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농장에서 김장배추 모종 나눔 행사가 있었다. 시범 텃밭 주인들은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먼저 오신 분들이 모종 나눔을 하기 좋도록 정돈하어 놓았다. 그리고 각각 위치를 잡고 자원봉사 시작 자세로 대기 중이셨다.
한 두 분씩 김장배추 모종을 받으러 오셨다. 텃밭 알림사항과 배추 모종 심는 법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모종을 받아가셨다. 배추 모종 심는 법을 설명해 주어도 지나가다 보면 배추 모종 간격을 붙여서 심는 곳은 보인다. 그래도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사람에게 어떤 것이 인식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김장배추 모종을 심어 보면 배추가 상당히 폭을 넓게 하며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종 간격이 너무 좁으면 바람이 안 통하고 또한 자기들 잎끼리 부대낀다. 아직 묶어 줄 수 없는 무렵에 더 옆으로 퍼지면서 자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후에 속이 차며 오므라지면서도 그 폭은 그대로 배추 등치 폭으로 가져간다. 간격이 너무 가까우면 벌레도 더 생기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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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3년차인 지금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그 시간이 마치 꿈결 같다. 어느새 시간이 그리된 것이다. 텃밭 분들과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만나게 된다. 물론 매일 가는 때는 매일 본다. 하지만 그 시간은 보통 텃밭을 가꾸러 나왔기 때문에 각자의 텃밭을 가꾸는 시간이다. 텃밭 작업을 하면서 인사 정도 나누는 정도이다.
텃밭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은 작은 시간들이 축적되면서 문득 서로에 대한 이미지와 정겨움이 축적되게 된다. 그렇게 마음의 경계선은 어느덧 엷어지며 친근함을 갖게 된다. 물론 텃밭 이전에 이미 서로를 알고 있는 분들도 있다. 그러면 더 텃밭에서 빨리 친해질 것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지 않으면 누가 누구와 친한지 아니면 동네 친구인지 아니면 텃밭 네트워크가 어떤 형태로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잘 알 수가 없다. 또한 텃밭에서 만났고 친해졌다고 해서 텃밭이라는 공통 매개체 안에서의 친함이지 그 외로 확장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모두가 각자의 삶에서 시간을 내어 텃밭농장에서 자신의 텃밭을 가꾸기 때문이다.
각자마다 모두 그 나름대로의 일상을 살며 그 자신의 시간에 맞게 텃밭을 관리할 것이다. 친해지면 텃밭에서 어떤 부탁을 하기가 쉬울 것 같지만, 텃밭 사람들은 쉽사리 부탁을 하지 않는다. 부득이한 경우에만 부탁을 하게 된다. 텃밭 물 주기는 자동급수가 아니라 직접 사람이 물조리로 물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텃밭 가꾸기에 더 의미가 있기에 그렇게 방침을 정했다고 들었다. 직접 물을 주어 자신이 가꾸는 작물과의 내밀한 교감 시간이 사람에게 더 유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텃밭에서는 어디 간다고 물 대신 주라고 부탁하는 것 역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 주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관찰해 보니 물 며칠 안 준다고 작물이 말라죽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이것은 모두 그저 들은풍월보다는 직접 행위로 해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체감들이다.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어느새 휘발되어 버린다. 들었다고 하여 바로 그 자신의 신체 동작에 습득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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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배추 모종을 나누어 주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계속 말하면 목 아프니까 바통 터치가 있었다. 텃밭대장님이 이번에는 모종 나눔을 체크하시고 텃밭 알림 전달 사항을 일일이 모종을 받으러 오신 분들께 설명하였다. 듣는 분들은 알았다고 바로 긍정하거나 또는 왜 바뀌었냐고 하는 분들 또는 뒤에서 다 들었다고 하는 분들, 각양각색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반응과 텃밭대장님이 "그래도 들어야 한다"며 일관되게 밀고 나가시는 모습의 대조 속에서 간간이 웃음을 터트렸다.
거의 90% 가 넘는 텃밭 분들이 직접 모종을 받아갔다. 간혹 다른 텃밭 모종을 대신 받아가는 분들도 있었다. 부득이한 사정들에 의해서다. 친한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도 직접 받으러 오지 않으면, 맨 나중에 다시 받으러 와야 한다. 직접 받으러 온 사람들 우선이어서 그렇다.
