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배추 모종을 심을 텃밭의 땅을 뒤집으며 우공이산을 생각했다. 텃밭의 흙을 혼자서 직접 뒤집은 것은 처음이었다.
박농민 퇴근 전보다 일찍 텃밭으로 나갔다. 요즘은 여름보다 해가 짧아졌다. 집에서는 잘 못 느끼는 해의 짧아짐을 텃밭에서는 실감한다.
캐리어를 끌고 가서 거름과 석회를 관리소에서 받아왔다. 캐리어에 실린 거름 한 포대는 텃밭농장에서 나누어 준 거름이다. 거름과 석회와 배추모종을 텃밭농장에서 일괄로 모든 텃밭에 배분해 준다. 배추모종은 일주일 뒤에 나누어 준다.
텃밭의 여름작물들은 보기에는 아직 싱싱하다. 치커리와 상추는 여전히 부드러워 보이지만, 치커리는 먹어보면 약간 줄기가 질기거나 쓴맛이 난다. 깻잎을 손가락으로 만져보면 뻣뻣하다. 이제 여름작물도 막바지인 것이다. 이들을 모두 수확하였다. 더 놓아두어도 되겠지만 이제 김장 배추 모종을 심어야 한다. 여름날 쇠해진 땅심을 북돋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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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삽괭이로 퍽퍽 내리치며 흙을 뒤집는다. 삽괭이로 땅을 파고 다시 삽괭이로 흙을 밀어서 패인 곳을 채운다. 그리고 손으로 흙의 표면을 매끄럽게 정돈한다. 어느새 잘 섞인 흙의 표면이 부드럽게 드러나고 있었다.
혼자서 직접 해보기로 하고 했지만 손바닥만 한 텃밭이라고 해서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반면에 그렇다고 생각처럼 어렵지도 않았다. 절반쯤 하면서 땀이 쏟아지고 허리도 어깨도 뻐근해오자 괜히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물론 들었다. 그럼에도 이 정도 텃밭을 흙을 뒤집는 것은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겉표면의 흙은 여름을 지나며 부드러운 흙이 쓸려 나가고 자잘한 돌멩이들이 작은 혹처럼 돌출되어 매끄럽지 못한 피부처럼 보였다.
메마른 겉흙을 기름진 흙으로 바꾸는 일은, 메마른 표피를 파헤치고 그 안의 속살을 겉으로 끄집어내어 겉과 안을 뒤섞어 포슬포슬한 흙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
여기에 무엇인가가 더 첨가되어야 한다. 그냥 겉과 속을 섞기만 해서는 안 된다. 푹 썩어서 발효된 거름과 석회와 유박과 땅벌레 해충제와 그 자신이 양분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뿌린 후 흙을 뒤집어 섞은 후 일정기간 휴지기를 두는 것이다.
땅에 석회를 뿌리는 이유는 석회가 물에 녹으면서 산성토양을 알칼리토양으로 바꿔주기에 그럴 것이다. 밭에 돌이 어느 정도 있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땅을 뒤집는 삽괭이 질은 반복이었다. 느릿한 반복. 이 일정한 리듬 속에서 나는 그 반복적 리듬을 타며 느릿하지만 느려지지는 않는 속도로 행했다. 이러한 행위의 속도를 감각하면서 어떤 한계점에 다다랐다. 나는 어쩌면 이 '한계' 점을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땅을 절반 파고 나니 한계점이 왔다. 갑자기 배가 고픈 건지는 모르지만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 것인지, 살짝 어지러웠다. 사탕을 하나 물었다. 그래 사탕이 당 떨어진 느낌일 때는 좋다.
그렇게 한계점을 지나고 다시 괜찮아졌다. 고지가 바로 저기다. 손바닥만 한 크기가 남았을 무렵 박농민이 왔다. 퇴근 시간은 그대로이지만 해가 짧아졌기에 벌써 주변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박농민 조그마한 플래시를 들고 직접 삽괭이 질을 한다. 땅이 반밖에 안 파인다.
