통’을 원한다. 음악과 오성은 직관적인 관계다. 무엇인가 중간 거점을 거치지 않는 ‘디렉트적direct 소통 관계’라고 볼 수 있다. *direct/ 직접적, 일직선의, 똑바른, 일직선의, 곧장 가는, 최단 거리의, 직행의/ 음악과 오성의 관계는 이러한 디렉트의 의미를 포함하는 관계이다. 직통 관계. 어쩌면 ‘깨달음의 관계’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디오나소스적인 음악’을 “세계 의지”의 ‘보편적인 거울’로 마주한다. 이 거울에 ‘반사’되는 “구체적인 사건”은 우리의 느낌에 “영원한 진리의 모상”으로 확장된다.
반대의 상황에서 즉, 최근의 주신 찬가의 ‘회화적 음악’에 의해 ‘구체적인 사건’은 ‘모든 신화적 성격’을 벗어던진다.이제‘음악’은 ‘현상의 초라한 모사’가 되었고, 그래서 ‘현상 자체보다 훨씬 더 빈약’하다.
음악은 그 ‘빈곤’으로 인해 ‘현상 자체’가 우리의 ‘감각’에 한층 더 ‘낮은 것’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예컨대‘음악적으로 모방된 전투’는 행진의 ‘소음’이나 ‘호령 소리에 불과’해지고, 우리의 ‘환상’은 이런 ‘피상성에 멈춰’버리게 된다.
“회화적 음악”은 모든 측면에서, ‘진정한 음악’의 ‘신화 창조적 힘’과 ‘반대되는 대립물’이다. 그로 인해 ‘현상’은 ‘실제보다 더 빈약’해진다. * 회화적繪畵/ 평면상에 색채와 선을 써서 여러 가지 형상과 느낀 바를 표현하는 조형 예술 * 회화적 음악은 이렇게 회화를 그리듯이 묘사하는 음악을 가리킨다. 즉 자연 풍경이나 인물의 행동을 묘사하거나 어떤 사건의 전개를 모사한다. 이것은 일종의 에우리피데스의 ‘서곡’의 역할을 음악이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은 음악으로 사태 설명을 하는 셈이어서 ‘스포일러적’이다. 관객의 격정과 호기심을 자극하며, 극적 상황은 이끌어 내려는 것이다. 관객은 그때 이미 ‘절정’만을 기다리게 된다.
반면에 이와 달리“개별적 현상”은, ‘디오니소스적 음악’을 통해 ‘세계상’으로 ‘풍부’해지고 ‘확장’된다.
‘소크라테스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은,‘비非디오니소스적 정신’과 ‘새로운 주신 찬가의 발전 과정’에서 ‘음악을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고 ‘현상의 노예로 전락’시킴으로써 ‘커다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고차적 의미에서‘비음악적 인물’로 불려야 할‘에우리피데스’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 ‘새로운 주신 찬가 음악’의 열렬한 추종자이며 ‘강도처럼 대담무쌍하게’ 이 ‘음악의 모든 효과적 도구의 수법’을 사용했다. * ‘비非디오니소스적 정신’ = ‘소크라테스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 새로운 주신 찬가 = 소크라테스적 비극 예술 파괴적 경향 * 새로운 것은 기존에 없던 것이어서 긍정적인 현상 또는 부정적인 현상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기존의 비극 예술의 파괴로써 나타난 새로운 주신 찬가이므로 부정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다 좋은 것이라는 극단적 낙관론적 인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니체는 ‘새로운 것’에 대해서 ‘잠깐 정지’를 외치고 있는 것인지도. 우리의 창작은 생성의 욕구에서 비롯되지만, 창작은 새로운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심연에서 솟구치며 분출되는 것이다. 생성과 새로움이 서로 잘 융합되려면, 본질을 회복해야 하는 것인지도.
* 사진은 Hossein zare
<소포클레스의 비극의 과도기성/ 아이스킬로스의 비극과 소포클레스의 비극의 차이>
우리가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성격 묘사’와 ‘심리적 섬세함’이 우세해지는 현상에 관심을 돌리면, 이‘신화와 대립’하는 ‘비디오니소스적인 정신의 힘’이 활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되면 여기서의 “인물”은, 이제 ‘영원한 전형’으로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관하여 니체는 9장에서 언급하였다. 나는 그때 니체가 소포클레스에 관해서 완전히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고 오판했다. 니체가 9장에서 명확하게 소포클레스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포클레스에 관해서만큼은 건조하다 싶을 만큼 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 후 다른 장에서 소포클레스적 경향에 의해서 “비극이 죽었다”고만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17장에서 소포클레스를 언급한다. 여기에서 비로소 분명해졌다. 니체는 소포클레스의 이론적 경향에 의해서 비극이 파괴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니체가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인용하여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 오이디푸스에 대하여 지나치게 ‘개별적인 효과’ 부각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로 인해 신화적 요소가 훼손되었고, 비극은 파멸하게 된 것이다.
