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손'과 보도연맹 학살 사건
그냥 디즈니를 클릭했다가 우연하게 이 영화를 선택했다.
영화는 실제로 노인이 부인의 산소로 걸어가는 속도를 롱샷으로 끝까지 보여준다. 마치 마지막 예우처럼.....
두 노인은 손자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오랜 시간 공모해 온 듯한 통장을 손자에게 준다.
할아버지가 돌아서 누운 채로 손자에게 해준 유언 같은 이야기, 그 자신이 유년에 겪은 어떤 이야기를 기록처럼, 역사처럼 전달한다. 잠자리에 누워서 그냥 하는 이야기인 듯이.
할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두부공장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자신의 기억을 전달할 전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손자는 배우이자 감독이었다. 배우로 안 되자 감독으로 전향했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통장을 남겼다. 할머니와 같이 꾸준하게 적금 붓듯 모은 돈이 든 통장을 할머니(부인)가 돌아가시자 할아버지는 아무도 몰래 그 통장을 챙긴 후 손자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며 통장을 검은 봉투에 싸서 건네준다. 마치 두부를 검은 봉투에 싸서 주듯이. 이 역시도 할머니와 오랫동안 연습한 모종의 훈련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할아버지 나름대로의 묘책이었던 것인지는 각자가 판단해야 할 것 같다.
보도연맹 학살 사건에 대해 나무위키 자료를 읽어 보았다.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읽어보긴 처음이다. 영화에서는 그저 짧게 말로 그 사건을 다룰 뿐인데, 무게는 엄청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함께 평생을 그 기억에 매여 있었기 때문이다. 약간의 치매 속에서도 목적을 잊지 않고 임무 완수하신 것이다. 처음부터 그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중간에 계획이 변경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통장을 넘겨주는 임무를 완수한 후 부인 산소로 휘적휘적 걸어가셨다.
"역사를 기록하라, 내 손자여! 밑천은 내가 다 준비했다!"
'전향' 했다는 것
배우에서 감독으로, 방향을 바꾼 손자
좌익에서 우익으로, 그 시대가 시킨 대로,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부모
아들에서 손자로 목적을 향한 방향을 튼 할아버지
'전향'이라는 말만이 이 영화의 골자를 내포하고 있다. 계속 움직이며 하나의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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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 ai에게 "보도연맹 학살 사건" 요약 정리 해달라고 했다 __________
보도연맹 학살 사건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이승만 정부가 국민보도연맹원 및 좌익 혐의자들을 대규모로 검거하고 처형한 국가 주도의 민간인 학살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은폐되었으며, 1990년대 이후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로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사건의 배경
- 국민보도연맹 설립 (1949)
정부가 좌익 전향자를 계몽·지도한다는 명목으로 만든 반공 단체.
실제로는 좌익 감시 및 통제 수단으로 활용됨.
- 강제 가입과 실적주의
공무원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일반 민간인에게도 가입을 강요.
쌀·비료 등 배급을 미끼로 가입 유도, 심지어 청소년도 포함됨.
학살의 전개
- 한국전쟁 발발 직후 (1950.6.25)
정부는 보도연맹원을 예비 검속하고 전국적으로 구금.
이후 심사 없이 집단 처형이 이루어짐.
- 학살 방식
- 총살 후 암매장 (산, 우물, 폐광 등)
- 바다에 수장
- 기관총 난사 사례도 존재
- 대표적 학살지
- 대전 골령골: 1,800~7,000명
- 경산 코발트광산: 약 3,500명
- 울산 대운산: 407명
- 제주도, 경남·경북 등 전국적으로 발생.
희생자 규모와 피해
추정 희생자 수
최소 10만 ~ 최대 30만 명
공식 확인 수
4,934명 (진실화해위원회, 2009)
피해자 유형
보도연맹원, 양심수, 일반 민간인, 청소년
유족 피해
연좌제 적용, 감시 대상, 사회적 낙인
사건의 은폐와 진상 규명
- 은폐 시도
- 정부 기록 소각
- 유족 활동 탄압
- 유골 발굴 방해
-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2007~2010)
- 유해 발굴: 경산, 청원 등 13곳에서 1,617구
- 유품 수습: 5,600여 점
- 공식 발표: 국가 주도 민간인 학살 인정.
문화적 재조명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 소설: 《태백산맥》, 《소지》
- 다큐: 《레드 툼》
→ 금기시되던 사건이 21세기 들어 대중문화에서 다뤄지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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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단순한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폭력성과 인권 유린을 되새기게 하는 역사적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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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생각/ 4.19 혁명을 무력화시킨 5.16 군사 쿠데타에 의해 보도연맹 학살 사건은 은폐되었다. 그리고 학살이 자행된 곳은 전라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우경화되었었다. 오히려 더 많이 학살당한 곳이 더 독재에 매몰되어 버렸던 것.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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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정리
보도연맹 학살과 지역별 정치 성향의 변화
- 보도연맹 학살 사건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정부가 좌익 전향자들을 중심으로 조직한 국민보도연맹 회원들을 예비검속 후 대규모로 학살한 사건입니다. 희생자는 최소 수만 명에서 최대 수십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 4.19 혁명 이후 제2공화국은 이 사건의 진상조사를 시도했지만,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인해 모든 조사가 중단되고, 유족들은 오히려 ‘요시찰 대상’으로 낙인찍혀 감시와 연좌제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 특히 경상도 지역은 학살 피해가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군사정권에 대한 지지 성향이 강해졌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제기됩니다. 반면 전라도 지역은 상대적으로 학살 피해가 적었지만, 이후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죠.
이 아이러니에 대한 해석
- 일부 학자들은 극심한 국가폭력 이후의 공포와 침묵이 지역 사회를 보수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합니다.
- 또 다른 해석은 국가권력에 의한 억압이 오히려 저항을 낳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생존을 위한 순응과 체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 전라도의 경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처럼 국가폭력에 대한 집단적 저항의 기억이 민주화 성향을 강화시켰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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