김농민 : "내가 할게"
박농민 : "그게 낫겠다, 플래시 들고 했더니 안 되네"
내가 땅을 뒤집은 깊이가 있었기 때문에 남은 곳도 그만큼의 깊이로 파여 뒤집어져야 한다. 여름 농작물들의 뿌리가 그 깊이에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잔뿌리들을 모두 걸러내야 한다. 썩어서 영양분이 될 거라고들 생각하지만 이 잔뿌리들은 죽지 않고 그대로 있어서 오히려 흙을 싱그럽지 못하게 하는 거 같다. 여기에 땅벌레들이 번식하게 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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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은 반드시 이쪽 흙을 저쪽으로 옮기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신체적 반복만이 아닌 그 자신과 섞여서 새롭게 형성된 어떤 변형이 있어야 하는 것일 것이다. 단순히 이 산을 옮겨 저 산을 만든 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어야 한다. 그것을 바로 반복해야 하는 것일 것이며 그것에서 어떤 새로움이 드러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전체가 삶이며 그 안을 관통하는 것이 철학일 것이다. 그것은 행위를 통하여 무엇을 여기서 저기로 옮겼는가? 일 것이다.
하루 지난 지금은 어깨가 조금 뻐근하지만 몸살은 없다. 적절하지만 약간은 과한 노동을 보자면 그것은 안 쓰는 근육의 움직임이다. 안 쓰는 근육은 그 동작을 해야만 나오는 근육의 움직임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근력이 발달하지 않은 것이다.
삶에서도 정신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근력들은 퇴화한다. 하지만 이러한 안 쓰는 근력 노동 역시 갑자기 과하면 그만큼의 반대급부도 생성되는 것 같다. 그것을 회복하느라 다른 것을 못할 우려도 있다. 적절하게 배분하며 조절하는 것 역시 능력이다.
이런 노동의 강도가 일순간 높아지는 이유 역시 계절의 변화에 따른 것이리라. 요즘은 계절의 특성상 텃밭 농작물을 바꾸어야 하는 시기이므로 날마다 텃밭을 가게 된다. 날마다 가는데도 할 일은 꼭 있다. 물만 주고 와야지! 해도 그렇지가 않을 때가 더 많다. 오늘은 물만 뿌리고 와야지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안 하자고 하면 도무지 할 게 없다. 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일은 한꺼번에 몰려버리게 된다.
일상에서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날마다 써도 쓸게 있다. 그런데 안 쓰면 또 아무것도 쓸게 없다. 안 쓰면 쓸게 없고 무엇을 써야 할지 막연해서 그 길은 막혀버리게 된다. 근육도 텃밭 가꾸기도 글쓰기도 모두 같다. 이것들은 모두 행위의 '우공이산'적인 변형을 담보하고 있다.
어느 한쪽으로 노동의 강도가 높아지는 이유는 어떤 복잡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회피일 수도 있다. 다만 다시 골똘하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자기 안에서의 어떤 정리과정일 수도 있다. 쇠해진 텃밭의 작물들을 정리하여 본래적 텃밭의 형태를 다시 드러내고 피로해진 흙에 새 기운을 보충하는 땅뒤집기로 흙의 속과 표면을 고르게 하고 그 안에 김장 배추 모종이 잘 자리 잡도록 하는 것과 빈 시간을 갖는 것 역시 같은 이치일 것이다.
하늘에서 구름은 계속 모양을 바꾸며 하루종일 쉬지 않고 있다. 쉬지 않는 구름을 보면서 한가한 풍경이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어느 면에서는 모순이다. 길 가다가 누군가 밭에서 작업하고 있으면 그 풍경이 왠지 매미소리와 어우러지면서 한가함을 사람에게 느끼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가함은 상황 따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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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름 한 포대
땅을 뒤집기 전, 이 위에 거름과 땅 해중제와 석회를 뿌리고 뒤집었다. 사진을 찍어 놓은 줄 알았는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