니체는 에우리피데스에게서는 거의 환멸에 가까울 정도로 직설적이지만 소포클레스에게는 건조하게 절제된 화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감정 절제는 어떤 “애상함”이 묻어 있다고 느껴진다. 소포클레스는 디오니소스 신화를 이해했다. 또한 세련된 전개를 위해 아직은 신화를 속박하고 있다. 니체는 소포클레스에서 어떤 변화가 가속화되는 것을 직감하지만, 거기에는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고 본 것일까. 여기에서 나는 안타까움이 흐르고 있다고 여겼다. 과도기 상태에 놓여 있는 그리스 비극의 운명이 바람 앞에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이디푸스적 개별화는 그 후로 급속도로 가속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소포클레스의 잘못일까? 소포클레스의 창의가 비극의 퇴락이었을까? 소포클레스에게서 비극은 정점을 찍었고, 바로 그다음은 비극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처음과 달리 형식이 많이 손상된 형태의 비극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 손상된 비극을 훼손시키기는 누워서 떡 먹기보다도 쉬울 것이다.
그런데 소포클레스에 대해 말하는 니체의 화법은 상당히 ‘침묵적’이다. 소포클레스에 대한 개인적 비판 없이, 예시적 설명과 함께 “음악의 창조 정신이 비극으로부터 사라진 지금, 비극이 죽었다”라고 말한다.
이상에서 살펴볼 때, 소포클레스에 의해서 이미 비극이 죽었지만, 에우리피데스에 의해서는 비극이 형체도 없이 찢겼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거다. 소포클레스에 있어서 비극의 죽음은 품위가 있었지만, 에우리피데스에게서 비극의 죽음은 난도질당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소포클레스에게서 침묵하는 느낌의 니체가 비극에 대하여 애도를 하고 있다면, 에우리피데스에게서는 환멸감을 느끼는 것 같다. 에우리피데스에게서는 비극의 죽음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즉 어떤 느낌적 차이가 있다는 의미다.
소포클레스는 비극을 죽이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비극을 해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더 나아지도록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형식에 수정을 가하자 비극이 죽었다. 에우리피데스는 비극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학문과 결탁한 것이다. 학문의 형식을 비극에 사용한 것이다. 그러자 비극은 소멸해 버렸다. 예컨대 비극의 영혼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소포클레스에게서는 비극의 영혼이 남아서 그 자리에 서성이고 있었다면, 에우리피데스에게서는 비극의 영혼이 아예 흔적을 감추어서 깊이 침잠해 버렸다는 것이다. 비극의 흔적이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감추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은 영혼 없는 비극이 되었고, 자연스레 철학의 시녀가 되었다. 최상의 최고의 권위에서 스스로 하락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리스의 비극은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음악의 정신으로부터 비롯된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의 정신은 비가시적인 세계의 것이고, 그것을 현실로 가져오는 것은 오직 디오니소스적 정신에 의해서이다.
니체의 문장 표현법은 직설화법은 아니다. 비유적인 현실 세계에서 다시 비유적인 표현으로 돌려 말한다. 그래서 니체의 표현법은 앞 뒤 문맥을 고려하지 않으면 혼돈으로 빠지기 일쑤다. 분명히 개념 정돈을 해 주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뭔가 개념적 정돈은 어지럽게 다시 흩어진다. 각 장 마다 일단 소제목이 없어서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지 못한 채로 내용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아마도 에우리피데스가 '서곡'에서 비극의 내용을 알려주는 것을 경멸하는 니체의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비극은 내용에 대하여 막 초반에 우연처럼 가장하여 필연성에 대한 암시만 슬쩍 흘릴 뿐이다. 그리고 시에는 원래 제목이 없었다. 음악의 분출이 제목을 먼저 상정하고 분출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해서 니체는 음악과 동일하게 보편 언어인 숫자로만 각 장들을 구별하고 있다.