이런 부분을 누가 미리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올봄에 상추 모종 나눔 자원봉사에 참여하지 못했기에 텃밭대장님께 미리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헌옥 쌤께서 우리 텃밭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저녁 늦게 집에 도착했었다. 그런데 상추 모종이 아직 싱싱했다. 다음날 다육을 주신 텃밭 분께서 저녁 무렵 텃밭에 나왔을 때 상추 모종이 시들어 있어서 물을 주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러한 연유로 올해 상추는 잘 자랐고 잘 먹었다. 고마운 시간이라고 그때 생각했었다.
텃밭대장님은 관리가 안 되고 있거나 텃밭 주변에 풀 제거를 안 하는 텃밭을 미리 용지에 체크를 해 놓았다. 그리고 텃밭분들께 "그렇게 하면 주변 텃밭들에 피해가 가니까 방치하면 안 된다"라고 하였다.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들으며 머뭇머뭇 항변하는 사람들이나 여름 끝 가을 시작 무더위에서 오래도록 나눌 말은 아니었다. 스피드 하게 전달하는 말이었다. 그저 서로가 해야 할 말은 하고 들어줄 말은 들어주는 그런 분위기였다.
퍼펙트하게 208개의 텃밭에 오전의 김장배추 모종 나눔은 마무리되었다. 김장배추 모종과 쪽파 나눔은 텃밭분들의 참여로 각자의 텃밭으로 잘 안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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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파는 싹이 나올 윗부분을 조금 많이 잘라서 심어야 쪽파가 튼실하게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 깊지 않게 그러니까 얇게 심고 살짝 흙으로 덮일 정도로 심는 것이 좋다고 한다. 쪽파는 배수가 잘 되는 것이 좋고 물은 또 좋아하니 촉촉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물이 계속 웅덩이처럼 고여 있으면 안 되지만 흙은 촉촉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텃밭 시스템은, 연초에 텃밭 분양에 당첨되면 회비를 오만 원씩 낸다. 이 금액으로 호미와 상추 모종과 거름과 배추 모종과 쪽파를 일괄 구매하여 텃밭에 다시 되돌려 주는 시스템이다. 그러니 텃밭 농사를 짓는 분들은 그 자신이 텃밭에 투여하는 비용 말고는 부담하는 것이 없다. 농기구도 거의 텃밭 공용 농기구를 사용한다. 다만 물조리의 꼭지가 자주 없어져 버리니, 내년부터는 각자의 텃밭에서 개인 물조리를 사용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도 그 편이 더 좋을 것 같기는 한데, 확정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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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팀은 점심을 '한마음 식당'에서 함께 먹었다. 한마음으로 점심 상차림이 차려지는 것을 지켜본다. 배 고프다는 한마음으로! 나는 물을 가지러 냉장고로 향했다. 각 테이블에 물병을 놓아 드린 후 내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팔을 번쩍 들고 이렇게 말했다.
" 우리 맥주 마셔도 돼요?"
일동: ㅋㅋㅋㅋㅋㅋ
헌옥 쌤이 말했다.
"금방 술은 안 된다고 말했어요~"
나는 헉!
"그래요... 저는 못 들었어요...(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주변에 보내며, 텃밭대장님을 보며) 그래도 더운데 맥주 한 잔씩 하면 안 돼요?"
한참을 망설이시더니, 맥주 한 잔씩들 하라고 하였다.
일동: 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맥주 한 잔씩 마셨다. 찐득한 땀이 싹 가신 느낌이었다!
"술 마셨으니 텃밭에 가서 햇볕 쬐며 일하면 안 됩니다" 라고 말씀하신 분께,
"그럼요! 집에 가서 한숨 자고 해질 무렵에 모종 심을 거예요~^^" 라고 말했다.
