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의미 '이런 생각'

알렉산드로스! 신의탄생

by 아란도



사막을 건넌다는 것에 대하여, 이것을 인식했던 이래로 늘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니체는 "문화를 말려 죽인다"의 비유로 사막을 쓰고 있어서, 나는 사막에 대해서 또다시 생각해 보았다.


사막은 무의미한 공간이 아니다. 문화가 교류하는 길이면서 문명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사막은 시간의 입자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장의 역할을 하는 장소이다. 모래의 허무함과 사막의 광활한 공허감은 바로 이러한 보이지 않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장소이다. 허공의 의미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의 허무함은 이미 변화의 징후다. 인간의 감정에서 허무함이 느껴질 때는 이미 변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니체는 <반시대적 고찰> 1부 2장에서, 독일정신을 말려 죽이는 '사막'이라고 속물교양인을 표현했다. 모든 것을 말려 죽이는 사막과 '장'으로서의 사막은 서로 다른 것일까?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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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사막을 건넌다는 말은 고통을 견디며 건넌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막을 걷는 일은 인간에게 무상함과 허무를 느끼게 한다. 보통, 사람은 허무를 느끼면 공허해지고 어쩔 줄 몰라한다. 몸 안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왜 텅 빈 느낌을 받을까? 무엇인가 빠져나갔고 빠져나간 그것이 형태를 바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허무를 느낄 때는 어떤 변화가 이미 있다는 징조다. 그래서 인간은 허무를 느끼는 것이다. 인간이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그 자신의 의지가 아니다. 불현듯 찾아오는 감정이다. 그러니 허무한 감정이 주는 그것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 이 감정도 결국 지나간다. 그런데 어떻게 지나가느냐일 것이다. 허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허무는 사람을 그 자리에 정지시킨다. 그 감정을 어쩌지 못하기 때문이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안절부절을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며, 무기력을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막은 안개와 같은 신기루를 품고 있다. 이러한 자연 현상은 정신적 현상의 사막의 형태와 유사하다. 뿌연 모래바람이 만들어 내는 희뿌연 안개는 시간이 갖는 모습과 흡사하다. 그렇다. 정신을 말려 죽이는 속물교양은 '사막을 건너는 고통' 그 자체와 일치한다. 결국 여기서 '사막'의 의미는 '말려 죽인다'와 일치된다. 무엇인가, 사막은 어찌 되었든 건너야 하는 그 무엇이다. 니체가 말한 사막도 결국 이것이다. 사막을 건너는 것만큼의 고통을 주는 속물교양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그것도 지나와야 하며, 지나가게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 자신만의 사막을 건넌다. 어떤 얽힘이 있는 것이다. 사막을 건너는 동안 정신은 표백된다. 건너는 그 사이에 그 자신이 무엇과 조우했는지는 그 자신만이 안다. 정신의 표백은 그렇게 일어난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집트 정벌(무혈) 후, 사막에 있는 사원을 향해 길을 떠나 마침내 사원에 도달한다. 그가 거기서 보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그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는 확신을 얻고자 하였다. 알렉산드로스가 비범한 인간이 된 이유는 그 자신이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인간으로서 넘어서기 어려운 길을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신이 보는 어떤 세계관에 의해서였던 듯하다.


알렉산드로스가 그 자신 이전의 그리스에 대해 받아들였던 것은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미 배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역사적 전승으로는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다는 쪽인 것 같다. 알렉산드로스는 어쨌든 새로운 징표를 원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확증받는 것 말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인간이 아닌 신의 아들로서 대제국을 건설했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사하라 사막 안으로 들어간 것은 어떤 상징적 의미도 있다고 생각된다. 사막을 건너서 살아서 돌아온 자, 그리고 그 흙모래 안갯속에서 변화되어 나타난 자, 알렉산드로스는 그렇게 자신을 변화시키고 확장시킨 것이라고 보인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된 알렉산더 대왕, 대왕이란, 여러 지역들의 왕을 동시에 겸임했고 그 지역의 통치자로서의 상징적 의미에서의 '대왕'일 것이다. 마케도니아 입장에서는 이런 알렉산드로스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거대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속국이었던 이집트의 총독과 담판 후 이집트의 파라오가 된다. 이집트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이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어준다는 것은 직속의 의미가 크다. 그만큼 알렉산드로스에게 이집트는 중요했다. 페르시아와 대전을 치르려면 곡창지대인 이집트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파라오로 인정받기 위해 그는 이집트 신들에게도 인정받아야 했을까? 어쨌든 사막의 사원에서 신탁은 알렉산드로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막을 건넌다는 것은 고통을 상징한다. 모든 사막, 인간에게는 인간이란 환경이 사막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신의 아들이 되어, 스스로 그리스 신화 '영웅'인 반신반인 된 이유는 그 자신의 운명적 관점에서 그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평범한 인간이 대제국을 건설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인간 이상의 이상을 품으려면 그만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인간 사회에서 보자면 모든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은 모두 인간으로부터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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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으론, 니체는 대체적으로 고고학적 유물 발굴 그리고 역사로 존재했던 실체를 찾아 무덤을 파헤치는 행위를 경멸하는 거 같았다. 왜 그럴까? 아마도 '역사적 실증주의' 즉 역사주의가 갖는 맹점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그냥 믿는 것인데, 맹목적 믿음과는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인간은 무엇에 전율하는가? 에 입각해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끌림 - 매혹당하는 것에 실체적 증거가 무슨 소용일 것인가. 신화는 실체적 증거를 찾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훼손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니체는 잠든 영혼의 안식을 방해하지 말라고 말하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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