그리고 내용들은 하나의 장에서 하나의 시대적 개별적 사안을 다루기는 하지만 그것이 딱 부러지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장으로 이어지고, 다시 이전의 내용들에 대한 개념 정돈이 없으면, 그 이후 장들에서 다소 헛갈리게 된다. 개념을 수식하는 어구도 조금씩 달라진다.
일종의 니체의 《비극의 탄생》 글쓰기 방식은, 그리스 신화에 대한 하나의 “서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제2부의 18장 까지는 고대 그리스 비극과 과도기의 비극, 비극의 파괴, 그리고 희극으로의 전환 등을 다룬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건들을 다루는데, 그 사건들이란 바로 “학문”에 관한 것이다. 비극과 학문이 만나서 비극이 깨지고 학문이 승리했다. 비극은 학문(철학)의 시녀로 전락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비극은 사멸한 것이고, 학문의 시녀가 된 것은 ‘희극적 예술’로 보아야 한다.
비극은 학문과의 투쟁에서 죽었고, 새롭게 만들어진 희극(물론 이 희극은 아티케 비극으로 불린다)이 학문의 시녀가 된 것이다. 이 예술은 그러니까 비극과는 다른 것이다. 바면 비극은 비밀 의식 속에 계속 살아남았다. 비록 죽었지만, 그 정신이 살아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음악의 정신이 죽을 수 있겠는가? 그리스 문화에서 비극이 죽었다는 것이지, 비극 즉 음악의 정신 자체가 죽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것의 모성이며 원천인 음악이 어찌 죽을 수 있겠는가! 영원히 사는 음악의 정신인 것을. 니체의 바람은 이것이다. 이 비극적 세계관이 예술로 다시 부활하는 것이다. 그것에 바로 민족성, 즉 민족의 노래인 ‘민요’적 특성에 있다. 그것은 디오니소스적 비극의 세계관이 그 민족의 음악과 결합하는 것이다. 모든 민족의 음악적 태동기는 디오니소스적 물결과 연관이 있다고 니체는 말한다. 음악의 정신은 돌아다닌다. 어떤 민족의 정신과 결합하는가에 따라서 예술은 부활하게 된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에서 ‘인물’의 ‘영원한 전형’과는반대로,‘비디오니소스적인 정신의 힘’이 활동하는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의“인물”은, ‘부차적인 특징들’과 ‘음영의 인위적인 설정’ 그리고 모든 측면의 ‘섬세한 명확성’을 통해서,“개별적인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 그렇게‘관객’은 “신화”가 아니라, ‘강력한 진실’과 ‘예술가의 모방 능력’을 느껴야 한다. *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현대적으로 보자면, 하나의 창작이고 하나의 발전이다. 그런데 비극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퇴락이자 반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극 자체의 기승전결의 문화적 측면에서 보자면, 비극은 기에 해당하고 유년기에 해당한다. 성장하고자 하고 변혁하고자 하는 시대의 조류를 막기는 역부족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리스의 학문은 비극의 불완전한 모방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현상’이 ‘보편성을 누르고 승리’했다는 점을, 그리고‘해부학적 표본 하나하나를 즐기려는 경향’을 ‘인식’한다.* 비극에서 인간은 개체이고 하나의 현상이다. 그런데 이 개체를 지나치게 부각하려고, 즉 요즘에 비하면 사진 기법을 사용했다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인물의 초상화적 기법일 수도 있겠다. 자기 객관화적 측면을 너무 부각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론적 세계의 공기”를 마시고 있다.이 세계에서 ‘학문적 인식’은 “세계 법칙”의 ‘예술적 반영’보다 ‘높이 평가’된다.‘특징적인 것의 노선 위’에서 ‘움직이는 경향’은 급속도로 진행된다. * 우리는 이미 이론적 공기를 마시고 있다. 그렇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갈등을 했다. 내가 이론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이미 두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한편으론 디오니소스적 인간이다. 나는 호메로스적 인간이기도 하고, 아이스킬로스적 인간이기도 하고, 소포클레스적 인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적 인간이기도 하고, 에우리피데스적 인간이기도 한다. 그리고 쇼펜하우적 인간이기도 하고, 바그너적 인간이기도 하고, 니체적 인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 그리고 그 외의 무수한 형태들의 총합이 나다. 이 모든 것의 총합으로서 아폴론적 미를 꿈꾸는 것도 나다. 나는 이미 그 시대에서 여기까지 와 있는 시대의 사람이다. 내 안에는 그 시대의 축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이 시대에서 그 시대를 바라보는 일, 그리고 그 시대에서 그들과 같이 이 시대를 바라보는 일은 때로는 혼돈이기도 하다.