함께 먹으니 더 맛난 점심이었다. 열무김치가 나중에 나와서 미처 사진을 못 찍었는데, 열무김치 풍미가 좋았다. 뒷맛에서 맛있는 열무김치 특유의 향이 잘 살아 있어서 좋았다. 레시피도 대략 알려 주셔서 참고 삼아 담아 먹어봐야지 했다. 암튼 열무김치 맛은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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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작물들은 우거졌고 김장배추 모종은 말끔한 땅을 원한다. 김장배추 모종이 텃밭 풍경을 일시에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싱싱하게 자란 작물이 가득한 텃밭도 보기 좋았지만, 김장배추 모종을 심으며 말끔해진 텃밭들도 보기에 좋았다. 목욕을 마치고 보송보송한 새 옷을 입은 느낌이랄까!
텃밭은 그저 작물만 심고 거두어 먹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텃밭을 가꾼다는 것, 특히 공용텃밭 농장에서 텃밭을 가꾼다는 것은 자신의 텃밭과 그 주변을 가꾸는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텃밭과 텃밭 주변 길의 풀을 뽑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 길을 지나가지 않는다. 풀이 나 있으면 사람들은 그 길을 지나가지 않는다. 정말 특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산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풀로 뒤덮여 있으면 그쪽으로는 사람이 가지 않는다. 벌레나 뱀이 있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길이 있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에 누군가 그 길을 지나간다면 관리자나 탐험가 또는 도망자일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풀이 무성한 곳에 발을 내딛지 않는다.
텃밭은 일반적인 공간이다.
일반적인 공간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누구나 지나갈 수 있다.
텃밭을 가꾸는 이들은 각자의 텃밭을 가꾸느라 정작 텃밭을 전체적으로 잘 둘러보지 못한다.
특별하게 시간을 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텃밭은 오히려 지나가는 산책자들의 감상 공간이기도 하다.
나도 그래서 일부러 시간 내어 텃밭을 산책하며 둘러보기도 한다. 산책자가 되어서 말이다.
텃밭의 작물이 제때 채취되고 있지 않아서 익고 터지거나 땅에 떨어지거나 너무 무성하게 엉켜 있다면, 텃밭은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그 텃밭을 둘러싼 길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면 그 길은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산책자는 방치된 길로 굳이 걸어가지 않는다.
그 길은 끊어진 길과 같기 때문이다.
일부러 사람들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밤손님은 방치된 곳만 찾아간다.
이때는 오히려 방치되었다고 보이는 곳, 무성한 풀과 무성하게 뒤엉킨 작물들이 밤손님을 오히려 은폐시켜 준다.
이 방치가 오히려 사람들을 잠재적인 절도자로 만든다.
중심은 특정하게 가꾼 곳만 중심이 아니라, 그 자신이 가꾸기 시작하면 그곳 역시 중심이 된다.
자신이 텃밭과 텃밭 주변 가꾸기를 청결하게만 하여도, 사람들을 산책자로 인도하는 셈이 된다.
밤손님이 아니라 감상자가 되게 한다.
텃밭은 자기 경계선이 뚜렷하다. 작물이 그 선을 넘지 않을 때 텃밭은 잘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잘 관리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감상하고 그 자신 안으로 내밀하게 받아들인다. 감성을 키운다.
방치되고 있으면 사람들은 뒷말을 하게 되고 밤손님은 서리에 대한 욕망을 갖게 된다.
특정한 것에 대해 욕망을 품는 것 역시 작물이 어정쩡하게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깨진 유리창 효과는 그 자신의 텃밭 안쪽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 텃밭 주변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자신의 책임의 경계이기도 하다. 이 책임의 경계는 겹쳐져 있다.
길은 양자를 포함하고 있기에 길이다.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자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 길이다. 그러므로 그 길 역시 각자의 책임의 범위 안에 있다. 텃밭은 사각형 안만 텃밭이 아니고, 그 바깥을 연결하고 있는 길도 텃밭에 포함된다. 그러니 안만 아니라 그 바깥도 함께 가꾸어야 한다.
잘 가꾸어진 농작물과 관리가 잘된 길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다. 제때 채취하고 제때 잘라줄 것은 자르고, 한데 모아서 가지런하게 정돈할 것은 정돈만 해주면 된다. 텃밭과 그 주변 길 풀만 잘 뽑아도 말끔하여, 아름다워 보인다. 이러한 행위를 하다 보면 그 안에서 그 자신만이 느끼는 기쁨이 있다. 이것이 텃밭의 힘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