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1장/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비슷한 결말에 이른다
우리 때문에 비위가 상해 화가 치민 사람들이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 우리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들의 마음을 녹이기 위한 제일 흔한 방법은 고분고분한 태도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자비와 연민을 끌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방법인 당당함과 꿋꿋함을 통해서도 때로 동일한 효과를 얻기도 한다.
(...)
황제 콘라드 3세는 바이에른 공작 겔프를 포위하고 그가 아무리 굴욕적인 항복 조건을 제시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황제는 귀족 여인들이 이고 질 수 있는 것만 갖고서 두 발로 성 밖으로 걸어 나갈 경우, 그들의 명예와 생명을 보장해 준다는 것 말고는 어떤 양보도 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자 이 담대한 귀족 여인들은 자기네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겔프 공작까지 직접 어깨에 들쳐 메고 나설 생각을 했다. 이토록 대단한 여인들의 용기에 황제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공작에 대해 품고 있던 격렬하고 파괴적인 증오심을 모두 털어 버리고, 그 뒤로는 공작과 그를 따르는 이들을 인간적으로 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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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이 두 가지 방식 모두에 마음이 쉽게 움직였을 것이다. 사실 동정을 느낄 때나 고결한 모습 앞에 설 때나 내 마음은 놀랄 만큼 약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 생각에 나는 존경심보다는 동정심에 더 쉬이 손들 것 같다. 하지만 연민은 '스토아 철학자들'이 보기에 사악한 정념이다. 그들은 고통받는 자들을 구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들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연민에 빠지는 것은 반대한다.
(동정심과 존경심) 두 가지 방식 모두를 겪어 본 인간의 마음이 그 중 한 가지에 대해서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태연자약하고, 다른 한 가지에 대해서는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동정심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만만하고 유순하며 무른 심정의 탓으로, 여자나 어린애, 속인들처럼 성품이 나약하기 그지없는 자들이 빠져든다.
하지만 눈물과 간청을 경멸하고 미덕이 지닌 성스러운 이미지에 대한 경외심으로만 마음을 바꾸는 것은 강력하고 완강한 영혼들이 하는 바로서, 이는 남성적이고 꿋꿋한 힘을 사랑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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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중에서 가장 대담하고 패자에게 관대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지난한 어려움 끝에 '가자시'를 함락하고 그곳 사령관 베티스와 마주쳤다.
알렉산드로스는 베티스의 용맹함에 경탄했지만 마케도니아가 치른 승리의 대가가 너무 비쌌다. 게다가 대왕 그 자신도 몸에 두 군데 상처를 입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도도하고 오만하고 고집스럽게 당당한 침묵을 보인 베티스를 보고 생각했다.
'저 자가 무릎을 꿇지 않다니, 한마디의 하소연도 새어 나오지 않다니, 너의 침묵을 정말로 내가 부숴 주리라. 네 입에서 말 한마디 끄집어낼 수 없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신음 소리는 나오게 해 주겠다' 대왕의 울화는 광기로 바뀌었다.
베티스의 발뒤꿈치에 창을 꿰게 한 뒤에 수레 뒤에 매달아 산 채로 끌고 다니다가 갈기갈기 몸을 찢게 했다. (...)
사실 그의 분노가 고삐를 조일 수 있는 것이었다면, 테베시가 함락되고 유린되던 때, 그리하여 더 이상 자신들을 방어할 수단이 없던 그 많은 용맹스런 패자들이 잔혹하게 칼끝에 꿰이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분노는 누그러졌으리라.
6000명이나 되는 사람이 살해되었는데도 그중 누구도 도망치거나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여기저기 길 도처에서 의기양양한 적들을 향해 자기들에게는 명예로운 죽음이 필요하니 어서 덤비라고 맞서는 것이었다. (...)
그러나 이토록 참혹한 지경을 헤쳐 가던 그들의 용기는 어떤 연민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온종일 걸려도 알렉산드로스의 복수심은 채워지지 않았다.
이 살육극은 흘릴 수 있는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흐르도록 계속되었다. 노인, 여자, 어린애 등 무장하지 않은 자들 앞에 와서야 멈추었으며, 그들 중 3만 명이 노예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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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담대한 귀족 여인들은 자기네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겔프 공작까지 직접 어깨에 들쳐 메고 나설 생각을 했다" 나는 이 문구에서 어떤 웃음이 나왔다. 그 광경이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이 모습에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어떤 각인되는 이미지들은 정신을 상쾌하게 한다. 그 상쾌함이 마음을 돌리게 하는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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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정심과 존경심(고귀함) 부분은 '니체'의 저작에서도 나타나는 부분이다. 니체는 몽테뉴가 <에세 1> 1장에서 써놓은 이러한 생각이 유럽의 전통적 문화와 맥이 맞닿아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렇기에 그 자신의 저작에서 인간의 약함의 상태와 강함의 상태에 대해서 말할 때, 이와 유사한 비유를 그대로 차용한 것 같다.
인간의 약함의 상태에 대한 비유로는 여자, 어린애, 속인( 및 속물)을, 인간의 강함의 상태에 대한 비유로는 남성적이고 꿋꿋한 힘을 대입하고 있다. 강함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니체에게 있어서는 '고귀한 것'이다.
니체는 동정심을 나약한 것으로 본다. 몽테뉴가 든 예시를 보면 강한 여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니체도 몽테뉴도 여자나 어린애 속인을 사람(남자, 여자, 어린애) 그 자체에 대입한다기보다는 드러나는 특성을 더 염두에 둔 것일 거다. 때에 따라서 여자도 강할 수 있고 남자도 약할 수 있다. 게다가 어린애는 그 자체로는 성인보다는 힘이 약하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어른보다 생명력은 더 강할 수 있다.
또한 속인은 귀족적이 아닌 사람을 의미할 것이다. 존경할만한 행위를 하지 않으면 모두 속인이 된다. 또한 속물은 지나치게 세속적인 사람을 의미한다.
(16세기 그 당시에 점차로 점차로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시민 계급이 성장하고 있었고, 몽테뉴 집안 역시 그러한 시민 계급의 성장과 관계가 깊다. 증조부가 몽테뉴 성과 영지를 구입하여 정착하였기 때문이고, 그 후 할아버지가 자식들을 사법계와 종교계에 진출시켰으며 가업을 접고 지대에만 의지해서 살았다. 아버지는 프랑수아 1세를 따라 이탈리아 원정에 참여하여 무관 귀족의 면모를 보탰고 보르도 정계에 진출하여 시장직을 맡았다. 몽테뉴는 법관을 지내다 은퇴하였으며 시장직도 맡았었다. 몽테뉴 집안은 시민 계급이 귀족화된 전형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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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왜 연민을 접어버린 것일까? 개인적 분노도 물론 있었겠지만,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가자시는 중요한 거점이자 중심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이 마케도니아 군대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알렉스드로스는 페르시아로 가려고 했었다. 그리고 페르시아 원정에 성공했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문화를 좋아했다. 그런데 가지시에 발이 묶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강렬하게 항거하는 이들을 본보기로 삼은 듯하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점령할 때 더 무자비하게 본보기를 보였다. 같은 종족에게 더 잔인했다. 왜 그랬을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무지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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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로 문맥과 단락 재구성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