하지만 니체의 말은 우리를 층층으로 둘러싸고 있는 베일을 걷어내고 나면, 원형이 보인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원형을 보려면, 그 원형의 순수한 상태를 인식해야 한다. 그럴 때 원형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재생되는 것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때, 그것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사진은 Hossein zare
<소포클레스 비극과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의 차이>
소포클레스가 ‘아직 전체적인 성격을 묘사’하고 ‘세련된 전개’를 위해 ‘신화를 속박’하고 있는 반면, 에우리피데스는 벌써 격렬한 정열로 표출되는 굵직한 성격적 특징들만을 그리고 있다.
근래의 ‘아티케 희극’에서는 ‘경솔한 노인’이나 ‘속은 뚜쟁이’, ‘교활한 노예’와 같이 ‘단 하나의 표정밖에 없는 가면들’이 ‘끝없이 반복’된다. * 여기서 아티케 희극은 변질된 비극이다. 비극이 죽고, 에우리피데스에게서부터는 변질된 비극이 만들어진다. 그 비극부터 희극이라고 부른다. 니체는 그것에 대하여 《비극의 탄생》 안에서는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보인다. * 그러나 보통의 일반적 용어로는 ‘아티케 비극’은 고대 그리스 비극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 같다.
음악의 신화 창조적 정신은 이제 어디로 갔는가? 음악에서 지금 남은 것은, ‘선정적 음악’이나 ‘회상 음악’이다. 둔감하고 지친 ‘신경의 자극제’이든가 ‘회화적 음악’ 뿐이다. 선정적 음악에서 음에 맞춘 가사는 중요하지 않다. 에우리피데스에게서도 그의 주인공이나 합창단이 노래하기 시작하면,‘방탕한 쪽’으로 흘러갔다. 하물며 그의 뻔뻔한 추종자들에게서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 ‘지금’이라는 표현은 니체 당시의 시대를 가리키는 것일 거다. 고대에도 니체 당시에도 회화적 현상 모사 음악은 ‘방탕하고 선정적’으로 흘렀는가 보다. 하긴 “요즘 젊은것들이란?” 표현은 고대 로마에도 있었고, 소크라테스 시대에도 있었다. 그러니 소크라테스의 죄목 중의 하나가 젊은이들을 미혹하게 한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소포클레스가 비극의 파멸에 일조를 했을지언정, 그의 비극이 가리키는 것은, 세상이 돌고 도는 것이고,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미궁이고, 어떤 반복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것 역시 세상의 또 하나의 메커니즘인 것이다.
미의 원리와 운명의 원리에서 인간은 무엇을 따라야 할까? 이것 역시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적 관계일 수도 있다. 이것 역시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거인 충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또 거인의 등 위에 올라서 같이 더 높이 더 멀리 갈 수도 있다. 아이스킬로스의 프로메테우스의 신화가 의미하는 바에서 이미 인간의 상승적 변화는 시작되었다. 소포클레스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인간은 이미 개별화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 두 방향성 모두 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는 변화는 아니었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모두 자연의 방식을 위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도 기존의 힘을 거역했다. 그 힘 역시 자연의 방식이었다. 신들의 세계의 방식이 인간의 투영이라고 한다면, 이미 인간의 방식은 전복이었다. 오이디푸스의 신화 역시 자연의 질서를 역행한 것이었다. 그 역행으로 인해서 자연의 비밀을 들추어내었다. 인간이 가는 길은 그렇게 전복의 역사였다. 반면 미를 드러내는 방식은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일 수도 있다. 자연이 만물을 생성하는 방식과 인간이 미를 생성하는 방식은 같다.
그러나 모방적 예술에서 보자면, 플라톤의 말은 맞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비극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비극을 해체하였다. 예술이 자연의 직접적 표현이 아니라, 모방이라고 한 것은 그 자신의 시대가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플라톤은 그 자신이 본 대로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갇혀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디오니소스 정신과 새로운 비디오니소스 정신>
‘새로운 비디오니소스적 정신’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최근 ‘희곡 작품의 결론 부분’에서다.‘고대의 비극’에서 “형이상학적인 위안”은 마지막에 느껴졌다. 이 위로가 없다면, ‘비극의 즐거움’은 설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 형이상학적 위안이 마지막에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예술은 완성되어야만 어떤 형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마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는,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 화해의 소리’가 가장 순수하게 울릴 것이다. ‘음악의 창조 정신’이 ‘비극’으로부터 사라진 지금, 비극은 엄밀한 의미에서 죽었다.* 여기서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 화해의 소리’는 아마도 ‘피안’을 의미할 것이다. ‘차안’의 이 세계가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저 형이상학적인 위로를 얻어낼 수 있는가? 그래서 우리는‘비극적 불협화음의 지상적 해결책’을 찾는다. 운명의 시련을 충분히 겪은 주인공은, 화려한 결혼이나 신의 예우를 통해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을 받는다. 주인공은 혹사당하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후에 사람들이 이따금 자유를 선사했던 검투사가 되어 있다. 기계장치 신이 형이상학적 위로를 대신한다.* ‘비극적 불협화음의 지상적 해결책’은 형이상학적 위로를 의미하지 않는다. 즉 자기 안에서 피어나는 기쁨이 아니다. 밖에서 강제로 주어진 감정 노동 혹사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웃음, 울음, 보상, 구원 등일 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물밀 듯 밀려오는 ‘비디오니소스 정신’에 의해 “비극적 세계관”이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단지 ‘비극적 세계관’이 ‘예술로부터 쫓겨’나서 ‘지하 세계’로, ‘비밀 의식의 변형 속’으로 ‘도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론적 인간의 명랑성인 “알렉산드리아적 명랑성>
앞에서 이미 노쇠한 비생산적인 실존 욕구로 언급된 바 있는 “그리스적 명랑성”의 형태로 나타나는, 저 ‘정신의 소모적인 숨결’이 ‘그리스 본질의 표면 위 넓은 지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 ‘명랑성’은 과거 그리스인들의 ‘멋진 소박성’과는 정반대다.이 “소박성”은 앞에서 규정했듯이,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자라나 온 ‘아폴론적 문화의 꽃’이다. ‘그리스적 의지’가 “미의 거울”을 가지고 ‘고통’과 ‘고통에서 얻은 지혜’와 대적하여 거둔 ‘승리’다.
“그리스적 명랑성”과는 ‘다른 형태의 명랑성’ 가운데, 가장 고귀한 형태는 “알렉산드리아적 명랑성”인데, 이 명랑성은 ‘이론적 인간의 명랑성’이다. 그것은 니체가 방금 ‘비디오니소스 정신’으로부터 추론해 낸 것과 ‘동일한 특징’을 보인다.
“비디오니소스 정신과 동일한 특징을 가진 알렉산드리아적 명랑성”의 공통점은 이러하다.디오니소스적 ‘지혜’와 ‘예술’을 상대로 싸움을 벌였다는 것이고 ‘신화를 해체’하려 하였고, ‘형이상학적 위로’를 대신하여 지상적 조화로써 자신의 “기계장치 신” 즉, 기계와 도가니의 신을 세웠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고도의 이기주의’에 ‘봉사한다고 인식’되고 ‘사용’되는 ‘자연 정령의 힘’을 세우려 한 것이다. 또한 ‘지식을 통한 세계 개선’과 ‘학문이 인도하는 삶’을 믿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실제로 ‘개인’을 극히 ‘협소한 범위’의 ‘해결 가능한 과제 속에 가두’었다. 그로 인해 그가 그 안에서 삶을 향해, “나는 너를 원한다. 너는 인식할 가치가 있다”라고 명랑하게 말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알렉산드리아적 명랑성”의 특징이다. 이것들은 모두 ‘비디오니소스 정신’과 ‘동일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알렉산드리아적 명랑성은 이론적 인간의 명랑성인데, 아마도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학문적 인간이 갖는 낙관주의적 특징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학문적 범주 안에 가두었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은 더 자연 정령의 힘을 의존하게 된 것일까? 결국 이기적인 인간의 탄생, 즉 개인주의의 시작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도. 니체가 비극의 합창단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합창단이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대한 관점 역시 거인충동에 의해 개체들을 하나로 모으기 때문이다. 이리 따지면 니체는 개별화보다 공동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의식과 집단/무의식에서 니체는 집단 공동체적 특성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주의적인 것이나 민주주의적인 형태는 아니었다. 합창단의 형태는 비밀의식을 같이 행하는 사람들의 모임 형태다. 그러므로 무엇인가를 하나가 되어 같이 행할 수 있는 사람들의 집단인 것이다. 그리고 니체는 집단 이주나 잦은 이주 또는 잦은 이사, 고향을 떠나서 사는 것 등에 대해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인간의 상처는 즉 개별화는 모두 ‘이주’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개별화는 상처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